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누리꾼이 작성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던 성관계 표준 계약서 견본.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이코리아영국에서 성관계 전 합의 동영상 촬영을 요구하는 남성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영국 타블로이드지 ‘이브닝스탠더드’는 최근 “더 많은 남성들이 여성에게 성관계 전 합의동영상 촬영을 요구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을 내고, 미투운동 이후 변화된 연애풍속에 대해 설명했다. 해당 칼럼을 기고한 레이첼 킹은 성관계를 갖기 전 남자친구로부터 “나와 성관계를 갖기로 합의했다고 말해줄 수 있겠어?”라는 부탁을 받고 당황한 경험을 전했다. 킹은 합의 없는 성관계를 반대하지만, 이미 성관계를 가졌던 상대로부터 이런 종류의 부탁을 받는 것은 매우 이상한 경험이었다고 설명했다.

미투운동으로 인해 성관계에서 여성의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합의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이 정립되면서, 남성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성관계에 있어서 어디까지를 합의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됐다. 실제 국내 남초 커뮤니티에서도 성관계 전 합의를 증명할 수 있는 각서나 동영상을 촬영해야 한다는 주장은 흔하게 발견된다. 미투운동이 뜨거웠던 당시에는 한 누리꾼이 가상으로 작성한 ‘성관계 표준 계약서 견본’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높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킹 또한 해당 칼럼에서 “지금은 분명히 젊은 남성들에게는 무서운 시기”라며 합의 동영상 촬영을 요구하는 남성들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킹은 합의 동영상 촬영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남성도 미투운동으로부터 보호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잘못 이해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킹은 “합의동영상이라는 원칙은 문제될 것이 없지만, 그 파급효과는 문제적일 수 있다”며 “현실에서는 성폭행 피해자들에 대한 악담이 거짓 신고보다 더하다”고 말했다. 실제 성폭행 피해자들은 ‘왜 바로 신고를 하지 않았나’, ‘왜 반격하거나 도망치지 않았나’, ‘피의자와 한 방에 단둘이 들어선 것은 합의의 의미가 아닌가’ 등 잘못된 ‘상식’으로 인해 피해 사실을 고백하기 꺼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들 사이에서 합의동영상이 유행한다는 사실만으로 남성과 여성의 피해관계가 역전됐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

킹은 과거 자신도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음을 고백하며 “(성폭행을 당하기) 두 시간 전 내게 합의동영상 촬영을 요구했다면 아마 응했을 것”이라며 “가해자는 내가 의식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관계를 갖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킹의 이같은 설명은  여성이 성관계 합의 동영상 촬영에 응했다고 해도  면죄부로 인식하는 것은 남성 편의적 시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킹은 “합의는 어려운 개념은 아니지만 성관계를 갖기 원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단순한 것도 아니다”라며 “합의동영상 촬영은 ‘합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라고 지적했다. 킹은 이어 #WhyIDidntReport(왜 나는 신고하지 않았나)라는 태그를 트위터에서 검색해보라며, 합의 동영상이 필요없도록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더 이상 성폭행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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