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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인도네시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수마트라 호랑이가 처참한 모습으로 살해된 채 발견됐다. 주민들의 집단 공격을 받아 안구와 꼬리, 성기 등이 뜯겨나가고 얼굴 부위는 흉기로 난자당한 상태였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만 400여 마리 정도가 남은 수마트라 호랑이는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심각한 위기종’이다. 따라서 호랑이 사냥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이 섬에서는 호랑이 외에 오랑우탄과 수마트라 코끼리 등 다른 멸종 위기 동물들도 주민들에게 공격을 받는 사례가 잦다.

이유는 바로 농장 개간을 위해 자행되는 화전과 벌목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열대우림이 훼손되면서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들이 마을로 내려와 주민들과 부닥치는 것이다. 호랑이는 가축을 습격하고, 오랑우탄과 코끼리는 농작물을 해친다는 이유로 주민들의 표적이 된다.

수마트라 호랑이가 서식하는 열대우림은 세계자연유산 중 가장 훼손이 심한 지역 중 하나다.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호주 퀸즐랜드 대학이 최근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 중 아시아 지역 유산의 훼손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이후 세계자연유산에 속한 삼림의 7271㎢가 사라졌는데, 수마트라 열대우림의 경우 10%의 삼림이 사라졌다. 이외에 인도의 마나스 야생동물보호구역, 인도네시아의 코모도 국립공원, 말레이시아의 키나발루 공원 등도 피해가 심각한 장소로 꼽혔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 파괴속도는 아마존 우림을 보유한 브라질보다 빠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 메릴랜드대학 연구진이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촬영된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 인도네시아가 지금껏 열대우림 최대 파괴국으로 알려진 브라질보다 더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 훼손이 이처럼 가속화되는 것은 대규모로 개발되는 팜유 농장 때문이다. 넓은 팜유 재배면적 확보를 위해 숲을 불태우는 화전이 이루어지는데, 이로 인해 2015년에는 최악의 스모그가 발생해 동남아시아인 10만 명이 조기 사망하기도 했다. 당시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이 불에 탈 때 배출된 한 해 동안의 이산화탄소량은 미국의 모든 경제활동에서 발생한 배출량보다 많았다.

수마트라 섬은 한때 섬 전체가 거대한 열대우림이었다. 그러나 단 50년 만에 우림의 규모가 줄어들어 지금은 세 곳의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고립된 지역으로만 남아 있다. 구눙 르우제르, 케린치 세블라트, 부킷 바리산 슬라탄 국립공원이 바로 그곳. 세 곳의 국립공원은 수마트라의 안데스 산맥으로 일컬어지는 부킷 바리산 산맥의 중심 줄기에 위치한다.

북쪽에 위치한 구눙 르우제르 국립공원은 길이 150㎞, 폭 100㎞이며 주로 산악지형이다. 중심의 케린치 세블라트 국립공원은 부킷 바리산의 등성이를 따라 아래로 350㎞까지 이어지는데, 그중 가장 높은 곳이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인 구능 케린치(3,805m)다.

부킷 바리산 슬라탄 국립공원의 남쪽 절반은 지대가 낮은데, 그중 90㎞는 반도이며 절반은 바다와 접해 있다. 이 공원의 길이 역시 350㎞이지만, 평균 너비는 45㎞밖에 되지 않는다. 세 곳의 공원 모두 수많은 빙하 호수들과 울창한 우림을 배경으로 한 폭포 및 동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2004년 세계유산에 등재될 때 유네스코는 이 지역이 진화기의 생물종에게 기후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중요한 피난처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며, 미래 진화과정에서도 매우 중요한 피난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17개의 고유속을 포함한 식물 1만여 종과 포유동물 200여 종, 조류 580여 종이 이곳에 서식한다. 조류 중 465종이 텃새이며, 21종은 고유종이다. 또한 200여 종의 포유동물 중 22종은 아시아 지역에만, 15종은 인도네시아에만 분포하는 희귀종이다. 수마트라 호랑이와 오랑우탄, 코뿔소, 코끼리, 말레이곰 등이 바로 그 주인공.

이 지역에 서식하는 희귀성 조류로는 수마트라 땅뻐꾸기, 럭파랑딱새, 스톰황새, 흰죽지오리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인 라플레시아 아놀디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꽃인 아모르포팔루스 티타눔도 이곳에 있다.

지름 1m가 넘는 라플레시아 아놀디는 꽃이 피는 데만 1개월이 걸리며, 5~7일 정도 피어 있다가 시든다. 이 꽃은 고기가 썩는 것 같은 고약한 냄새로 파리들을 불러들여 꽃가루를 옮긴다. 아모르포팔루스 티타눔은 키가 2.5m가 넘는다. 7년에 한 번씩밖에 피지 않는 이 꽃 역시 썩는 냄새를 풍기므로 ‘시체꽃’이란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린다.

수마트라는 고유종의 비율이 높은데 특히 유산지역에서 뚜렷하다. 이곳에 고유종이 많은 이유는 해수면 변화에 따라 수마트라와 아시아 대륙의 생물상이 육지와 연결되었다가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수마트라 섬은 과거 빙하시대에 아시아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다.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은 세계 식물종의 10%, 포유동물 12%, 파충류․양서류 16%, 조류 17%가 서식하는 동식물 다양성의 보고다. 수마트라 열대우림처럼 열대지역의 오래된 원시림의 경우 새로 조성된 산림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저장하는 능력이 훨씬 높다.

따라서 열대우림의 파괴는 기후변화 대응에도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유네스코는 2011년 수마트라 열대우림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재등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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