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양승태 전 대법원장 봐주기식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 에서 민중당 서울시당 당원들이 '짜고치는 고스톱, 봐주기식 압수수색 규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이명박 전 대통령 직권남용 무죄 판결에 법조계 일각에서 반발하는 분위기다.  검찰이 현재 수사 중인 사법농단 피의자들에게 적용될 혐의가 대부분 직권남용이라는 점에서 사법부가 방어막을 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1심에서 뇌물수수 혐의 등이 인정돼 징역 15년, 벌금 130억원, 추징금 82억원 등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김재수 전 LA 총영사 등 공무원들에게 다스 미국 소송과 처남 김재정씨 명의의 차명재산 상속 등을 지원하도록 한 직권남용 혐의 2건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대통령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가 될 수는 있지만, 직권남용이 성립되지는 않는다”며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직권남용의 구성요건은 공무원이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대해 정당한 한계를 넘어 직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직무 범위 밖의 일에 대한 것은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없다. 재판부는 이명박 전 대통령 개인의 재산상속 및 소송과 관련된 사항은 대통령 직무와 관계없으며 따라서 직권남용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하지만 재판부가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을 너무 좁게 해석하고 있다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대기업 총수들에게 K스포츠재단, 미르재단 등의 출연금을 내도록 강요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이미 유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대통령직에 대해 “정부 수반으로서 모든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직무를 수행하고, 기업체들의 활동에 있어 직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라며 유죄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이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국가 행정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기업 소송에 대해 검토하도록 지시할 직무상 권한이 없다”며 무죄 판단을 내렸다. 실제로 법원은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보수단체를 지원하라고 압박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 및 조윤선 전 정무수석,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에게 채용외압을 행사한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의 직권남용죄를 인정하지 않은 바 있다. 법조계 관계자들이 법원의 ‘직무권한’에 대한 해석의 폭이 점차 좁아지고 있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 재판과 관련해 직무권한을 포괄적으로 해석해오던 법원이 태도를 바꾼 것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과 관련된 법원 출신 인사들을 고려한 포석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사법농단 핵심인물들이 대부분 직권남용 혐의에 연루돼있는 상황에서 ‘직무권한’ 해석이 좁아질 경우, 이들에 대한 유죄 판단이 어려워지기 때문.

검찰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일선 지법이 신청한 위헌법률심판을 일방적으로 취소시켰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2015년 사립대 교수 A씨가 사학연금공단에 공중보건의 근무기간을 교직원 재직기간으로 합산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하자, 일선 지법이 현행법의 위헌 여부를 헌법재판소에 판단해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이미 전산시스템까지 등록된 위헌법률심판 신청을 취소시키고 해당 내용이 전산시스템 상에서 검색되지 않도록 조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해당 재판부는 검찰 조사에서 대법원의 요청으로 위헌법률심판 신청을 취소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같은 해 통합진보당 도의원의 지위확인 소송에서도 양승태 법원행정처는 일선 법원에게 의원의 지위확인은 헌재가 아닌 법원의 권한임을 판결문에 명시하라고 요청했다. 법조계에서는 상고법원 설치 및 법률 최고기관의 지위를 두고 헌법재판소와 갈등관계였던 양승태 대법원이 일선 재판에 깊숙이 관여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직시절인 지난 2016년 11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박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 행정처 및 재판연구관실 판사들에게 직권남용죄에 대한 법리검토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도 최근 확보한 상태다. 검찰은 사법농단 핵심인물의 재판 관여 의혹에 대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고 수사를 계속하고 있지만, 다수의 진술과 정황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 대통령의 1심 판결로 인해 유죄를 확신하기 어렵게 됐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일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에 출연해 “과거에는 직권남용을 굉장히 포괄적으로 적용을 해왔었는데, 최근 들어서 법원 이 직권남용 부분을 굉장히 소극적으로, 아주 세밀하게 적용을 하고 있다”며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해)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사전포석이 아니냐 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지열 변호사 또한 이날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판결에 있어서 직권남용만큼은 정말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며 법원의 직무권한 해석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다만 양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의 1심이 사법농단의 사전 포석이냐는 진행자 김어준씨의 질문에 대해서는 “그것은 결과론적인 해석”이라며 “결과적으로 밑밥이 깔렸으나 의도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