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부끄러운 사실을 하나 고백하자면, 나도 청소년 시절 『환단고기』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우리 민족이 유라시아 대부분을 점령하던 때가 있었다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항상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고문당하고, 심지어 나라까지 빼앗긴 근현대사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찬란한 역사를 왜곡시킨 일제와 식민사학자들이 얼마나 밉던지. 하루빨리 무너진 역사를 바로 세우고 잃어버린 고토를 회복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 되었다. 그렇게 가슴 끓이기를 1년 여. 어느 날 불현듯 히틀러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사역사학과의 뜨거운 첫 만남이자 결별이었다.

이문영의 『유사역사학 비판』은 아직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백신으로, 이미 감염된 이들에게는 특효약으로 추천할 만한 책이다. 우선 유사역사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의 정의를 들어보자.

“유사역사학은 민족의 자부심을 키운다는 미명 아래 중국과 일본에 대한 증오를 키우고 있으며, 동남아 국가들을 아예 불가촉천민처럼 다룬다. 이런 사상이 친일파의 손에서 싹튼 것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아리안인 최고’를 외친 나치즘과 ‘만세일계의 황국신민’을 외친 일본제국의 사상을 모태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고대에 아시아를 지배했다는 내용에서 일본이라는 주어를 한국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유사역사학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 뿌리에 최동이라는 인물이 있다. 세브란스병원 의사 출신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친일행적이 등재된 바 있는 최동은 1966년 『조선상고민족사』라는 두꺼운 책을 출판한다. 그는 조선 민족의 고향이 중앙아시아이며, 그곳의 아카드(Akkad)족 분파라고 주장했다. 아카드족 분파가 기원전 3000년에 동방으로 이동하여 북만주 송화강 연안 지대에 정착했으며, 이후 세 부류로 나뉘어 하나는 중국 동해안으로, 하나는 요동으로, 하나는 한반도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매우 감명 받은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역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일제강점기 군수 출신 문정창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동이족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정착하여 수메르 문명을 만들었고, 아브라함이 수메르 지역 출신이므로 이스라엘과 한민족은 형제의 나라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심지어 영역 구약성서 역대기 상 16장 13절의 ‘Chosen People’이라는 단어를 ‘조선’과 비슷하다며 연결시킨다. 참으로 실소가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식민사학’이라는 프레임을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존의 역사학자들을 ‘일본인 어용학자’로 매도하며 조선총독부에 부역하는 매국노로 취급했다. 이러한 프레임은 초대 문교부 장관이자 나치 칭송자인 안호상, 『환단고기』의 저자 이유립 등으로 이어져 오늘날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유사역사학이 위험한 것은 비단 그것이 틀렸을 뿐 아니라 필연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로 끝맺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사역사학은 이승만의 ‘일민주의’의 뿌리였고, 박정희의 민족주의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또한 그 연원을 쭉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 제국주의의 ‘내선일체론’, ‘대동아공영권’ 같은 주장과 맞닿아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아직도 적잖은 지식인들과 정책결정권자들이 유사역사학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3년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의 연설문에 『환단고기』가 인용되었으며, 현 정부의 유력 인사들도 유사역사학 추종자들과 교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몇몇 유사역사학 인사들은 공론장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지난 2015년 국정교과서 논란 때 “국정화로 하다가 검인정으로 가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 “국민의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는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고 찬성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참으로 걱정이 아니 될 수가 없다.

식민사학을 부르짖는 그들이 바로 제국주의 사관에서 비롯했음을, 애국을 주창하는 그들이 오히려 동북공정의 빌미를 제공했음을 이제는 직시해야 한다. 프랑스의 언론인 샤를 페기가 말했듯, 우리는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오류와 역설로 가득한 유사역사학의 악순환에 더 이상 빠져드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역사, 특히 고대사에 관심이 있는 모두에게 『유사역사학 비판』의 일독을 힘주어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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