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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비밀 간직한 갑골문자
  •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 승인 2018.11.2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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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은 인터넷 과학신문 <The Science Time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문 보기)

 

1899년 청나라 말기의 금석학자 왕의영(王懿榮)은 집에서 먹던 중약에서 이상한 뼛조각을 발견했다. 그 뼈는 학질에 걸렸을 때 먹던 ‘용골(龍骨)’이었는데, 다른 것과는 달리 문자 부호 같은 게 새겨져 있었던 것. 그는 사람들을 시켜 더 많은 용골들을 수집해 관찰했다.

오늘날 대학교 총장과 비슷한 관직에 있었던 왕의영은 용골에 새겨진 글자들이 평소 자신이 연구하던 고대문자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런데 그는 다음해인 1900년 아내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의화단 운동 이후 8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공격했을 때 도망 대신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가 수집한 용골은 사실 거북의 껍질이나 소의 어깨뼈 등에 문자가 새겨진 갑골이었다. 생전에 수집한 갑골 1500여 조각은 그가 죽고 난 후 친구 ‘유악(劉鶚)’에게 전달됐다. 유악은 더 많은 갑골을 수집․연구한 끝에 ‘철운장귀’라는 탁본을 남겼다. 이는 갑골문을 보존 기록한 중국 최초의 책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타향으로 유배돼 객사했다.

갑골의 우연한 발견으로 인해 고대 상나라의 수도였던 은허 유적지가 밝혀졌다. ⓒ 위키미디어(山海&#39118;)

이번엔 유악의 사돈인 나진옥(羅振玉)이 연구를 이어받았다. 그는 골동품상에게서 갑골들이 어디서 출토되는지 추적해 그것이 하남성 안양시의 소둔촌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북경에서 남쪽으로 500㎞쯤 떨어진 농촌 마을이었다. 고증을 통해 나진옥은 그곳이 바로 중국 고대 상(商) 왕조 후기의 수도였던 은허라는 결론을 내렸다.

소둔촌은 10~14세기경의 송원시대부터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곳이다. 주변에서 청동기들이 자주 발견됐기 때문이다. 1928년~1937년 중앙연구원에서는 대대적인 발굴을 시도해 그곳에서 은허의 궁전과 조상의 성지, 왕족의 무덤 등 수많은 문화유적을 발견했다.

상 왕조는 BC 17세기경 상족이 하(夏)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중국 최고의 왕조다. 전설상 상 왕조 이전에 하 왕조가 존재했지만, 은허 같은 유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때문에 상 왕조는 존재가 확인된 중국 최고의 왕조라고 할 수 있다.

청동기 시대 동아시아의 강력한 국가였던 상나라는 BC 13세기경 웅장한 도시를 지어 수도를 이전했다. 그것이 바로 은(殷)이다. 이때부터 약 250여 년간 상나라는 청동기 시대의 전성기를 누리다가 BC 1046년경 주나라에게 패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후 그 도시가 폐허가 되었다고 해서 역사서에 은이 은허(殷墟)로 기록됐다.

은허에서는 다양한 청동기 유물을 비롯해 16만 편이 넘는 갑골이 출토됐다. 거기에 사용된 글자 수는 약 5000자였는데, 많은 학자들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뜻이 확실하게 밝혀진 글자는 1500여 자에 불과하다. 갑골문자가 발견됨으로써 중국인들은 한자의 원형을 비로소 알게 됐다.

당시 사람들이 문자를 거북 껍질에 새긴 이유는 점을 치기 위해서였다. 갑골에 점칠 내용을 적은 다음 뒷면에 불을 붙여서 잔금이 생길 때까지 구우면 표면이 갈라지게 되는데, 그 갈라지는 방향을 보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던 것. 잔금의 길이와 방향에 따라 해석한 답은 다시 갑골에 새겼다.

점을 친 내용은 매우 다양했다. 적을 언제 공격하면 좋은지부터 비가 언제 오는지, 부녀들의 출산과 왕의 외출이 언제 길한지 등 거의 모든 것을 하늘에 묻고 하늘의 뜻에 따랐다. 갑골문자 기록에 의하면 상나라 사람들은 이미 양력과 음력, 달과 별의 지형도를 정확하게 기록할 만큼 과학기술이 상당히 발전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은허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무기와 제기, 백자 등의 유물들도 함께 발견됐다. 특히 청동기에 새겨진 문양은 매우 정교하여, 중국 고대 청동기 문화에서 최고의 발전 수준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청동기는 제사나 의식 등의 용도로만 제작되고 농사 도구는 석기로 만들어져 있어 당시 청동기는 특권계급의 전유물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또한 80채 이상 규모의 궁전 초석과 제단을 포함해 수많은 왕족 무덤이 발견돼 눈길을 끌었다. 이 같은 건축물들은 중국 역사 초기의 궁전과 능묘 건축의 걸작으로서, 특히 궁전, 종묘, 제단의 3가지 형태로 뚜렷이 구분되는 배치는 후대 중국 궁전 건축의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북미 대륙에서도 갑골문자가 발견됐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주목을 끌었다. 미국의 비문 연구가인 존 러스캠프 박사가 지난해 10월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남서쪽으로 약 160㎞ 떨어진 오지의 암벽에 새겨진 ‘화(禾)’ 자를 발견한 것.

러스캠프 박사는 2013년에도 뉴멕시코주 앨버커키 인근 암벽화에서 ‘대갑(大甲)’이라고 적힌 문자를 발견한 적이 있다. 그 글자는 중국 상나라 3대 왕의 이름이었다. 그밖에도 그는 지난 10여 년간 북미 대륙 곳곳에서 110여 자의 갑골문자를 발견해 판독했다.

이에 대해 러스캠프 박사는 갑골문자를 사용했던 시기는 역사적으로 한정돼 있으므로 그 시대의 동아시아인들이 직접 북미 대륙에 이주해와 그 글자를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이 발견으로 인해 멕시코의 올멕 문명을 당시 이주해온 동아시아인들이 세운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올멕 문명은 BC 12세기경부터 형성돼 멕시코 동쪽의 멕시코만을 중심으로 발달한 고대 문명이다. 당시 돌비석에 새겨놓은 올멕인들의 신체 특징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몽골 계통인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 안양시에서는 1995년 은허 관리청을 설립해 은허의 보존 및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은허에 대한 발굴은 1960년대까지 실시됐으나 아직도 넓은 유전 전체에 미치지 못하고 그 성과도 완전히 발표되지 않은 상태다. 아직 해독되지 않은 갑골문자에 고대 세계의 또 다른 비밀들이 간직돼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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