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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미국의 과학자 로버트 포조스는 1940년대 독일에서 행해진 저체온증 실험 데이터를 공개하고 관련 연구를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박 사고로 차가운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고 치료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의학계에서는 포조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데이터는 독일 나치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행한 생체실험 결과였기 때문이다. 생체실험으로 희생된 유족들이 받을 고통과 더불어 생체실험 데이터 활용에 대한 허락 자체가 나치의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해 조금이나마 면죄부를 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감안한 결정이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는 나치 독일이 세운 최대 규모의 강제수용소이자 가장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애초 이 수용소는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이 1940년 오시비엥침 시의 교외에 폴란드인을 수용하기 위해 세웠다.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는 나치 독일이 세운 최대 규모의 강제수용소이자 가장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 UNESCO / Author : Francesco Bandarin

그런데 오시비엥침 시는 나중에 독일어인 ‘아우슈비츠’로 바뀌었고, 그것이 수용소의 이름이 되었다. 이후 수용소는 확장돼 3개의 주요 구역으로 나누어졌다. 가장 오래된 제1수용소는 전쟁 전에 폴란드의 군대 막사로 쓰던 건물과 토지에 만들어졌다.

두 번째 구역이 바로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로 알려진 비르케나우 수용소다. 1941년 오시비엥침에서 3㎞ 떨어진 브제진카 마을의 주민들을 퇴거시킨 후 그 가옥들을 압수해 지은 곳이다. 이곳에는 유대인과 폴란드인을 비롯해 집시 및 떠돌이를 포함한 다른 유럽 국가 출신 죄수가 9만 명 이상 수용됐다. 아우슈비츠의 세 번째 구역은 약 40개에 달하는 보조 수용소다.

아우슈비츠에 기차로 이송된 유대인 포로들은 도착하자마자 즉석에서 독가스실과 강제노동소로 향하는 부류로 나누어졌다. 과반수가 독가스실로 보내졌는데, 생존자 중에는 강제노동소로 가지 않고 별도의 막사에 수용되는 특별한 포로들이 있었다.

임산부와 절름발이, 소인증 환자, 일란성 쌍둥이 등 특이한 신체적 특징을 지닌 포로가 바로 그 대상이었다. 이를 총지휘한 비르케나우 수용소의 수석 의사인 요제프 멩겔레는 그들 중에서도 특히 일란성 쌍둥이의 생체실험에 집착했다.

다른 포로들에게 행한 생체실험과 마찬가지로 쌍둥이에 대한 그들의 실험은 매우 잔인했다. 눈에 염색약을 주사해 눈동자 색깔을 바꾸거나 쌍둥이의 몸에서 피를 모두 뽑아내 다른 임산부에게 주입하여 쌍둥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행한 것. 그밖에 생식기 교체시술부터 접합수술에 이르기까지 각종 실험을 자행했다.

사체들의 처리 방식도 매우 잔인했다. 뼈는 골분 비료, 머리카락은 카펫으로 활용됐으며, 금니는 금괴로 재활용됐다. 약 150만 명이 이곳에서 살해되었는데, 가스실의 소각시설로는 사체들을 다 처리할 수 없어 야외 소각장을 별도로 만들어야 했다. 희생자 중 약 90%가 유대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1945년 1월 구 소련의 군대에 의해 해방된 후 1947년 7월 2일 폴란드 의회법을 통해 제1수용소와 제2수용소의 지대 위에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박물관이 설립됐다. 당시 수용소의 요새화된 벽과 철조망, 막사, 교수대, 가스실, 소각장 등은 그대로 보존돼 나치가 집단 학살을 자행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공동묘지’ 혹은 ‘학살 공장’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가끔 대중적 기록에서 대량 학살을 성공시킨 첨단 기술의 학살 조립라인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치 독일이 대량 학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조립라인식 학살 기술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나치 독일이 2차 대전 기간 동안 살해한 유대인 600만 명 중 절반가량은 공장식이 아닌 총살 등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현장에서 처리됐다. 나치의 대학살극은 그 전과 후로 세계 역사를 구분지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충격적인 살육극이었다.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홀로코스트의 충격은 지금도 그 희생자들의 유전자를 통해 자손들에게 유전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시나이산 병원 연구진이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유전자와 그 자손들의 유전자를 조사한 결과, 트라우마 관련 유전자가 후생유전 되는 현상이 발견됐다.

아무런 정보가 담겨 있지 않은 정크 DNA, 즉 비부호화 DNA를 통해 트라우마가 후손들에게 유전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홀로코스트 희생자 집안의 3대 후손인 한 10대 소녀는 이유를 알 수 있는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대학살 지역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유난히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유네스코는 유대인 대학살 및 인종차별 정책, 인간의 야만성을 전 인류에게 상기시키는 주요 장소라는 의미에서 1979년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이 수용소는 자유로운 행동과 사상을 억압하고 한 민족 전체를 말살하려 했던 나치 독일의 끔직한 시도 속에서도 끝까지 저항했던 강한 인간 정신을 기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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