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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칠궁 - 1장 타임슬립의 현장 ②
  • 금강 작가
  • 승인 2018.12.2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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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웹소설 <칠궁>은 420년 전 숙종의 비(妃)였던 장희빈이 시대를 뛰어넘는 복수극을 그린 팩션 소설이다. 집필 동기는 2013년 화창한 봄날, 칠궁을 방문했을 때 떠오른 영감에서 비롯됐다. 칠궁은 조선 왕들을 낳은 생모이나 왕비에 오르지 못한 후궁 7인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놀라운 것은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인 장희빈과 숙빈 최씨가 나란히 칠궁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난 장희빈의 입장에서는 원수가 옆에 누워있는 꼴이니 혼령이 편치 못할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장희빈과 숙빈 최씨를 칠궁에 합사한 것이 누구의 뜻인지 궁금했다. 필자는 즉시 취재에 들어갔다. 그 결과 육상궁(숙빈 최씨)과 대빈궁(장희빈)은 을사늑약이전에만 해도 각각 따로 떨어져 있었음이 확인됐다. 그런 것이 한일합방 이태 전에 전격적으로 합방(?) 조치가 이루어졌다.

필자는 칠궁에 이어 장희빈의 묘소도 찾아갔다. 장희빈의 묘는 인근에 있는 인원왕후 인현왕후 능에 비해 매우 초라했다. 장희빈은 살아서는 사약을 받고 비극적 생을 마감하더니 죽어서까지 천대를 받고 있었다.

장희빈은 시대가 그녀를 악녀로 규정했다. 다수 재야 사학자들의 표현을 빌면 숙종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죄명은 왕을 투기한 죄, 왕비를 모함한 죄다. 그 죄명은 진실일까. 장희빈은 왜 숙종 시대를 뛰어넘어 후대에까지 악녀의 표상으로 자리매김된 것일까. 숙종의 잘못은 없었을까. 잘못이 있었다면 무엇일까.

<칠궁>은 지금까지 장희빈을 소재로 만든 기존의 소설, 드라마의 내용과 차원을 달리 한다. 장희빈의 입장에서 숙종의 이중성과 잘못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남성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그 시대에 힘없이 당한 여인(장희빈). <칠궁>은 그 장희빈이 환생해 권력자(숙종)을 찾아가 복수를 펼치고 역사적 재조명을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2.

 

20분 후 서오릉 관리사무소.

“경찰에서 나와 다 조사를 하고 갔는데 무슨 일로 또...”

김훈이 신분증을 제시하자 관리소장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단 현장부터 같이 가시죠.”

소장은 허둥지둥 앞장섰다. 이 사건으로 문책을 받을 것을 걱정하는지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가 명릉입니다. 저기 보이는 쌍릉이 숙종과 인현왕후가 묻힌 곳이고, 그 옆 언덕이 인원왕후 능입니다. 대빈묘는 좀 외진 곳에 떨어져 있고요.”

대빈묘요? 하고 박찬일이 물었다.

“예 장희빈 묘를 대빈묘라 부르지요. 그전엔 썰렁했는데 요즘은 인현왕후 능보다 대빈묘를 많이 찾아옵니다.”

“그건 왜죠?”

“장희빈 묘 앞에서 절하고 춤추면 애인이 생긴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는데 주로 노처녀들이 많이 오죠.”

“그거 다 미신 아닙니까.”

“글세요. 어떤 풍수가가 장희빈 묘 뒤에 있는 소나무가 바위를 뚫고 자라서 기가 엄청 세다고 해요. 장희빈 묘 앞에 절을 하면 그 기운을 받아서 헤어진 애인도 찾아온다는데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고요. 자, 다 왔습니다.”

 

폴리스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김훈은 서둘러 현장으로 다가갔다.

<촉수엄금> 푯말 뒤로 묘가 어지럽게 파헤쳐진 채 볼썽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유명 조선국 옥산부대빈 장씨지묘

비석에는 달랑 그 표식만 씌어 있었다.

“정말 허술하기 짝이 없군. 이렇게 길가에 방치되다시피 묘가 있으니. 명색이 왕후를 지낸 분인데 이렇게 모셔도 되는 겁니까. 인현왕후 능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사약을 받고 죽은 것도 모자라 사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저렇게 멸시를 받고 있으니...”

소장이 맞장구치기라도 하듯 박찬일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고 있지 말고 샅샅이 수색해. 증거가 될 만한 건 뭐든 찾아내야 해. 묘를 중심으로 내가 오른쪽을 맡을 테니 자네는 왼쪽. 알았지.”

김훈은 어느새 확대경을 빼들고 있었다.

 

해가 점점 기울고 있었다. 수색을 시작한지 세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사건 현장에 ‘열쇠’가 있다.

수사과에 배치된 후 그 말을 철칙으로 삼고 지켜왔다. 그런데 이번엔 허탕인가.

실망감에 일어서려는 순간, 갑자기 박찬일이 소리쳤다.

“반장님 여기 와서 이것 좀 보세요.”

박찬일은 묘지 북쪽 방향으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김훈이 득달같이 달려갔다.

“이게 뭐죠? 애들 노리개 같기도 하고 장신구 같기도 하고”

김훈은 박찬일이 집어든 물체를 뚫어져라 들여다봤다.

나비 모양의 작은 물체였다. 날아갈 듯 선이 고운 것이 범상치 않은 느낌이었다.

“조심해서 수거해. 혹시 지문이 남아있을지 모르니”

김훈은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뒤에야 수색을 중단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궁금한 질문을 물어볼 차례였다.

“소장님. 사건 발생 후에 여기서 서성거렸다는 사람 말입니다. 그 사람이 정확히 어떤 행동을 했습니까.”

“아, 그 이상한 중 말씀이군요. 우리 직원이 발견하고 다가갔는데 하도 괴이한 행동을 해서 섬찟했답니다. 양팔을 활짝 벌려 신들린 무당처럼 춤을 추다가 돌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주문을 외우더랍니다.”

“그뿐입니까. 직원이 말을 걸지는 않았고요?”

“아닙니다. 거기서 그러면 안 된다고 야단쳤는데 요지부동이더랍니다. 그래서 경찰에 즉각 신고했었죠.”

“으음...”

김훈은 생각할수록 그 중의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단순히 정신병자로 치부하기에는 뭔가 곡절이 있는 것 같았다. 김훈은 소장에게 명함을 건네며 당부했다.

“혹시 말입니다. 그 자가 또 나타나면 이 번호로 즉시 연락주세요.”

 

사무실로 돌아온 김훈은 정보 검색을 시작했다. 칠궁에 대해 상세히 알아볼 요량이었다.

 

-칠궁(七宮)은 대한민국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사적 제149호로 등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왕을 낳았지만 정식 왕후가 되지 못한 7명의 후궁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칠궁의 원주인은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다. 1725년 영조가 최씨의 신주를 모신 사당 '육상궁'을 건립한 이후 연호궁,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이 옮겨왔고 덕안군을 끝으로 7명의 신위를 모시게 되어 칠궁이 되었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일반인 관람이 금지되었다가 33년 만인 2001년 11월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자료를 찾아보던 김훈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칠궁을 조성한 이유가 조선시대 왕들의 모친에 대한 효성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납득이 갔다. 하지만 장희빈과 숙빈 최씨를 칠궁에 합사한 것은 누구의 뜻인지 궁금했다. 특히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난 장희빈의 처지에서는 원수가 옆에 있는 꼴이니 혼령이 편치 못할 것 같았다.

김훈은 자료를 더 검색해보았다.

“칠궁 권역에는 숙빈 최씨의 사당인 숙빈묘만 있었으나 1908년 서울 주변에 흩어진 여러 사친묘(임금의 생모가 된 빈의 사당)를 합치면서 육궁이 되었다. 이어 1929년 고종의 후궁인 엄씨(영친왕의 생모)의 덕안궁을 옮겨오면서 지금의 칠궁이 되었다.

1908년이면 한일합방 이태 전으로 일제의 위력이 조선천지를 압도할 무렵이다. 수백 년 동안 합사하지 않았던 것을 하필 이때 합친 까닭이 뭘까.

조선 왕족에 관한 사안은 일일이 통제하던 일제가 칠궁 합사에 관여하지 않았을리 만무할 터. 그렇다면 이 칠궁에도 일제의 간계가 숨어 있었단 말인가?

김훈은 내친김에 장희빈 묘도 검색해보았다.

 

-장희빈의 묘는 처음에 경기도 양주 인장리에 있었다. 하지만 묘에 물기가 있다는 상소가 있자 숙종45년(1719) 경기도 광주 진해촌(眞海村)으로 천장했다. 그런데 1969년 묘소를 통과하는 도로가 생겨 서오릉의 숙종 곁으로 이전했다.

김훈은 다소 놀랐다. 드라마를 통해 ‘악녀의 표상’으로만 기억하던 장희빈이 사후에도 철저하게 천대를 받았다는 사실에.

어떻게 보면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었다. 조선의 왕비치고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난 여인은 장희빈이 유일했다. 하물며 저승으로 간 뒤에도 묏자리가 몇 번이나 바뀌는 수난을 겪었다니.

 

그나저나 칠궁사건과 장희빈 묘 사건 사이에 어떤 연결점이 있을까. 두 사건 모두 동일범 소행일까. 한쪽은 장희빈, 다른 한쪽은 숙빈 최씨를 상대로 한 범행인데 동일범 소행으로 볼 수 있을까. 동일범 짓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두 손으로 머리를 싸매던 김훈은 벌떡 일어났다.

“가자구!”

“아니 어딜요 이밤중에.”

박찬일이 시계를 쳐다보며 대꾸했다. 시나브로 자정이 가까워져 있었다.

“어디긴 어디야 사건 현장이지. 청와대 경호실에 전화해서 수사 협조 구해. 칠궁 건으로 지금 간다고.”

 

* <칠궁>은 매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작가 소개>

금강(錦江·필명) 웹소설 작가. 시나리오 작가 겸 문화평론가

금강 작가  kntimes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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