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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파시즘
  • 임하영
  • 승인 2019.01.2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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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파시즘이라고 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떠올린다. 무소불위의 권력, 제국주의를 향한 열망, 의회 민주주의 거부, 과도한 국수주의, 그리고 반유대주의. 조금 더 레이더망을 넓히면 독일의 나치, 쇼와 초기의 일본 등이 시선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파시즘은 완전히 사그라졌을까? 몇몇 연구자들의 주장대로 1919~1939년의 특수한 현상일 뿐일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정체성 정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그 전에, 도대체 파시즘이란 무엇일까?

잠시 시계를 1942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이탈리아에는 모든 청소년들이 참가해야 하는 경연 대회가 있었다. 갓 열 살의 나이로 출전해 ‘무솔리니의 영광과 이탈리아의 불멸의 운명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를 논하며 1등상을 탄 천재 소년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로 움베르토 에코. 유년기를 나치와 파시스트, 그리고 레지스탕스 대원들 사이에서 보낸 에코는 훗날 <영원한 파시즘>이라는 글을 남긴다. 한국에서는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으로 번역된 『Cinque scritti morali(다섯 개의 도덕론)』에 실린 글이다.

우선 에코는 파시즘이 고유한 철학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하나의 단일한 이념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정치적, 철학적 사상들의 콜라주이자 모순들의 집합체였다. 혁명적 질서를 선언했지만 반혁명을 원하던 지주들의 지원을 받았고, 공화주의를 표방했지만 왕가에 충성을 선언했다. 무솔리니의 친위대와 왕립 군대가 공존했고, 자유 시장을 찬양하는 국가 교육과 교회의 특권들이 한데 짜부라진 기이한 전체주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은 몇몇 특징들을 중심으로 확고하게 결속되어 있었다. 에코는 이를 <원형 파시즘Ur-fascismo>으로 명명한 뒤, 이중 단 하나만 나타나더라도 파시즘의 성운으로 응집되기에 충분하다고 경고한다.

원형 파시즘의 눈에 띄는 특징은 바로 ‘현대성의 거부’이다. 이 같은 전통주의는 후기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 합리주의에 대한 반발에 뿌리를 두며, 혼합주의적 양상을 띠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모순은 본래 원초적 진리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관대하게 용인해야 한다. 비판은 필연적으로 구별을 낳고, 구별은 바로 현대성의 상징이다. 그렇기에 이성과 계몽주의는 배척되어야 마땅하다. 현대 과학 공동체는 불일치를 지식의 진보를 위한 도구로 이해하지만, 원형 파시즘에서 불일치는 바로 배반이다.

이러한 비합리주의는 ‘행동을 위한 행동’을 강조한다. 행동은 그 자체로 아름다우며, 성찰 이전에 실행되어야 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무기력함의 방증이며, 그런 의미에서 문화는 의심스럽다. 괴벨스의 한 마디가 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나는 문화에 대한 말을 들을 때마다 내 권총을 뽑아 든다.”

원형 파시즘은 또한 ‘대중적 엘리트주의’에 기반을 둔다. 일단 모든 시민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국민에 속한다. 그러나 모든 지도자는 자신의 하급자들을 경멸하고, 또 그 하급자들 각각은 자신의 부하들을 경멸한다. 비슷한 과정이 반복되며 대중의 엘리트주의 의식을 강화시켜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각자는 ‘영웅’이 되기 위해 교육받는다. 영웅주의 숭배는 죽음 숭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원형 파시즘의 영웅은 죽음을 열망하고, 영웅적 삶을 위한 최상의 보상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주 빈번하게 다른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원형 파시즘은 ‘새로운 언어’를 말한다. 복잡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위한 도구들을 제한하기 위해 빈약한 어휘와 초보적인 통사를 구사하는 것이다. 이는 대중적인 책, 연설, 토크 쇼 등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다.

자, 연상되는 무언가가 있는가?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는가? 요즘에는 더 이상 ‘아우슈비츠를 다시 열고 싶다!’ ‘무솔리니 만세!’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원형 파시즘의 유령은 아직도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순진한 옷을 입고, 세련된 가면을 쓰고.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파시즘의 성운으로 응집되기 전에 하루빨리 각개 격파해야 한다. 우리의 자유는 너무나도 소중하니 말이다. 

 

<필자 소개>

1998년 끝자락에 태어났다.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대신 홈스쿨링으로 공부했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철학에 관심이 많다. <소년여행자>,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을 지었다.

임하영  kntimes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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