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인터넷매체 악시오스(Axios)와의 인터뷰에서 출생시민권 제도 폐지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HBO 방송화면 갈무리>

[이코리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영토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출생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 제도의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법적으로 가능성이 없는 계획이라며,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쇼’라고 평가하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속지주의’에 따라 시민권·영주권이 없는 사람이 미국 영토 내에서 낳은 아이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현 ‘출생시민권’ 제도를 행정명령을 통해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들어온 사람이 낳은 아이에게 시민권과 모든 혜택을 부여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미국 뿐”이라며 “(출생시민권 폐지를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행정명령을 통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법률전문가, “행정명령 통한 출생시민권 폐지 불가능”

미국 내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단독 보도한 악시오스조차 “서구권을 포함해 30개 이상의 국가에서 출생시민권을 부여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 주장의 사실관계가 잘못됐음을 지적했다. 악시오스는 이어 출생시민권은 수정헌법 14조에 명시된 권리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이 수많은 소송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버지니아대 로스쿨의 헌법전문가 사이크리쉬나 프라카쉬 교수는 이날 B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을 화나게 만들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문제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며 “이 문제는 그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프라카쉬 교수는 “대통령이 정부 기관에 ‘시민권’을 더 좁게 해석하라고 지시할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시민권을 잃게 될 많은 사람들이 소송을 제기할 것은 명백하다”며 출생시민권 폐지를 실제로 추진할 경우 장기간의 법정싸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인터넷매체 복스(Vox)는 11명의 법조계 전문가에게 출생시민권 폐지 문제를 문의한 뒤, 가능성없는 계획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노스이스턴 대학 로스쿨의 제시카 실비 교수는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시민권이 주어진다는 것은 헌법에 명시돼있다”며 “이는 행정명령으로 변경할 수 없으며 오직 개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실비 교수를 포함해 인터뷰에 응한 11명의 법학·정치학 교수 및 전직 연방검찰 중 행정명령을 통한 출생시민권 폐지가 가능하다고 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 중간선거 앞둔 지지자 선동 전략, 시각도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출생시민권 발언은 실질적인 법률 개정을 의도한 것이라기 보다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민자 이슈를 부각시켜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BBC 워싱턴 지부의 앤소니 주커 기자는 “출생시민권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다음 주 열릴 중간선거의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며 “미국·멕시코 국경에 약 5000명의 군대를 배치했다는 백악관 발표와 함께, 출생시민권 폐지는 미국인들의 관심을 이민 문제에 집중시키기 위한 또 다른 시도”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또한 “이번 발언은 근거 있는 법적 논의라기보다는 정치적 스턴트로 들린다”며 “행정명령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헌법의 의미를 어떻게 바꿀 지도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부터 이민 문제에 대해 강경한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대선 후보 당시에는 멕시코 국경에 장벽 건설하겠다는 공약으로 내세워 논란이 됐으며, 취임 이후에도 불법체류청년 추방 유예제도(DACA) 폐지를 시도하고 합법적인 이민자 수를 기존보다 절반 이상 줄이는 법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정책은 반대파로부터 수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역으로 보수층으로부터는 열렬한 지지를 끌어냈다. 복스는 “많은 보수파들은 ‘불법으로 미국에 들어온 부모의 자녀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은 미국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이민제도를 위반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러한 논리는 반이민운동가들과 트럼프 지지층에게 확산돼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잠재적 지지층이 가진 이민자들에 대한 강렬한 혐오를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로욜라 로스쿨의 제시카 레빈슨 교수는 복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간선거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며 “이는 순수하게 법을 바꾸기 위한 시도가 아니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게 오는 11월 6일 투표소로 가라고 고무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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