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이드 파이어

“마치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 도시에 사는 것 같이 느껴졌지.”(I feel like I've been living in a city with no children in it.)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자본주의는 현재 전 세계를 지배한다. 하지만 그들의 세상에는 천진한 아이들로 상징되는 미래의 희망이란 눈곱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캐나다 록그룹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의 세 번째 앨범 < The Suburbs > 수록 싱글 'City with no children'은 약자를 향해 그 어떤 자비도 베풀지 못하는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동시에 그 일원으로서 느끼는 죄책감과 스스로의 위선에 대한 양심적 고해성사이다.

돈이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세상에서 결국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망가져 버린다. 재력을 과시하며 살아가는 부자들도 자본주의 벽의 개인감옥에 갇힌 불쌍한 존재들일뿐이다. 결국 지금의 서구 사회는 '개인감옥에 갇힌 부자에 의해 망가져버린 정원'(a garden left for ruin by a millionaire inside of a private prison)이 됐다.

화자인 윈 버틀러(Win Butler)는 한때 자신은 이런 속물 백만장자들(millionaires)과 다르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얼마나 한심한 위선이었는지 깨달았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전에 난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난 그 사실이 의심스럽네.”(I used to think I was not like them but I'm beginning to have my doubts about it.)

밴드의 대성공으로 그도 백만장자, 아니 억만장자(billionaire)의 반열에 올랐다. 가난할 때 그는 그 어떤 성공도, 부와 명예도 자신을 바꿀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부자가 되고나서 객관적으로 보니 자신도 결국은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씁쓸할 결론에 도달했다.

이처럼 다른 백만장자들과 마찬가지로 부의 개인감옥에 갇힌 버틀러이지만 돈으로는 절대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외치려 애쓰고 있다. 마치 2천여 년 전 예수가 산상복음(the sermon on the mount)을 통해 인간에게 필요한 8복(八福, the Beatitudes)을 가르쳤던 것처럼 말이다. 그 팔복 중에 재물을 논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

버틀러는 자신처럼 부와 명예를 소유한 자들이 행운이 덜한 사람들에게 이러쿵저러쿵 삶에 대해 가르치려 하는 게 얼마나 교만하며 위선적인가를 “부자를 믿지 말라.”(You never trust a millionaire)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한동안 버틀러는 이 가사가 전 세계를 다니며 정치적/사회적 활동을 펼쳐온 U2의 보노(Bono)를 겨냥한 것이라는 구설수에 시달렸다. 이에 대해 버틀러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사람들이 보노를 깎아내리려 하지만, 조지 부시가 대통령일 때 그와 맞선 것만으로도 나는 보노를 높이 평가한다. 아프리카에 에이즈 치료제를 전달한 것 하나로도 그는 어느 대통령보다 많은 일을 이루었다.(As much as people slag Bono, I will forever give him credit for engaging with George W. Bush when he was president. The HIV medications in Africa. It was a hell of a lot more than any president before had done.)

'City with no children'은 또한 순수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애달파한다. '내 팔이 부러졌던 그 여름'(the summer that I broke my arm)은 순수와의 결별이 이루어진 때를 상징한다. 그렇게 간절히 편지를 기다리던 마음은 어느새 차가워져버렸다. 이제 남은 건 그때 왜 열정적으로 사랑하지 못했는가하는 후회뿐이다. 

“그 때 너를 사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우리의 때가 다하기 전에.”(I wish that I could have loved you then, before our age was through.)

버틀러가 다신 돌아갈 수 없는 과거는 바로 순수했던 언더그라운드 시절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시절은 꿈속 휴스턴으로의 여행처럼 암울하고, 엔진 꺼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가난과 고통으로 점철된 생활이었다. “꺼지는 엔진소리가 들려올 때 우리 눈에 뵈는 불빛은 전혀 없었지.”(There was no light that we could see as we listened to the sound of the engine failing.)

버틀러는 이제 노골적으로 자신이 속물임을 드러낸다. “언더그라운드에 머물면 비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When you're hiding underground, the rain can't get you wet.)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이제 조심스럽게 자신이 전혀 세파를 거스를 힘이 없는 유약한 존재임을 드러내며, 소극적으로나마 자기를 합리화하려 한다. 

“너의 양심이 빚의 이자를 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것이 의심스럽네.”(Do you think your righteousness could pay the interest on your debt? I have my doubts about it.)

'City with no children'은 부와 맞바꾼 순수했던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돌아가기엔 이제 너무 속물로 변해버린 한 재능 있는 뮤지션의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양심을 괴롭히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이 외치고 싶은 것들을 실천하며 살 수 없는 위선적 삶이다. 그것은 '아이들이 사라진 도시'(the city with no children)처럼 아무 희망도 없는 감옥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세상을 망가뜨리는 부자대열에 합류한 그를 서글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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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ummer that I broke my arm
I waited for your letter
I have no feeling for you now
Now that I know you better

내 팔이 부러졌던 그 여름
난 너의 편지를 기다렸지
더 이상 너를 위한 감정은 없어
난 이제 널 너무도 잘 알아

I wish that I could have loved you then
Before our age was through
And before a world war does with us whatever it will do

그 때 너를 사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우리의 때가 다하기 전에
세계대전이 지 맘대로 우릴 망가뜨리기 전에

Dreamt I drove home to Houston
On a highway that was underground
There was no light that we could see
As we listened to the sound of the engine failing

고향 휴스턴으로 차를 몰고 가는 꿈을 꾸었지
땅 밑으로 놓인 고속도로
꺼지는 엔진소리가 들려올 때
우리 눈에 뵈는 불빛은 전혀 없었지

I feel like I've been living in
A city with no children in it
A garden left for ruin by a millionaire inside of a private prison

마치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
도시에 사는 것 같이 느껴졌지
개인감옥에 갇힌 부자에 의해 망가져버린 정원

You never trust a millionaire quoting the Sermon on the Mount
I used to think I was not like them but I'm beginning to have my doubts
My doubts about it

부자를 믿으면 안 된다고 산상복음을 통해 들었지
전에 난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난 그 사실이 의심스럽네
그것이 의심스럽네

When you're hiding underground
The rain can't get you wet
But do you think your righteousness could pay the interest on your debt?
I have my doubts about it

땅 밑에 숨어있으면
비가 너를 적시지 못하지
너의 양심이 빚의 이자를 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것이 의심스럽네

I feel like I've been living in
A city with no children in it
A garden left for ruin by a billionaire inside of a private prison

마치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
도시에 사는 것 같이 느껴졌지
개인감옥에 갇힌 부자에 의해 망가져버린 정원

I feel like I've been living in
A city with no children in it
A garden left for ruin by and by as I hide inside of my private prison

마치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
도시에 사는 것 같이 느껴졌지
내가 개인감옥에 숨어있는 동안 망가져버린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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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that I know you better.”에서 'to know better'는 '더 잘 알다'라기 보다는 '...할 정도로 무지하지 않다',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정도가 더 적합한 뜻이다. 자식이 무언가 잘못했을 때 부모 중 하나가 “You know better.”라고 했다면 “넌 그렇게 어리석지 않잖아.”란 의미가 된다. 예를 들어보자.
1. Your son is old enough to know better. (너의 아들이 철들 때가 됐다.)
2. You should know better not to trust lawyers. (변호사들을 믿으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야지.)

“Before a world war does with us whatever it will do.”에서 'a world war'은 실제로 '세계대전'이 아니라 인간의 순수나 관계를 무너뜨리게 하는 요소들 중 하나를 뜻한다. 이 노래에서는 연인들로 하여금 순수한 열정을 잃게 만드는 '성장', 혹은 '시간의 흐름'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I dreamt I drove home to Houston.”에서 'dreamt'는 'dream'의 과거/과거분사인데 'dreamed'와 같은 의미다. 하지만 'dreamed'보다는 덜 쓰인다.

'A garden left for ruin'처럼 무언가가 'to be left for ruin'이라면, '망가지도록 방치됐다'란 뜻이다. 'Ruin'은 동사로는 '망치다', '폐허로 만들다'이다. 두 가지 예를 보자.
1. Your obnoxious behavior ruined your chances with her. (불쾌감을 주는 너의 행동 때문에 그녀와 잘 될 수 있는 기회들을 날려버렸다.)
2. The lives of people were completely ruined by the war. (국민들의 삶이 전쟁으로 완전히 망가졌다.)

명사로는 '파멸', '몰락', '파산' 등을 뜻하는데, '파멸의 원인', 그리고 '파괴의 잔해'란 의미로도 쓰인다. 명사로 쓰이는 경우도 살펴보자.
1. The husband's gambling habit ultimately led to the family's financial ruin. (남편의 습관적 도박이 가정의 재정을 몰락시켰다.)
2. Her adulterous habit was her ruin. (바람피우는 습관이 그녀를 파멸로 몰고 간 원인이었다.) 
3. The castle that used to stand in stately glory is nothing more than a useless ruin now. (찬란한 위용을 자랑하던 성은 이제는 무가치한 폐허일 뿐이다.)

'Private prison'은 '사설감옥'으로 연방정부나 지방정부 등과 계약을 맺은 사설업체가 운영하는 교도소를 말한다. 지난 92년 영국에서 첫 선을 보인 '월즈 HM 교도소'(Wolds HM Prison)를 시작으로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도 이런 형태로 운영되는 교도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 'private prison'은 부, 혹은 부자의 모순으로 창조된 무형적 교도소를 뜻한다.

'산상복음'(the Sermon on the Mount)은 산상보훈, 혹은 산상설교라고도 하는데 신약성서 마태복음 5-7장 안에 들어있는 예수의 가르침을 말한다. 지금 기독교 교리의 상당 부분이 여기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러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가 가르친 8복(the Beatitudes)과 주기도문(the Lord's Prayer)이다. 원래 'beatitude'는 '완벽한 행복이나 황홀경'을 뜻한다. 즉 천국에서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말하는 것이다. 8복은 누가복음 6장에서도 소개가 된다. 마태복음 5장 3-10절에 담긴 8복의 내용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Blessed are they that mourn: for they shall be comforted.)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shall inherit the earth.)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Blessed are they which do hunger and thirst after righteousness: for they shall be filled.)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shall obtain mercy.)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shall see God.)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the children of God.)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Blessed are they which are persecuted for righteousness' sake: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전체 노랫말 중 가장 멋진 표현은 단연코 “너의 양심이 빚의 이자를 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Do you think your righteousness could pay the interest on your debt?)이다. 맞다. 그러나 양심이 빚을 갚아주진 못하지만,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 아닌가. 양심을 가진 자는 밤에 두 다리를 뻗고 편히 잠드는 법이다.

 

<필자 약력>

동서대 임권택 영화영상예술대학 교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각본

방송 <접속! 무비월드 SBS>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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