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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남서쪽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한 파이윰은 유명한 관광 명소다. 이집트 최고의 곡창지대이자 거대한 오아시스 지방인 이곳은 호수를 중심으로 대추야자수가 우거진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이집트의 정원’이라고도 불린다.

특별한 보트 놀이를 할 수 있는 폭포와 파라오 시대의 유적 등 풍부한 볼거리를 지녀 휴양과 관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200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와디 알 히탄’은 고래의 진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와디 알 히탄(Wadi Al-Hitan)은 아랍어로 ‘고래의 계곡’이란 뜻이다.

고래의 계곡이라는 뜻을 지닌 이집트의 와디 알 히탄은 200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 UNESCO / Author : Guy Debonnet

고래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부정하는 창조론자들이 그들을 조롱할 때 들먹이던 단골 메뉴 중 하나였다. 고래가 육지 포유류에서 해양 포유류로 진화했다면 그를 입증하는 화석상의 진화 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전까지만 해도 그것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고래의 진화사는 ‘잃어버린 고리’의 대표 사례였던 셈이다.

하지만 와디 알 히탄에서 발견된 고대 고래의 화석은 육상 동물에서 해양 동물로 변화하는 동안의 고래 모습과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고래의 뒷다리가 사라져가는 마지막 단계에 있는 가장 어린 고대 고래의 아목을 보여주는 이 유적은 고래 화석의 수, 밀집도, 질뿐만 아니라 장소의 접근 가능성과 자연 경관 역시 빼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최초의 고래로 알려진 동물은 에오세 시기의 파키케투스(Pakicetus)다. 신생대 중에서도 가장 기온과 습도가 높았던 에오세는 약 5500만 년 전부터 약 3800만 년 전까지의 기간이다. 하마와의 공통조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파키케투스는 약 5000만년 전 늑대 정도 크기의 몸집을 가진 육상동물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육지 환경은 사냥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데다 경쟁자가 너무 많아 파키케투스는 바다 쪽으로 눈을 돌렸다. 초기엔 바닷가에서 먹이를 구하다가 익숙해지자 차츰 얕은 바다와 육지를 드나들었다. 그러는 동안 주둥이가 점차 길어지는 등 몸의 형태가 물고기를 사냥하는 데 유리하게끔 진화했다.

파키케투스는 라틴어로 파키스탄에서 발견된 고래란 뜻이다. 당시엔 인도대륙판과 아시아판이 충돌하기 직전이어서, 두 대륙 사이에 테티스라는 이름의 바다가 있었다. 고래 최초의 조상인 파키케투스의 화석이 이 지역에서 발견된 이유는 거기에 숨어 있다.

네 다리와 발굽, 그리고 긴 꼬리를 가진 파키케투스는 대부분의 시간을 육상에서 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귓속뼈와 이빨 배열 등 고래류와 비슷한 해부학적 특징이 고래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파키케투스에서 더 진화한 단계의 고래는 암불로케투스(Ambulocetus)다. 걸을 수도 있었고, 헤엄칠 수도 있었던 이 고래의 화석 역시 파키스탄과 인도 접경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바다사자만한 크기의 이 동물은 여전히 사지와 긴 꼬리를 가지고 있었으나 수달처럼 길쭉한 몸을 위아래로 굴절시키며 헤엄쳤다. 또한 발에 물갈퀴가 있어 발을 노 젓듯이 움직일 수도 있었다.

이후 로도케투스, 프로토케투스 등을 거쳐 오늘날의 고래와 거의 흡사한 바실로사우루스가 등장했다. 약 4000만년 전에서부터 3400만년 전에 살았던 바실로사우루스는 몸길이가 약 15m, 몸무게는 50t 정도로 추정된다.

날카로운 이빨과 턱이 발달해 육식을 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이 동물은 현생 고래에게는 없는 약 46㎝ 정도의 뒷다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몸을 지탱하기에는 턱없이 작아 이 뒷다리의 용도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원시 고래가 한때 육상 동물이었음을 알려주는 증거인 셈인데, 교미를 할 때 사용하기 위한 다리였다는 설도 있다.

사실 바실로사우루스(Basilosaurus)란 이름은 ‘대왕도마뱀’이라는 뜻이다. 이 같은 이름이 붙은 데엔 이유가 있다. 바실로사우루스 화석을 처음 발견한 과학자들이 거대한 파충류의 일종이라고 착각했기 때문. 그러나 나중에 파충류가 아닌 고래목의 해양 포유류임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학명을 개명하려고 했으나, 분류학상의 원칙에 의해 처음 붙여진 학명대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와디 알 히탄에서는 1905년 처음으로 바실로사우루스의 화석이 발견됐다. 이후 많은 고래와 고대 해양생물의 화석이 잇달아 발견됨에 따라 ‘고래 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특히 이곳에서는 바실로사우루스의 전체 뼈가 남아 있는 완전한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 화석의 뱃속에서는 고대 게와 톱상어, 그리고 새끼 바실로사우루스의 화석도 함께 발견돼 학계의 주목을 끌었다. 새끼 화석을 두고 태아라는 설과 동족을 잡아먹었다는 설이 대립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화석은 당대의 먹이사슬 구조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될 뿐만 아니라 꼬리 부분의 작은 뼈까지 그대로 보존돼 있어 가치가 더욱 크다.

와디 알 히탄은 지구의 생명체에 대한 기록을 구성하는 상징적 변화 중 하나, 즉 고래가 진화하는 동안의 모습과 생활 방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이 유적은 세계 화석 유산에 대해 세계자연보전연맹의 연구가 정한 기본 원칙에 일치하며, 현재 세계유산 목록에 없는 중요한 가치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들어 이집트 정부는 와디 알 히탄에 중동 지역 최초의 화석 박물관을 건립했다. ‘화석․기후변화 박물관’이라고 명명된 그곳에는 온전히 발굴된 바실로사우루스의 화석은 물론 ‘걸어다니는 고래’로 알려진 암불로케투스의 화석 등이 전시돼 과학에 관심이 깊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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