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과학이 창조한 세계문화유산
흙 건축 예술의 진수 '토루'
  •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 승인 2018.12.14 10:49
  • 댓글 0

기사 원문은 인터넷 과학신문 <The Science Time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문 보기)

 

1980년대 초반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사진 한 장으로 인해 발칵 뒤집어졌다. 중국 남부 지역을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사진 속에 핵미사일 기지처럼 보이는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그 물체는 핵미사일 기지가 아니라 중국의 5대 민가 건축양식 중 하나인 토루였다.

CIA가 중국의 전통 가옥을 미사일 기지로 착각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토루의 엄청난 크기를 꼽을 수 있다. 3~5층으로 건축된 토루는 직경이 40~60m이며, 둘레는 수백m에 이른다. 중국 푸젠성 샤먼시 화안현에서 가장 큰 토루인 ‘이의루’의 경우 면적이 약 9300㎡로서, 그 크기가 축구장의 1.5배에 달한다.

거대한 UFO처럼 보이는 토루의 외양. ⓒ UNESCO / Author : Song Xiang Lin

토루의 독특한 외양도 CIA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토루는 원형, 삼각형, 사각형, 팔각형 등 다양한 형태를 지니는데, 보통 원형이 많다. 마치 로마의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에 기와지붕을 얹은 듯한 모습을 지닌 토루는 얼핏 보면 거대한 UFO와도 비슷하다.

토루가 이처럼 특이한 외양을 지닌 것은 방어 목적으로 지어진 집단 주택이기 때문이다. 토루를 건설한 이들은 북방민족의 침입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 왔던 한족들이다. 그들은 주로 푸젠성이나 광둥성 등에 정착했는데, 그 지역에 먼저 살고 있던 토착민과 구별해 ‘객가(客家)’라고 불렸다.

전쟁을 피해 그 지역에 정착한 객가인들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폐쇄적으로 집을 지었다. 진흙과 나무, 지푸라기, 찹쌀, 설탕 등을 사용해 높이 10m 이상, 두께 2~3m의 외벽을 견고하게 쌓아 올린 다음, 출입문은 하나만 두었던 것.

그리고 1~2층에는 창문을 아예 내지 않았으며, 3층 이상부터 환기를 하고 밖을 감시할 수 있는 창문을 만들었다. 이 창문의 주된 용도는 적이 침입할 때 활을 쏘기 위함이었다. 밖에서 보면 토루는 완벽한 군사 요새이자 철옹성이었던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출입문은 불에 타지 않는 나무로 제작했으며, 문 위에 물을 담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적의 화공에 대비했다. 또한 토루 아래로 깊이 벽을 만들어 땅속으로 굴을 파고 들어올 수도 없게 했다. 토루의 공용 마당에는 우물과 가축 등을 기를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외부와 전쟁을 치르더라도 한동안은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이처럼 흙을 이겨서 만든 공동주택이 중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에 등장한 것은 약 6000년 전의 신석기시대 이후였다. 푸젠성의 토루는 11~13세기 송원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14세기(명나라 초기) 이후 발전했다.

초기에 지어진 토루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장방형 또는 정방형이었으며, 장식이 수수하고 돌로 된 기초 부분이 없었다. 그러다 14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 규모가 훨씬 큰 토루가 지어졌다. 그때부터 푸젠성에서도 농업이 발달하면서 지역이 부유해져 도적의 약탈이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다.

토루는 요즘의 아파트와 같이 여러 세대가 거주하는 집단 주택이다. 토루 한 채에 한 씨족 전체가 살면서 마을 단위의 기능을 한 것. 보통 토루 한 채에는 100여 개의 방이 있고, 30~40가구가 거주했다. 규모가 큰 토루의 경우 400여 개의 방에 최대 8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다.

토루의 1층에는 부엌과 식당이 있고, 2층에는 창고, 3층 이상에는 주거를 위한 침실과 손님들이 머물 수 있는 객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토루 내부의 한 가운데 마당에는 씨족의 각종 행사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사당, 학교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토루의 외곽은 매우 폐쇄적인 형태로 건설되었지만, 내부 구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씨족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을 통해 최대한 소통하며 생활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티에트겐 학생 기숙사는 바로 이 점에서 영향을 받아 토루와 비슷한 형태로 지어졌다.

360여 명의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는 이 기숙사는 학생들 방을 토루처럼 둥근 모양으로 배치하고 가운데에 마당을 두었다. 이 마당으로 향하는 길에 독서실과 휴게실, 다용도실 같은 공동 공간을 배치한 것. 즉, 학생들의 거주 공간은 건물 바깥쪽으로 향하도록 해서 프라이버시를 보장했으며,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은 중심에 배치함으로써 학생들 간에 소통의 장이 되게 한 것이다.

두터운 흙벽으로 쌓아올린 토루의 내부는 한옥처럼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짜 맞춰 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이 매우 정교해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였다. 푸젠성의 토루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유창루는 지난 700년간 비바람과 지진을 견디면서 경사가 15도나 기울었지만 건물이 무너지지 않고 현재 여행자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토루의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지금도 토루에 거주하면서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토루도 있지만, 대부분의 토루에는 현재 사람들이 거주한다.

푸젠성에는 3000여 채의 크고 작은 토루가 남아 있는데, 그중 46채가 2008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대부분의 토루는 기록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13세기부터 토루를 만든 가문의 이름 및 건축가 이름 등이 남아 있다. 토루와 관련된 이 같은 방대한 기록은 700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흙 건축 예술의 탄생과 혁신, 발전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오늘의 뉴스
문대통령
문대통령 "김학의 장자연 버닝썬 사건 엄중 수사해야"
“샤오미, 폴더블폰 2분기 출시 가격은 갤럭시 폴드 반값”
“샤오미, 폴더블폰 2분기 출시 가격은 갤럭시 폴드 반값”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