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의 한 유명 대학교 어느 강의실 안에서 종교학 과목의 시험이 한창이었다. 칠판에 적혀있는 서술형 시험 문제는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에 관한 종교적이고 영적인 의미에 대하여 서술하라.’ 였다. 다른 학생들은 긴장한 모습으로 열심히 오랜 시간에 걸쳐 답을 적는 동안 창가에 앉은 한 학생은 칠판만 물끄러미 바라본 채 두 시간이 넘는 시험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있었다. 드디어 시험 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다른 학생들이 길게 적은 답안지를 제출할 때서야 그 젊은 학생은 펜을 들어 답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직 한 문장... ‘Water saw its creator and blushed. (물이 그 주인을 만나자 얼굴을 붉혔다.)’ 였다. 백 마디 미사여구 보다 화려하고 멋진 한 문장으로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쓴 이 젊은 학생이 바로 훗날 영국 최고의 낭만파 시인이 된 바이런이다.

천재 시인은 흔히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통설이다. 사물에 관한 깊은 통찰력과 애정 어린 시선이 없다면 훌륭한 시는 결코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가끔 번뜩이는 시구가 떠올라 멋진 시가 탄생된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그 시인이 그동안 끊임없는 생각을 하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로 온 몸과 머리에 은연중에 배어있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인터넷과 모바일 세상이다. 활자로 된 책 보다는 화면에 떠오르는 텍스트를 더 선호하는 세대란 뜻이다. 어떤 매체를 통해 접하든 글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겠지만 활자라는 특성 상 종이로 된 책을 한 장씩 넘겨가며 시를 음미하는 맛은 화면에 떠있는 기계적인 도구를 통한 만남보다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시를 쓰는 시인과 시를 읽는 독자와의 만남은 발달된 미디어로 차츰 더 소원해져가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 시인이 있을 법한 장소에서 오랜 기다림과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은 후에야 만남이 이루어졌다. 시인과의 만남이 여러 매체를 통해 달라진 지금이 편리하고 쉽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현재 방식이 틀리고 예전 방식이 옳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시’만큼은 시인과 독자의 직접적인 만남이 그 시를 이해하고 가슴 속 깊이 느낄 수 있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올 가을에 계간 ‘시인 수첩’의 주최로 2018년 10월 18일 (목) 18:00에 서울의 남산 ‘문학의 집’에서 열리는 ‘시 콘서트 - 가을, 컬래버’는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역량 있는 신인 발굴 등 시의 보급과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해 온 계간 ‘시인 수첩’ 출판사 및 관계자들과 오직 ‘시’의 저변 확대를 위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사심 없는 참여를 하는 여러 시인들 및 출연진들의 마음은 독자로 하여금 작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잡지 속의 시인들과 독자가 직접 만나 소통하는 장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마음의 안식처이고 내일을 향해 또 다른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와 ‘영화’, ‘소설’, ‘음악’의 색다른 만남은 자칫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시’란 영역을 더욱 폭넓게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문화의 발전을 위해 이런 좋은 행사가 많이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필자 소개>

한국을 대표하는 공포 미스터리 작가다. 이십대에 유니텔 등 각 PC통신사로부터 최고의 공포 미스터리 판타지 작가로 선정됐으며, 뉴시스에 공포 미스터리 소설 ‘악령의 추종자’를 연재했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하고 연극과 영화 보기를 즐겨했으며 현재는 작가 겸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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