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논의안 보도자료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1988년 최저임금법이 시행된 후 31년 만에 최저임금 결정체계가 개편된다. 구간설정위원회 신설을 핵심으로 하는 정부의 개편안에 재계, 노동계뿐만 아니라 주요 언론의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논의 초안’을 발표했다.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다음해 최저임금의 상하한을 결정하는 구간설정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이다. 현재는 노사정 각 9인씩 27명으로 이루어진 최저임금위원회가 심의와 의결을 도맡고 있다. 이와 달리 개편안에서는 노사 추천으로 뽑힌 전문가 9인으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가 최저임금의 상하한을 결정하고, 노사정 15~2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결정위원회가 구간 내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이원화된 방식이 제시됐다.

또한 최저임금 결정 시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을 고려하도록 한 현행 결정구조에 근로자의 생활보장 및 고용·경제상황을 추가했다.

♢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 경영계 “환영” VS 노동계 “개악”

경영계는 정부 개편안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는 7일 입장문을 내고 “정부 논의 초안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보다 경제적 판단을 강화하고 노·사·공익 간에 균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편하려는 것”이라고 평했다. 경영계는 이어 “향후 공론화 과정에서는 기업의 지불 능력, 고용 여력, 생산성 같은 요인에 대한 고려가 보다 중점적으로 다뤄져야 한다”며 최저임금 결정과정에 기업 입장이 더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는 정부 개편안이 노동자 입장을 배제하고 있다며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양대노총은 7일 각각 성명서를 내고 정부 개편안이 ‘개악안’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에는 당사자인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려운데다, 고용 및 경제상황을 최저임금 기준으로 추가한 것은 재계 입장을 우선 반영하겠다는 뜻이라는 것.

또한 노동계와 상의없이 개편안을 작성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핑계댄 ILO 최저임금결정협약(131조)은 최저임금제도 운용에 있어 권한 있는 노사 대표와 충분히 협의하기 위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4조 제2항)하고 있다”며 "노동계와 단 한 번의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개편하겠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ILO협약의 취지와 정신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 또한 “제도개선 TF이후 법 개정 및 개편안 논의는 사측이 제시한 의제(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선방안, 업종·지역별 등 구분적용, 최저임금 결정구조 구성개편)만 진행이 되었다”며 “충분한 논의 없이 국회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민주주의 절차상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고용체계 개편 논의안. <자료=고용노동부>

♢ 국내 언론 평가도 엇갈려

국내 일간지들의 정부의 최저임금 개편안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이 기존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데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번 개편안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보수성향 일간지들은 개편안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정부의 친노동 성향이 가장 큰 문제라는 입장이다. 조선일보는 8일 사설에서 비정상적인 기존 결정구조는 개편해야 한다면서도 “핵심은 최저임금위원회 개편이 아니다. 더 문제는 이 정부의 과도한 친노동 편향”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표를 의식한 정부의 노동 편향 포퓰리즘이 사라지지 않는 한 최저임금 과속 인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친노동 도그마에 빠져 현실에 귀를 막고 있는 한 최저임금 대란(大亂)을 잠재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또한 “정부가 최저임금 과속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속도조절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은 일단 인정할만하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최저임금 충격을 줄이겠다는 정부의 정책 의지와 책임”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이미 최저임금 인상 폭과 속도는 우리 경제가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다”며 정부가 최저임금 속도조절에 나서겠다는 확고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성향 언론은 우려와 기대가 절반씩 섞인 분위기다. 한겨레는 개편안의 핵심인 구간설정위원회에 대해 “객관적인 지표를 근거로 좀 더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봄직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결정위원회에 청년·여성·비정규직, 중소·중견기업·소상공인 대표를 포함시키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최저임금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되는 당사자들 의견을 더 많이 듣고 받아들이는 쪽으로 통로를 넓힐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반면, 경향신문은 구간설정위원회 신설에 대해 “전문가들이 최저임금 구간을 설정하는 것은 노·사 대표가 최저임금 결정에 참여하도록 권고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경향은 또한 최저임금 개편안이 노동계와 논의를 거치지 않고 작성됐다며 “노동계가 노사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개편안이라고 반발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경향은 이어 “더 큰 문제는 최저임금제 개편으로 경기 불황이나 고용 감소 등을 해소해 보겠다는 정부의 인식이다. 결정기준에 고용·경제 상황을 포함시킨 것이 단적인 예”라며 이번 개편안이 최저임금 속도조절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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