고은 시인.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고은 시인이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과 언론사를 상대로 제기한 10억여원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1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이상윤 부장판사)는 고은 시인이 최영미 시인과 박진성 시인, 언론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최영미 시인과 언론사 등에게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다만 박진성 시인에 대해서는 1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고은 시인이 자신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최영미 시인의 폭로가 허위임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날 재판부는 “최영미 시인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어있으며 특별히 허위로 의심할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된 반면, 원고는 최 시인의 진술을 번복할 정도로 이 사건 보도내용이 허위임을 입증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최영미 시인의 제보를 보도한 언론사들 또한 배상 책임이 없다고 결론내렸다. 재판부는 “저명한 문인으로 문화예술계에 영향력 있는 인물인 원고에 대한 의혹 제기는 국민의 관심사로 공공 이해에 관한 사안으로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면 지난 2008년 고은 시인이 술자리에서 동석한 여성을 성추행했다고 폭로한 박진성 시인의 경우 1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박진성씨가 법정에 나오지 않고 진술서만 제출했는데 당시 동석한 여성을 특정하지 못하는 점 등 사정을 종합하면 이 주장이 허위라고 하는 원고 측의 주장은 수긍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최영미 시인은 지난 2017년 12월 발표한 시 ‘괴물’을 통해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바 있다. ‘괴물’은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 Me too /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영미 시인은 선고 후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며 “성추행 가해자가 피해자를 뻔뻔스럽게 고소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면 안 된다. 진실을 은폐하는 데 앞장선 사람들은 반성하기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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