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실종된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홈페이지에 실종소식을 알리는 팝업창이 게시된 모습. <사진=자말 카슈끄지 홈페이지 갈무리>

[이코리아] 사우디아라비아가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59) 피살 의혹으로 궁지에 몰렸다. 미국 정계에서는 사우디에 대한 경제제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번 사건이 사우디의 국제적 고립을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미 공화당 지도부, 트럼프에 강경 대응 촉구

15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마르코 루비오(공화, 플로리다), 제프 플레이크(공화, 애리조나) 상원의원은 이날 카슈끄지 피살 의혹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의회 차원에서 사우디에 대한 강경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루비오 의원은 “트럼프 정부가 침묵을 지킨다면 미국은 인권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며,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전면적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에게 이번주 사우디에서 열리는 투자 컨퍼런스에 불참할 것을 권고했다. 사우디는 오는 23~25일 3일 일정으로 대규모 국제 투자 컨퍼런스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FII)를 개최할 예정이다. 당초 세계 경제계의 거물들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진 이번 회의는 카슈끄지 피살 의혹으로 인해 심각한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 빌 포드 포드자동차 회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 등 주요 인사들이 불참 의사를 공식 발표했으며, CNN·뉴욕타임스·블룸버그·CNBC 등의 언론들도 해당 회의에 대한 취재를 거부할 방침이다. 외신들은 주요 경제인사들의 불참 소식과 미 정계의 반사우디 정서로 인해 다른 미국 기업들의 회의 참석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게다가 친사우디 인사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마저 피살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사우디가 가혹한 처벌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강경 태도로 돌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사우디 정부는 (암살 의혹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그들일 가능성이 있다”며 “사실이라면 강력한 처벌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사우디의 실질적 지도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대규모 왕족 숙청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의사를 보낸 바 있다. 그러나 반살만 언론인으로 알려진 카슈끄지 피살 의혹과 관련해 사우디에 대한 제재 의사를 밝히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사우디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에 대한 무기 수출을 중단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다른 처벌 수단이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 사우디 증시 폭락, 유가 상승으로 보복?

사우디 측은 카슈끄지 피살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국제사회의 압박에 정면대응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사우디 외무부는 지난 14일 성명을 내고 “경제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위협, 정치적 압박, 허위 의혹 반복 제기 등 사우디를 향한 어떠한 위협이나 음해 시도도 전면 거부한다”며 보복조치도 불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외무부 공식 성명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경제는 카슈끄지 사건으로 인해 큰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 타다울 주가지수는 지난 2일 카슈끄지가 실종된 이후 14일까지 12일간 무려 9.3% 가량 하락했다. 14일에는 장중 최대 7.1%까지 떨어지는 등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준까지 하락했으며 결국 전일대비 3.5% 하락한 7266.59로 장을 마감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가혹한 처벌’ 발언으로 빚어진 사우디 증시 폭락은 향후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 등은 14일 공동성명을 통해 “카슈끄지의 실종과 관련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신뢰할만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사우디에 대한 경제제재가 미국 단독이 아닌 국제공조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

반면 사우디는 유가 상승 가능성을 제기하며 경제제재가 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사우디 국영 언론 알아라비야 방송의 투르키 알다킬 총책임자는 “유가를 배럴당 100달러 또는 200달러까지, 심지어는 두배로 오르도록 할 것”이라며 사우디에 대한 경제제재가 세계경제의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애플워치가 피살 현장 녹음

사우디아라비아의 언론인 카슈끄지는 터키 이스탄불에 체류 중이던 지난 2일(현지시간) 약혼녀와의 혼인 신고를 위해 사우디 총영사관에 서류를 제출하러 방문했다가 실종된 후 아직까지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터키 일간지 사바흐에 따르면 사건 당일 사우디에서 15명의 요원들이 이스탄불에 도착했으며, 카슈끄지가 영사관에 들어선지 2시간 30분 뒤 요원들을 태운 차량 6대가 영사관을 나섰다. 이중 2대의 차량이 관사로 이동했으며, 관사 직원들에게는 이날 갑작스레 휴무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 측은 카슈끄지가 사우디 정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살해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카슈끄지는 현 사우디 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민주적 개혁을 요구해왔다. 지난 3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는 정치 개혁에 관한 한 그 어떤 희망도 품지 못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말했으며, 같은 달 영국 일간지 가디언을 통해서는 살만 왕세자의 개혁이 지나치게 독단적이라고 지적하는 등 외신을 통한 비난도 계속해왔다.

게다가 터기 정부가 최근 카슈끄지 실종 당시 현장에서 녹음된 음성 파일을 확보했다고 주장하며 사우디에 대한 의혹도 더욱 짙어지고 있다. 카슈끄지가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갈 당시 착용하고 있던 애플워치에 현장 음성이 녹음됐으며, 녹음파일이 카슈끄지 소유의 아이폰과 아이클라우드 계정으로 전송됐다는 것. 해당 녹음파일의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사우디 정부의 혐의가 확인될 경우, 국제사회에서 사우디의 고립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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