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이 술만 마시면 때린다고 말할 수 없는 게 부모 마음인데…."

김모(74) 할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1년 가까이 노인보호시설에 살고 있다.

이혼한 아들은 김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술만 마시면 구타와 욕설을 일삼더니 기초노령연금까지 손을 댔다. 지옥 같은 생활을 견디다 못한 김 할머니는 사회복지사에게 도움을 요청해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김 할머니에게 아들과 함께 산 지난 3년은 입에 담기조차 힘든 두려운 세월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술에 취해 퍼부은 아들의 폭행과 폭언으로 김 할머니는 자다가도 놀라 벌떡 일어나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김 할머니는 "(아들이)술만 마시면 눈이 확 돌아가서 얼마나 무서운지 생각하기도 싫다"면서 "언제 또 술 마시고 나한테 무슨 행패를 부릴지 모르니깐 항상 불안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자식에게 버림받거나 학대받는 노인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로 노인 자녀가 부모를 학대하는 노(老)-노(老) 학대 역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공개한 '2012년 노인 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4개 노인보호 전문기관을 통해 접수된 신고 건수는 9340건으로서 지난해(8603건)에 비해 8.6% 증가했다.

학대 가해자 대부분은 배우자와 자녀 등 친족인 경우가 86.9%에 달했다. 또 가해자 중 아들이 41%로 가장 많았고, 배우자가 12.8%, 딸이 12% 순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폭언이나 무시 등 정서적 학대가 39%로 가장 많았고, 이어 신체적 학대(23.8%), 방임(18.7%), 경제적 학대(9.7%), 자기방임(7.1%) 등 순이었다.

학대받은 노인 가운데 40%는 하나 이상의 질병을 앓고 있었고, 치매 진단을 받거나 의심되는 사례가 23%나 됐다.

특히 노인을 학대한 사람 가운데 60세 이상인 경우가 3년 사이 4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0년 60세 이상의 학대 행위자는 944명이었는데 지난해에는 1314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인구 고령화로 인해 자녀가 60세를 넘는 경우가 늘고 있고, 배우자 또한 60세 넘은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노인들은 자식의 이혼이나 경제적 이유 등으로 극심한 학대를 당하고도 이를 제대로 알리거나 신고하지 않는다. 가해자 대부분이 자녀와 배우자라서 혹시 '자녀에게 피해가 가거나', '집안 망신'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의 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학대받는 노인들이 차마 자식을 경찰에 신고할 순 없어서 보호시설에 입소한 뒤에야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을 버리거나 폭행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라는 이유 때문에 신고를 꺼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노인 학대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노인보호전문기관과 상담인력을 늘리겠다는 처방을 내놓았다. 또 학대 신고 현장에 사법경찰관 동행을 의무화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격리하는 전용 쉼터를 확충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노인 학대를 줄이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원인은 가정 내 갈등을 해결하는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 관계가 약화되고, 노인에 대한 공경의식이 많이 사라진 게 하나의 원인"이라며 "노인 학대의 경우 저항력이 낮은 나이 많은 부모를 일방적으로 폭행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도 크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이어 "노인 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부모와 자녀의 유대관계를 회복하는 프로그램이나 교육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노인 학대를 다른 사람의 일로 생각하고 쉬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웃이나 친척 등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신고해 전문기관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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