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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인문학(16)] 용지(用智)➀ - 하수는 눈으로 세고, 고수는 머리로 센다
  • 김태관
  • 승인 2019.01.0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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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조유적(減灶誘敵)=아궁이 수를 줄여 적군을 유인하다. 하수와 고수의 차이는 수읽기의 차이다. 하수는 눈앞의 것들을 센다. 반면에 고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센다. 아궁이 숫자가 줄었다고 쾌재를 부르는 것은 하수다. 이미 그럴 줄 알고 고수는 다음 수를 세고 있다. 지혜라는 눈(眼)을 통해.

 

위기구품의 다섯 번째 품계인 ‘용지(用智)’는 “지혜를 사용할 줄 안다”는 뜻이다. 전투에 임했을 때 힘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략(智略)을 구사해 상대를 내 페이스대로 요리할 줄 아는 단계다. 두뇌게임인 바둑에서 본격적으로 수읽기 싸움을 벌이는 단계가 ‘용지’다.

<회남자(淮南子)> 인간훈을 보면 지혜는 화와 복이 드나드는 문이다. 화와 복은 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같은 문으로 드나든다. 똑같은 일을 해도 그 사람의 지혜가 화와 복을 좌우한다. <회남자>의 설명이다.

“사람들이 일을 벌일 때는 다 같은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결과는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어떤 것은 이롭고, 어떤 것은 해롭다. 같은 일을 해도 결과가 다른 것은 사람마다 그 지혜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로 승자와 패자의 희비는 군사력보다는 지략 즉 지혜의 차이에서 갈리는 경우가 많다. 탁월한 병법가였던 손빈(孫臏)은 지략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병력이 많다고 언제나 승리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전술은 필요 없다. 그저 주판알을 퉁기며 적군과 아군의 머릿수만 세면 될 일이다. 무기와 장비가 충분하다고 언제나 이기는가? 만일 그렇다면 무기 숫자만 세면되지, 뭐 하러 굳이 싸우는가?”

 

전쟁은 숫자 즉 군사력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략 즉 전술전략에 따라 승패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가 있다. 전쟁뿐 아니라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여서 희비를 가르는 것은 준비한 숫자가 아니라 지략이다. 프로기사 5단인 ‘용지’가 되려면 지략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바둑에서 지략은 수읽기 싸움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하수는 수읽기가 약해서 불과 몇 수 앞도 제대로 못 보지만 고수는 수십 수 앞까지도 훤히 내다본다. 이 차이가 승부의 명암을 가른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생의 성패는 결국 경쟁 상대와의 수읽기 싸움에서 갈리는 것이다.

 

손빈은 <손자병법>을 지은 손무의 후손이다. 병법의 귀재였던 손빈은 라이벌이자 원수였던 방연(龐涓)과 후세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치열한 지략 대결을 벌인 바 있다. 두 사람이 벌인 수읽기 싸움은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희대의 군사전략가인 두 라이벌이 연출한 불꽃 튀는 두뇌게임을 통해 ‘용지’ 곧 지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잠시 살펴보자.

 

‘손빈’이라는 이름에서 ‘빈(臏)’자는 정강이뼈를 자르는 형벌을 가리키는 글자다. 손빈은 친구이자 원수인 방연에 의해서 두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받았다. 둘은 원래 귀곡자(鬼谷子)선생 밑에서 함께 수학한 동문의 관계였다.

이야기는 성격이 급하고 야심가인 방연이 먼저 세상에 나가면서부터 시작된다. 위(魏)나라 혜왕 밑에서 장군으로 입신한 방연은 배운 병법을 활용해 잇달아 전공을 세우며 나름대로 잘 나갔다. 그런데 위 혜왕이 손빈에 관해 비범한 인재라는 소문을 듣고 관심을 나타내자 사정이 달라졌다. 손빈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방연은 혹시라도 위 혜왕이 그를 등용해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했다.

음험한 방연은 화근은 미리 제거해 버리기로 마음먹고 손빈을 꾀어서 위나라로 불러들였다. 그러고는 제나라와 내통한 첩자라고 모함하여 두 다리를 자르고 얼굴에 먹물을 들이는 치명적인 형벌을 받게 했다. 다시는 세상에 나가지 못하도록 폐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손빈은 미치광이행세를 하는 도회술(韜晦術)로 방연의 눈을 속인 뒤 극적으로 위나라를 탈출했다. 제나라로 간 손빈은 타고난 능력을 인정받아 곧 군사(軍師)로 발탁되었다.

 

제나라 군사 손빈과 위나라 장군 방연은 전쟁에서 크게 두 번 수읽기 싸움을 벌였다. 하나는 방연이 혼쭐난 계릉(桂陵)전투이고, 또 하나는 방연이 끝장난 마릉(馬陵)전투이다.

 

방연의 위나라 군대가 조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는 손빈의 제나라에 도움을 청했다. 제나라 장군 전기(田忌)가 곧바로 방연의 군대를 치러나가려 하자 손빈이 말렸다.

“무릇 엉킨 실타래를 풀 때는 함부로 잡아당기지 않는 법입니다. 싸움을 말리겠다고 싸움판에 끼어들어 함께 주먹질하면 싸움만 더 커집니다. 급소를 찾아 허를 찌르면 일은 저절로 풀리게 돼 있습니다. 지금 위나라는 조나라를 치려고 병력을 총동원했기 때문에 위나라 도읍지는 허술합니다. 조나라를 도우러 가기보다는 위나라 도읍지를 공격하는 게 낫겠습니다. 그러면 위나라는 제 집 안방의 불부터 끄려고 군대를 돌이킬 것입니다.”

손빈의 말대로 하자 과연 위나라 군대는 조나라를 치다말고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다. 손빈의 제나라 군대는 계릉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위나라 군대를 쳐서 대승을 거두었다. 여기서 ‘위위구조(圍魏救趙)’ 즉 ‘위나라를 포위해 조나라를 구한다’라는 고사성어가 비롯됐다.

 

방연은 보이는 대로 움직였고, 손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다렸다. 손빈이 내다본 그대로 움직인 방연이 참패를 면치 못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같은 스승 밑에서 같은 병법을 배웠지만 손빈과 방연은 차원이 달랐다.

 

계릉전투 이후 13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 손빈은 평생 별러온 복수극을 마침내 완성할 기회를 잡았다. 이번에는 방연의 위나라 군대가 한나라를 공격했다. 한나라는 제나라에 도움을 구했고, 제나라는 또 다시 전기 장군과 손빈 군사를 전쟁에 내보냈다. 손빈의 군대는 ‘위위구조’ 때처럼 이번에도 한나라로 직행하지 않고 위나라 도읍을 향해 진격했다. 이 소식을 들은 방연이 주먹을 불끈 쥐며 비웃었다.

“손빈 그 녀석이 난다 긴다 해도 그 수가 빤히 보이는구나. 똑같은 수법으로 나를 두 번 속이려고 들다니 어림없는 짓이다. 손빈의 속셈을 역으로 이용해서 먼저 번의 패배까지 합쳐 두 배로 갚아주마!”

방연은 한나라에서 군대를 돌린 뒤 손빈이 이끄는 제나라 군대의 후방을 치려고 나섰다.

 

제나라 군사들은 방연의 군대가 뒤에서 나타났다는 소식에 황급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미 국경을 넘어 위나라 땅에 들어온지라 자칫하면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둥지둥 도망치는 손빈의 군대를 방연의 군대가 맹렬히 뒤쫓았다. 방연은 승리가 눈앞에 있다고 생각해 기세가 등등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손빈이 계산해 놓았던 움직임이었다. 손빈은 출전하기에 앞서 이미 전기 장군에게 이런 당부를 해 놓고 있었다.

“방연의 위나라 병사들은 원래 사납고 용맹스러워서 우리 제나라 군대를 겁쟁이라며 깔보고 있습니다. 무릇 전쟁에서 이기려면 상대에 따라 적절히 대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병법에 말하기를 이익에 눈이 멀어 무작정 적을 쫓아가면 결국 파멸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장군께서는 위나라 땅에 들어가면 첫날에는 밥 짓는 아궁이를 10만 개 만들고, 둘째 날에는 반으로 줄여 5만 개를 만드십시오. 그리고 셋째 날에는 다시 3만 개로 줄이십시오.”

 

감조유적(減灶誘敵), 즉 “부뚜막 숫자를 줄여 적을 유인한다”는 고사성어의 유래다. 야전에서 병사들이 밥을 지어먹으려면 부뚜막을 설치해야 하는데, 수십 명의 병사가 하나의 아궁이에서 취사한다. 그 아궁이 숫자를 세면 병사들의 숫자를 대략 가늠해 볼 수 있다.

전기 장군은 손빈이 시키는 대로 겁먹은 듯이 후퇴하면서 아궁이 수를 줄여 나갔다. 추격해 오던 방연은 제나라 군대의 아궁이 숫자가 날마다 줄어드는 것을 보고 기뻐서 외쳤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겁쟁이 제나라 졸개들이 죽기가 싫으니 날마다 탈영해서 내빼는구나. 밥 짓는 아궁이 숫자가 불과 사흘 만에 절반도 넘게 줄어들었다. 어서 쫓아가서 나머지 오합지졸들을 박살내버리자!”

 

마음이 급한 방연은 보병부대는 뒤에 떼어놓은 뒤 가볍게 무장한 정예 기병만을 이끌고 날쌘 걸음으로 추격에 나섰다. 하지만 이것도 손빈이 이미 꿰뚫어보고 있었던 움직임이었다. 손빈은 방연의 추격 속도를 계산해 보고 그날 저녁 때쯤에는 제나라 군대가 매복하고 있는 마릉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다. 마릉은 계곡이 깊고 길이 좁아 복병을 두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손빈은 군사들을 시켜 큰 통나무로 길을 막은 다음 그 껍질을 벗겨서 흰 부분에 이렇게 썼다.

“방연은 이 나무 아래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는 1만여 명의 궁수를 길 양옆에 매복시킨 뒤 명령을 내렸다.

“밤에 불빛이 켜지거든 일제히 쇠뇌를 쏘아라!”

 

날이 저물자 과연 방연의 군대가 마릉 계곡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길을 막고 있는 통나무를 치우려고 하다가 흰 부분에 웬 글자가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방연이 그 글을 읽고자 횃불을 켜들었다. 바로 그때 우레와 같은 함성이 일어나더니 수만 개의 화살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위나라 군대는 큰 혼란에 빠졌고 그 와중에 방연도 화살에 맞았다. 치명상을 입은 방연은 더 이상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어가며 방연은 이런 말을 남겼다.

“기어이 그 더벅머리 녀석의 이름을 천하에 떨치게 해주었구나.”

 

귀신이 곡하게도 손빈이 말한 그 시각 그 장소에서 방연은 죽고 말았다. 고수인 손빈은 하수인 방연이 언제 어디로 움직일지를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마디로 고수인 손빈이 한 수 아래인 방연을 가지고 놀았다고도 할 수 있다. 고수와 하수는 이렇게 수읽기의 차원이 다르다.

 

이 감조유적의 계책은 훗날 후한의 명장 우후(虞詡)가 이를 역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곧 부뚜막 숫자를 늘려나감으로써 병사들이 많은 것으로 위장해 적이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후한 안제(安帝) 때 서북쪽 오랑캐 강족(羌族)이 쳐들어 왔다. 이에 무도(武都)의 태수 우후가 수천의 병사로 맞섰으나 강족의 수만 병력에 비하면 크게 부족했다. 우후는 곧 지원군이 온다는 헛소문을 퍼뜨려 강족이 머뭇거리게 만들고는 도리어 허를 찔러 진격하면서 주둔지마다 아궁이의 숫자를 늘려 나갔다. 의아하게 생각한 부하가 까닭을 묻자 우후가 대답했다.

“그건 아군의 병력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적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손빈의 병법은 약하게 보여서 적을 속이지만, 나는 강하게 보여서 적을 속이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아궁이계책은 제갈공명이 사마의에게도 구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제갈량은 후주 유선(劉禪)의 명에 의해 철군할 때 아궁이 작전으로 사마의를 속여 추격을 따돌렸다.

유비가 죽고 난 뒤 제갈량은 저 유명한 출사표를 올리고 여러 차례 중원 진출을 시도했다. 숱한 난관을 뚫고 기산에서 승승장구할 때 느닷없이 조정에서 소환 명령이 내려왔다. 제갈량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주상께서 아직 어리신데 간신들이 날뛰는 모양이구나. 지금 물러나면 언제 다시 이런 기회를 얻겠는가?”

아쉽지만 철군을 결정한 제갈량 앞에는 난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추격해 올 게 빤한 사마의의 군대를 어떻게 물리치고 무사히 퇴각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제갈량은 의심이 많은 사마의의 성격을 이용하기로 했다.

“우선 군사를 다섯 길로 나누어 후퇴한다. 오늘은 영채 안의 군사가 1천명이라면 아궁이를 2천개 짓고, 내일은 3천개, 그 다음날은 4천개를 지어 후퇴할 때마다 아궁이 숫자를 늘려나갈 것이다.”

옆에 있던 양의가 물었다.

“옛날에 손빈이 방연을 잡을 때는 군사는 늘리고 아궁이는 줄이는 계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후퇴하면서 오히려 아궁이 숫자를 늘리려 하십니까?”

제갈량이 설명했다.

“사마의는 용병에 능한 사람이다. 우리가 물러나면 뒤쫓아 오면서 혹시 복병을 뒀는지 의심하여 빈 영채의 아궁이 숫자를 헤아려볼 것이다. 날마다 밥 짓는 아궁이 숫자가 늘어나면 군사가 정말로 물러났는지 아닌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함부로 추격하지 못할 것이다. 그 사이에 천천히 후퇴하면 군사를 잃지 않고 돌아갈 수 있다.”

과연 사마의는 아궁이 숫자가 날마다 늘어나는 것을 보고 복병을 두려워하여 뒤쫓지 못했다. 나중에야 모든 것을 안 사마의는 땅을 치며 한탄했다.

“공명이 우후의 계책을 흉내 내어 나를 속였구나. 내 도저히 그의 지략에 미치지 못하겠도다!”

 

앞서 손빈이 말한 대로 전쟁은 무기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방연을 비롯한 루저들은 아궁이 숫자만 세고 있었다. 인생도 마찬가지여서 숫자놀음이 아니다. 만일 가진 것이 많은 자가 반드시 이기게 돼 있다면 인생에서의 경쟁은 필요조차 없을 것이고, 또한 극적인 역전 드라마, 인간승리의 감동 드라마도 없었을 것이다.

 

하수는 보이는 것을 세지만, ‘용지’의 고수는 보이지 않는 것을 헤아린다. 돈이나 스펙, 외모나 조건 등 눈앞의 것만 열심히 세다가 낭패를 당한 사람은 하나둘이 아니다. 그대가 지금 열심히 세고 있는 아궁이는 무엇인가?

 

<필자 소개>

김태관은 신문기자로 한 세월을 살았다. 지금은 책 읽고 글 쓰다가 가끔 산책을 하며 또 다른 세월을 보내고 있다. 편집부장과 문화부장, 논설위원, 스포츠지 편집국장 등이 그가 지나온 이정표들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들어 있지 않다고 그는 생각한다. 진짜 그가 어디에 있는지, 오늘의 그는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다. 고전의 숲을 헤매며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있는 것도 그런 작업 가운데 하나다. 그 과정에서 뒷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들을 펴내기도 했다. 인류의 스승 장자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찾아보는 <곁에 두고 읽는 장자>, 한비자를 통해 세상살이를 엿본 <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가>, 바둑으로 인간수업을 풀어본 <고수>, 그리스 신화를 쉽게 풀어 쓴 <곁에 두고 읽는 그리스 신화>, 한 시대를 풍미한 철학자들의 말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는 <늙은 철학자가 전하는 마지막 말>과 <늙은 철학자의 마지막 수업> 등이 그것이다.

김태관  kntimes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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