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 문재인 대통령이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보험료율 인상과 관련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혁안이 퇴짜를 맞으면서, 여론을 의식한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 것.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박능후 복지부 장관으로부터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중간보고를 받은 뒤 국민 의견을 폭넓게 반영할 수 있도록 수정·보완하라고 지시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국민연금 개혁안에서 보험료율 인상 부분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을 것을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은 여론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정책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이 지난달 9일 공개한 여론조사(전국 성인 1012명 대상) 결과에 따르면, 연금 고갈을 우려한다는 응답자(45.8%)가 지급을 낙관하는 응답자(44.8%)보다 많았다. 하지만 연금 고갈에 대비해 보험료율을 인상해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50.9%가 반대한 반면 찬성은 39.0%로 11.0%p의 큰 차이를 보였다.
실제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006년 과감한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한 바 있으나, 국회 반발로 인해 보험료율은 동결하고 소득대체율만 점진적으로 낮추는 반쪽짜리 개혁안을 채택한 바 있다.
이처럼 국민연금 개혁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처럼 어려운 과제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번 정부가 총대를 메고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경영학과 교수는 9일 YTN 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2057년도에 적립기금이 소진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지금 우리 사회는 제시해야 할 때”라며 “보험료 인상을 국민들이 싫어한다고 해서 안 할 수는 없는 그런 현실이 또 존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보험료 인상을 단계적으로 인상시켜왔고, 보험료를 인하시킨 사례는 없다”며 국민연금의 저부담·고급여 구조를 균형화하기 위해서는 반발이 있더라도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고갈된다 하더라도 적립기금 없이 부과방식으로 전환해 연금지급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래의 연금 고갈을 우려해 현재의 국민 부담을 늘리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는 것. 실제로 대부분의 선진국은 국민연금을 부과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국가부도 사태를 맞은 그리스조차 연금 지급은 중단하지 않고 있다.
반면 부과방식 전환이 후세대에게 지나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김 교수는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은 노인인구 비율이 향후에도 전체 인구의 25% 내지 28% 정도”라며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2050년이 넘어서면 노인인구 비율이 42.5%가 된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고령화 사회에서 부과방식은 심각한 부담이 따른다는 것. 김 교수는 “부과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적립금 없이 그 당시의 근로세대에서 보험료를 거둬 노인세대에게 연금급여로 지급하는 방식”이라며 “한국의 인구 상황으로 봤을 때 서구식 부과방식은 현실적으로 적용하기가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연금개혁을 주도한 유 전 장관 또한 2015년 발간한 ‘실록 국민의 연금’에서 국민연금제도에 대해 “불효막심하고 싸가지 없는 법”이라고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부었다. 낮은 보험요율과 높은 소득대체율의 불균형한 구조를 유지한다면, 현세대가 후세대를 착취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이면 연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불확실한 미래의 수익률을 전제로 연금을 운영하는 것은 무리다. 실제로 올해 8월까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수익률은 전년 대비 크게 하락한 2.25%를 기록했다. 공격적인 투자로 수익률을 단기간 끌어올릴 수는 있겠지만 국민연금의 근본적인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아니다.
결국 현 정부가 국민에게 보험료를 더 내라고 설득해내는 것 외에는 딱히 묘안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복지부가 개혁안 재검토에 들어가면서 국민연금 개편 일정은 차일피일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류근혁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국민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부안이 국회로 가서 법률로 될 가능성은 0.00001%밖에 안 된다”며 “엄청난 사회적 제도 변화를 다섯 달 안에 입법해 통과한다는 건 불가능”이라고 단언했다. 국민연금 개편이 계속 연기돼 오는 2020년 5월 21대 총선까지 이어질 경우 개혁안 추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 정부가 이전 정권에서 달지 못했던 방울을 고양이 목에 과감하게 달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