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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km 비추는 스페인 등대
  •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 승인 2018.12.2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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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은 인터넷 과학신문 <The Science Time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문 보기)

 

스페인의 북서부 지역에 있는 항구도시 라코루냐는 고대 이래로 대서양 항로의 정박지 역할을 해왔다. 크루즈 정기선이 즐겨 찾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의 이 도시에는 ‘죽음의 해변’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해안선이 있다.

한때 세상의 끝이라고 믿어진 죽음의 해변에는 건설한 지 무려 190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는 등대가 자리 잡고 있다. 57m의 암석 위에 지어진 높이 55m의 ‘헤라클레스의 탑’이 바로 그 주인공. 수면으로부터 112m의 높이에서 깜빡이는 등대 불빛은 최대 60㎞ 떨어진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라코루냐에 로마인들이 들이닥친 것은 기원전 61년이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직접 이끌었던 로마의 해양탐험대는 당시 전략적인 해상 요충지였던 이곳에 항구와 상업을 위한 정착촌을 건설했다.

로마시대에 건설된 헤라클레스의 탑은 지금도 등대로 사용되고 있다. ⓒ 위키미디어(Lmbuga)

헤라클레스의 탑은 바로 이 지역을 점령한 로마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1세기 후반 트라야누스 황제가 통치하던 시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내용은 이 탑의 작은 부속 구조물에 새겨진 봉헌사에 담겨 있다. 그에 따르면 이 탑을 세운 건축가는 카요 세르기오 루포라는 사람이었다.

이 등대가 ‘헤라클레스의 탑’이란 이름을 얻은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 때문이다.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의 저주로 정신이 이상해진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세 아들을 모두 죽여 버린다. 잠시 후 제정신으로 돌아온 그는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델포이로 향하고, 그곳에서 신탁을 받게 된다.

신탁 내용은 티린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의 노예가 되어 12개의 명령을 이행하라는 것. 그 12개의 명령 중 하나에는 머리가 3개 달린 괴물 황소 게리온을 잡아 왕 앞에 대령하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거대한 게리온과 격투를 벌여 마침내 쓰러뜨리고, 라코루냐에 그 머리를 묻은 후 그 위에 탑을 지을 것을 명했다고 한다.

헤라클레스의 탑은 로마 제국 전반에 걸쳐 오랫동안 등대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다 쪽으로 향한 은신처 안의 정상에 있는 단에서 나무로 불을 피우는 장치가 발견됐다. 하지만 고중세시대에는 등대에 불을 밝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이킹 침략 시기(9세기경)에는 등대는 물론 도시도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었다. 그러다 11세기 이후 다시 작은 마을이 건설되었는데, 이때 헤라클레스의 탑은 방어용과 감시용으로 이용됐다. 그 덕분에 헤라클레스의 탑은 폐허가 되지 않고 보존되었다.

14세기부터 라코루냐는 스페인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제항으로 성장했다. 당시 이곳은 북유럽과 지중해 사이의 핵심적인 무대였는데, 그때 헤라클레스의 탑도 등대 기능을 완전히 회복했다.

16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헤라클레스의 탑은 지붕과 목재 계단 등 부분적인 복원 공사가 실시됐다. 그러다 18세기 말에는 두 단계에 걸쳐 대규모의 복원공사가 진행됐다. 1788년부터 1806년까지 항해상의 이유, 탑의 외부 상태, 조명 체계의 변경 등을 이유로 공사가 진행된 것.

공사는 해군 중위이자 건축가였던 유스타키오 지아니니의 지휘 하에 진행됐다. 그는 공사에 앞서 이 탑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계측과 설계를 먼저 진행함으로써 기술적인 기능을 복원한 반면 중앙에 있는 로마 시대의 기념물 원형은 그대로 두었다.

55m의 탑 높이 중 34m는 로마 시대에 석조 공사가 완성된 것이며, 나머지 21m는 이때 복원됐다. 유스타키오 지아니니는 2개의 팔각형 모양을 덧붙여 로마시대의 핵심 부분을 더 증가시켰다.

1755년 11월 11일 기상 역사상 가장 돌발적인 사태인 리스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이 지진으로 최대 10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건물 1만 채가 무너졌다. 포르투갈과 인접하고 대서양에 면한 라코루냐 역시 이 지진으로 많은 건물들이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의 탑은 견고한 건축 설계와 모르타르의 품질 덕분에 지진을 견뎌냈다.

1847년에는 등대의 광학 체계가 프레넬 렌즈로 바뀌었다. 프레넬 렌즈는 프랑스의 물리학자 오귀스탱 장 프레넬이 등대의 빛을 평행 광선으로 내보내기 위해 발명한 렌즈다.

이 렌즈는 볼록렌즈의 기능은 살리되 볼록한 부분을 평평하게 만들어 많은 홈을 새김으로써 그 홈에서 빛을 굴절시켜 확대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빛을 포착하는 효율성이 크게 개선돼 강력한 전구에서 나오는 빛의 80%를 빔으로 집중시킬 수 있다.

1926년에는 등대가 다시 전기조명에 적합하도록 변경됨으로써 이곳에서 보내는 빛이 최대 60㎞ 떨어진 지역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1990년대에는 19세기 초반에 추가로 덧붙인 단 아래 탑의 기단을 발굴 조사하던 중 로마 시대의 기단과 매장되어 있던 유물이 출토됐다.

현재 헤라클레스의 탑은 관광지로서도 인기가 높다. 탑 안에 있는 242개의 계단을 올라가서 보는 바다의 모습이 절경 중의 절경으로 꼽힌다. 이 유적지는 또한 조각공원이기도 하다. 탑 부근에는 철기시대의 몬테 도스 비코스 바위 조각과 이슬람 공동묘지가 있다.

이 탑은 로마 시대의 등대 중 유일하게 완전히 보존된 것으로서, 구조적 완전성과 기능적인 연속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따라서 고대의 정교한 항해 체계를 입증하는 자료가 될 수 있으며, 서유럽에서 대서양 항로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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