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아동안전위원회(위원장 이제복)이 강남역 3번 출구 앞에 아동학대 신고 동참 캠페인의 일환으로 설치한 전시물을 지나가던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코리아] 강남역 3번 출구에는 얼핏 보면 알아채기 어려운, 하지만 눈여겨보면 자못 기괴한 느낌마저 풍기는 전시물이 설치돼있다. 이 전시물은 추운 날씨에 양말만 신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한 마네킹이 하얀 시트지에 덮여 벽면에 고정된 형태를 띠고 있다. 스마트폰에 집중하며 걸음을 재촉하다가 잠시 고개를 들고 흠칫 놀라는 사람들, 혹시 진짜 아이인지 조심스럽게 마네킹을 만져보는 사람들, 우두커니 서서 전시물을 응시하는 사람들 등등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전시물을 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마지막으로 닿는 곳은 모두 같다. 그것은 아이를 결박한 하얀 종이 위에 적혀진 질문이다. “당신은 이 아이가 보이나요?”

이 전시물은 아동안전위원회의 2차 프로젝트 ‘아동학대 신고 동참 캠페인’의 일환으로 지난 17일 오후 강남역 3번 출구에 설치됐다.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통과를 목표로 뛰었던 1차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아동안전위원회의 새로운 프로젝트는 가장 빈번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무관심하게 반복되고 있는 문제, '아동학대'에 초점을 맞췄다.

2016년 전국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일어난 아동학대사례는 약 1만8700건. 이는 2015년 대비 60%가량 증가한 수치이자 2001년 2105건에 비해 9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전체 범죄 건수 약 166만 건, 성범죄 약 2만4000건과 비교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이다.

이처럼 높은 빈도로 발생하는 아동학대 범죄지만 실제 신고로 이어져 아이가 보호받는 경우는 드물다. 아동안전위원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학대 아동이 발견돼 보호받는 비율은 불과 0.22%로, 미국 0.92%, 호주 0.85%의 4분의 1 수준이다. 이번 캠페인을 준비한 이제복 아동안전위원회 위원장은 17일 현장을 찾은 기자에게 “아동 학대는 특성상 대부분이 가정 내에서 발생한다. 이 때문에 주변의 관심이 없다면 학대 사실을 발견하거나 신고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연간 2만 건 가까이 발생하는 아동학대사례를 막기 위한 궁극적인 해답은 결국 ‘관심’이다. 아동안전위원회의 캠페인이 자칫 보는 이를 도발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당신은 이 아이가 보이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얀 시트지에 결박당한 아이의 모습은 일단 눈길을 주고 나면 어떻게 이걸 보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눈에 띠지만,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하다.

구겨진 시트지에 갇혀있는 아이 마네킹의 시각적 이미지는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으로 보였다. 한 시민은 촬영 중인 기자에게 전시물의 의미를 설명해달라고 묻기도 했다. 아동학대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취지를 설명하자 이 시민은 “정말 좋은 취지의 캠페인이다”라며 “(전시물의) 인상이 너무 깊게 남아서 잊히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번 2차 프로젝트에서도 1차와 같이 아동학대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준비했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살인죄 항목을 추가한 것. 기존 특례법 상 아동을 학대에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게 돼있다. 하지만 ‘치사’의 경우 학대범의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는 용어다.

아동안전위원회의 개정안에서는 ‘아동학대살인죄’가 신설되고 최소 형량은 7년으로 정해졌다. 이 위원장은 “존속살해는 가중 처벌로 최소 형량이 7년이다. 아동학대사례의 대부분이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데, 부모가 자녀를 학대에 죽음으로 내몰았다면 ‘학대치사’가 아닌 ‘존속살해’로 처벌해야 한다”고 법안 취지를 설명했다.

호주어린이재단이 설치한 아동학대 반대 캠페인 전시물이 시민들의 관심을 모은 뒤 아이가 구조된 모습으로 바뀌었다. <사진=공익광고 전문 웹사이트 OSOCIO(www.osocio.org)>

하지만 이번 캠페인의 궁극적인 목적은 개정안 통과가 아니다. 이 위원장은 “개정안이 시행되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캠페인이 널리 알려져서 아동학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설명했다.

아동안전위원회는 홈페이지에서 이번 캠페인에 대한 누리꾼들의 응원 댓글을 모으고 있다. 지난 2016년 아동학대사례 건수인 1만8753개의 응원 댓글이 달리면 전시물도 하얀 시트지에 갇혀있던 아이가 구조된 모습으로 바뀔 예정이다. 처음 이 캠페인을 시작한 호주어린이재단의 경우에는 최초 전시물에 “방치된 아이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Neglected children are made to feel invisible)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후 시민의 관심이 늘어나면 아이가 구조되고 그 자리에 “날 봐줘서 고마워요”(Thanks for seeing me)라는 문구가 남아있는 모습으로 바뀐다.

이날 서툰 솜씨로 전시물을 설치하느라 고생하던 아동안전위원회 멤버들 곁을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잠시만 신축 아파트 설명회를 들어보라며 겨울바람 속에서 사은품을 나눠주느라 분주했던 한 여성도 있었다. 무관심한 행인들에게 계속 거절당하면서도 한시도 바쁜 목소리가 멈추지 않았던 그녀는 전시물이 완성되자 생각에 잠긴 듯 물끄러미 아이 마네킹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못마땅한 말투로 이 위원장에게 말을 건넸다.

“왜 아이 신발을 안 신겼어? 안쓰럽게… 내가 이 수건이라도 한 장 깔아줘도 될까?”

고단한 삶 속에서도 맨발의 아이를 보면 수건 한 장이라도 덮어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아동안전위원회는 학대에 고통받는 1만8753명의 아이들에게 1만8753개의 수건을 덮어줄 ‘어른’들을 기다리고 있다. 1만8753개의 수건이 모인 뒤 풀려난 아이는 과연 갇혀 있던 자리에 어떤 말을 남겨뒀을까?

아동안전위원회 아동학대 신고 동참 캠페인 홈페이지: https://prayforsouthkorea.org/campa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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