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사법농단 사태로 인해 사법불신이 심화되면서, 사법부 견제를 위해 법관에 대한 탄핵 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사법농단 관여 법관 탄핵의 의의와 필요성’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발표자로 나온 서기호 민변 변호사는 사법농단에 대해 “단순히 법관 한명의 개인적 비리가 아니라 양 전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한 법원행정처의 조직적 범죄”라며 “법관의 파면을 통해 헌법질서 수호와 국가적 이익, 특히 국민의 법원 재판에 대한 신뢰 확보의 필요성 역시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

현재 사법농단에 대한 검찰 수사는 거듭된 법원의 압수수색·구속영장 기각으로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에 대한 적절한 형사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사문화된 탄핵 제도를 되살리는 것은 사법불신 해소를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이와 관련 서 변호사는 “탄핵은 헌법과 법률 위반을 요건으로 할 뿐 반드시 형사상 범죄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을 것을 요건으로 하고 있지 않다”며 탄핵 제도 활용의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주최로 27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사법농단 관여 법관 탄핵의 의의와 필요성'을 주제로 토론회가 진행됐다. 사진은 발언 중인 서기호 변호사의 모습. <사진=뉴시스>

◇ 일본, ‘재판관탄핵법’ 통해 국민이 사법부 견제

미국·일본 등 해외에서는 법관에 대한 탄핵 소추가 빈번한 것은 아니지만 실제 파면 사례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오히려 선출직을 비롯해 행정부 고위관료보다도 비선출직인 사법부 고위 법관에 대한 탄핵이 좀 더 일반적인 편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재판관탄핵법을 통해 모든 국민이 법관에 대한 탄핵 소추를 청구할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국민이 특정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를 청구하면 소추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재판관탄핵재판소에서 최종 결정이 내려진다. 소추위원회는 중의원·참의원에서 각각 10명씩 총 20명, 재판관탄핵재판소 또한 중의원·참의원 각 7명 씩 총 14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인 만큼 모든 과정에서 사법부의 관여가 배제하고 국민이 선출한 의원에게 판단을 맡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지난 1948년~2014년까지 1만8017건의 탄핵소추가 청구됐다. 청구인의 경우 대다수가 일반 국민(89만3474명)이었으며 변호사가 2659명, 최고재판소 8건이었다. 이중 실제 소추에 이른 것은 총 48건(9명)이며 소추 유예는 12건(7명)이다.

◇ 탄핵 법관, 성매매·금품수수에 정치관여까지…

가장 최근에 법관이 탄핵된 것은 지난 2013년으로, 오사카지방재판소 판사보가 지하철 내에서 여성 승객의 치마 속을 불법촬영하다 적발돼 탄핵재판소로부터 파면 판결을 받았다. 이밖에도 재판소 여직원에 대한 스토킹, 미성년자 성매매 등 성범죄를 저지른 판사들이 각각 2008년, 2001년 파면됐다.

판결과 관련해 관계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경우도 있다. 지난 1981년에는 도쿄지방재판소 판사보가 자신이 담당 중인 사건의 관계자로부터 골프용품 및 양복 등을 받았다가 법관의 지위를 상실했다. 1957년에도 한 법관이 소송 관계자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밝혀져 파면이 결정됐다.

한국의 사법농단 사태와 유사하게 법관이 정치에 관여했다가 법복을 벗은 일도 있다. 교토지방재판소 기토 사로 판사보는 지난 1976년 8월 4일, 후세 다케시 당시 검사총장을 사칭해 미키 다케오 당시 내각총리대신(자유민주당)에게 전화를 걸어 허위수사상황을 보고했다. 기토 판사보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자민당 간사장에 대한 영장을 발부받았다며, 체포 여부에 대해 미키 총리의 판단을 따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가 검찰 수사에 개입하려 한다는 물증을 얻고자 거짓 수사보고를 한 셈. 다행히 미키 총리는 기토 판사보의 여러 번에 걸친 유도성 질문에 넘어가지 않았고, 기토 판사보는 해당 통화의 녹음테이프를 신문기자에게 전달한 사실이 밝혀져 파면당했다.

◇ 자격회복 기회 주지만 법관 직위는 영구 상실

물론 일본식 법관 탄핵제도에도 한계는 있다 파면당한 법관이 일정 기간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경우 대체로 법조인의 자격은 회복시켜주기 때문. 실제로 기토 사로 판사도 탄핵당한지 7년 후 자격회복재판을 청구해 법조인 자격을 회복했다. 앞서 언급한 금품수수 판사 등의 경우도 5년 이상 자숙기간을 거친 뒤 자격회복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자격회복재판으로 회복되는 것은 파면판결로 인해 상실한 변호사 자격일 뿐 판사로 재임용될 가능성은 영구적으로 가로막힌 것이기 때문에, 사법부 견제로서의 법관 탄핵제도의 기능은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법관에 대한 탄핵 제도가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국회 개원 이후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 시도는 총 2회 있었으나 모두 부결·폐기돼 실제 소추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법원이 사법농단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약 90% 기각하며 자정 능력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사법부 밖에서의 견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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