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4계절이 뚜렷한 데다 전체의 63%가 산과 계곡으로 이뤄져 4,600종 정도의 다양한 식물들이 분포한다. 그래서 4월에 전국 어딜 가나 노란 개나리를 볼 수 있고 5월엔 철쭉꽃, 여름엔 진한 녹음이 우거지며 가을의 노랗고 붉은 단풍철을 지나 겨울에 상록과 흰 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연중 아름다운 공간에 살고 있다. 지구상에 이런 다양한 식생을 가진 나라는 그리 흔치 않다. 꽃과 잎이 아름다운 야생화 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우리 생활주변에서 어떻게 가꿔야 하는지에 대해 전하고자 한다.

억새는 산정상이나 봉우리 등 능선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오서산 정상부)

가을엔 붉고 노란 단풍도 아름답지만 은색 억새가 역광으로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은 단풍 못지않게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아름다움, 쉼을 준다. 특히 억새는 바람이 잘 부는 능선에서 집중적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어 산과 들의 면을 구획하면서 가을을 결정짓는 프레임 역할을 해 준다. 꽃말도 '은퇴(retire)'니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 모습으로 이제 은퇴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할 꽃 중년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억새는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같은 온대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가을의 향연 같은 꽃이다.

억새는 순광보다는 역광으로 봐야 제맛이다. 속살까지 투영되기 때문이다.

‘억새’와 ‘갈대’는 다르다

흔히들 ‘억새’를 ‘갈대’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둘 다 벼과식물이긴 하지만 많이 다른 종이다. 억새는 바람 잘 통하고 물이 잘 빠지는 산이나 들판의 능선에 살지만 갈대는 물에 사는 수생식물이다. 그러니 바닷가나 냇가의 물속에서 사는 것은 100% 갈대로써 억새보다 키도 큰 편이고 수질정화능력도 크다. 꽃(이삭) 모양도 억새는 고르게 피지만 갈대는 수북이 피어 외관상 차이가 크다. 그러니 여자의 마음을 노래한 갈대의 순정도 실은 억새의 순정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억새는 여자의 마음처럼 부드럽게 움직이지만 갈대는 꽃차례들이 뻑뻑해 딱딱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즘 가을산에 억새축제들이 여기저기 한창이다. 제주산굼부리, 서울 하늘공원, 포천 명성산, 장흥 천관산, 강원도 민둥산 등 전국적으로 많다. 억새밭으로 유명한 제주의 새별오름에서는 초겨울에 들불축제도 성대하게 열린다.

 

억새가 허락한 더부살이 식물 ‘야고’

억새숲 바닥을 뒤져보면 영낙없이 담뱃대처럼 생긴 희한한 식물이 옹기종기 붙어살고 있다. 바로 ‘야고’라는 더부살이 식물이다. 더부살이들은 몸에 엽록소가 없으니 광합성을 할 수 없어 다른 식물에 붙어사는 데, 기주특이성이란 게 있어서 아무 식물이나 붙어살 수 없고 기주가 허락해야 거기 뿌릴 내리고 살 수 있다. 즉 야고는 억새가 같이 살아도 좋다는 결재가 나서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이다. 억새도 양분을 나눠주는 대신 ‘야고’로부터 뭔가를 받을텐데 잘 밝혀져 있질 않다. 세상일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 약력>

- (사)정원문화포럼 회장(2014~)

- 농식품부, 산림청, 서울시, 경기도 꽃 및 정원분야 자문위원(2014~)

- 꽃과 정원교실 ‘꽃담아카데미’ 개원 운영(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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