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신일철주금' 피해자 소송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지난해 10월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일본기업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소송 기자회견에서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원고인 김정주 할머니가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코리아] 1940년대 일본 군수기업인 후지코시에 강제동원됐던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2심에서도 승소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법 민사12부(부장판사 임성근)는 18일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계순(90)씨 등 27명이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후지코시는 김씨 등에게 8000만원~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근로정신대원으로 지원한 원고들은 당시 대부분 10대 초반이었으나 위험한 작업에 종사했고, 70년이 넘도록 보상이나 배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후지코시와 일본이 나이 어린 원고 등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교사 등 연장자를 동원하거나,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등 기망·회유·협박 등 수단을 동원해 근로정신대에 지원하게 했다”고 원고 승소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앞서 일본 법원이 후지코시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면서도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한국인 개인의 청구권은 포기됐다”며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 국내에서 기판력(효력)을 갖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본 법원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인식 하에 당시 시행된 메이지헌법 등에 근거해 후지코시의 책임을 판단했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한일청구권 협정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돼 있다는 후지코시 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2003년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해 패소했다는 것만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장애사유가 소멸했다고 볼 수 없고 소멸시효도 지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공동대표와 원고 소송대리를 맡은 임재성·김세은 변호사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판결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 대표는 “원고들은 2003년부터 일본에서 후지코시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이번 판결로 (피해자들의) 마음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치유됐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재판거래’로 재판이 장기화한 의혹을 두고 “이번 항소심 판결을 기다리면서 지난해에만 (피해자) 할머니 세 분이 돌아가셨다”며 “사건 결과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피해자들에게 사법부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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