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힘으로 날씨를 어떻게 할 수 없다지만 하늘이 너무 원망스럽네요."

올해 장마기간은 역대 가장 긴 장마로 기록됐다. 지난 6월17일 중부지방에서 시작된 장마는 이번 달 4일까지 무려 49일 동안 계속됐다. 하늘에 큰 구멍이 뚫린 것처럼 기나긴 장마였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기습적인 강한 소나기가 내리고,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도는 폭염까지 이어지고 있다. 요란스러운 날씨 탓에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야외에서 일을 해야 하는 일용직 노동자와 전통시장 상인, 퀵서비스 기사 등 서민들은 불편이 아니라 생계마저 위협을 받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이번 장마는 그야말로 '직격탄'이나 다름없다.

지난 6일 오전 5시30분께 서울 영등포구의 한 인력사무소. 5평 남짓한 좁은 사무소 안에는 큼직한 가방을 하나씩 멘 20여명의 중년 남성들이 낡은 선풍기 주위에 둘러 앉아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주차장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를 찾는 전화벨소리가 울리자 2명이 큼지막한 가방을 어깨에 들쳐 메고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기다리다 지친 다른 사람들은 한쪽에 마련된 낡은 책상에 엎드려 애써 잠을 청했다.

이후에 간간히 전화벨 소리가 울려 일을 하러 나간 사람 5~6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결국 허탈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최근에는 관급공사마저 줄어 일거리가 없는데다 긴 장마와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까지 겹치면서 일거리를 찾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인력사무소를 10년째 운영하고 있는 김모(56)씨는 "올해만큼 힘든 적이 없었다"며 "하루 일당으로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들인데 긴 장마 때문에 한 달 동안 단 한 번도 일을 나가지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을 구하지 못한 최모(43)씨는 "긴 장마로 지난달에는 이틀밖에 일을 못했다"며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매일 아침 사무소를 찾지만 일이 너무 없어 이러다 정말 죽겠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이어 "무심한 하늘이 이제는 원망스럽지도 않다"면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한테 올 여름은 견디기 힘든 최악의 계절"이라며 애꿎은 담배만 연신 피워댔다.

하늘이 원망스럽기는 전통시장 상인들도 마찬가지. 긴 장마 탓에 복숭아와 자두 같은 제철 과일과 시금치, 상추 할 것 없이 채소 값이 전부 올랐다.

가득이나 어려워진 경제상황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긴 서울 서대문구의 영천시장 골목은 텅텅 비어 적막감이 감돌았다.

길어도 너무 긴 장마에 농산물 가격이 치솟는데다 연이어 폭염까지 기승을 부리니 손님들이 시장을 찾지 않는다는 게 상인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시장을 찾은 주부들 역시 높은 물가가 부담스러운 탓인지 대부분 물건을 들었다 다시 내려놓거나 값을 물어보고 이내 발길을 돌렸다.

채소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성모(67)씨는 "긴 장마 때문에 지난달에는 손님 구경도 못했다"며 "손님들한테 팔기 미안할 정도로 채소 가격이 올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일을 사기 위해 시장에 나온 주부 김모(48)씨는 "장마 시작과 함께 장바구니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며 "물건을 고를 때 마다 손이 떨릴 정도"라고 말했다.

매일 아침 날씨부터 체크하는 퀵서비스 기사들에게도 올 여름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다. 긴 장마와 연이은 폭염 탓에 일감이 절반 아래로 뚝 떨어져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한다.

퀵서비스 기사로 6년째 일하고 있는 김기완(37)씨는 "기름값과 수수료는 계속 오르는데 요금은 자꾸 내려가고 있다"며 "지난달에는 장마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 일을 나가지 못해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있다"고 전했다.

긴 장마와 폭염으로 특수를 누린 사람들도 있는 반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서민들에게 올 여름은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 고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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