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8일 로마 바티칸 교황궁 교황 집무실 앞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프란치스코 교황이 문 대통령의 방북 요청에 대해 “갈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답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궁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보낸 초청메시지를 전달받았다. 문 대통령은 구두메시지 외에 공식 초청장을 가지고 오지 못했다며 북한이 교황청에 초청장을 보내도 되겠느냐고 질문했고, 교황은 “문 대통령이 전한 말씀으로도 충분하지만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좋겠다”고 답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어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답하겠다. 나는 갈 수 있다”고 답변했다. 문 대통령과 교황 간의 통역을 맡은 한현희 신부는 “(갈 수 있다)는 말씀을 영어로 표현하면 ‘available'"이라고 설명했다.

◇ 민주화 응원한 역대 교황 사례

교황이 독재국가를 방문해 갈등을 중재해 온 것은 오랜 전통이다.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경우 냉전 시기 수많은 공산권 국가들을 방문하며 외교적 갈등을 막고 민주화 노력을 북돋기 위해 노력해왔다. 바오로 2세는 지난 1979년 고국인 폴란드를 방문해 "여러분은 인간이다. 존엄하다. 땅을 배에 깔고 기어다니지 말라. 성령이 이땅을 치유하고 새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오로 2세가 던진 메시지는 이후 폴란드 민주화 운동을 크게 촉진했고, 방문 다음해인 1980년에는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가 설립돼 결국 1989년 독재정권 붕괴를 이끌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군사정권 시기였던 지난 1984년 한국을 방문해 전두환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당시 바오로 2세는 특별히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정상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교황 방문을 추진했던 전두환 정권을 자극해 이후 대학 내 경찰 철수, 해직교수 복직 및 제적학생 복학, 정치범 석방 등의 유화 조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 프란치스코 교황, 적대국 화해에 기여

현 프란치스코 교황 또한 지난 2015년 쿠바를 방문해 오랜 갈등을 겪어온 미국과 쿠바 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외교관계 정상화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고, 이후 양국 대표단을 바티칸으로 초청해 정치범 교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 의장은 2015년 4월 정상회담을 통해 오랜 적대관계에 종지부를 찍었고,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해 9월 쿠바를 방문해 “전 세계를 위한 화해의 모범”이라며 양국의 노력을 치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4년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남북관계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낸 바 있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와대 연설에서 “저는 한반도의 화해와 안정을 위하여 기울여 온 노력을 치하하고 격려할 뿐이다. 그러한 노력만이 지속적인 평화로 가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길”이라며 “한국의 평화 추구는 이 지역 전체와 전쟁에 지친 전 세계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우리 마음에 절실한 대의”라고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당시 강조한 남북관계 해법은 ‘대화’를 중심으로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구상과 닮아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외교는 가능성의 예술이며, 평화란 상호 비방과 무익한 비판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며 끈기있는 대화 노력이 평화 구축의 유일한 해법이라고 지적했다.

◇ 교황 방북은 북한 정권에 기회이자 리스크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이 성사될 경우 비핵화 협상에 가속도가 붙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뚜렷한 비핵화 증거를 내보이지 않는 한 제재 완화는 불가능하다며,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오는 11월 열리는 중간선거 이후에 열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런 자세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앞당겨 진행하려는 문 대통령의 구상과 거리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이뤄지면 이런 여러 걸림돌을 일거에 상쇄하는 신의 한수가 될 수 있다. 교황이 남북의 대화 노력과 비핵화 진정성을 인정하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촉구할 경우, 미국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교황의 방북이 북한 정권에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역대 교황들이 방문했던 독재국가에서 민주화 요구가 거세진 사례가 많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으로서는 교황의 방북이 실보다는 득이 더 많을 것으로 판단해 대대적으로 선전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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