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시행된 정지위성 운반로켓용 대출력 엔진 지상분출시험 장면.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북한이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약속한 비핵화 조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라며 미흡하다고 지적하는 반면, 다른 편에서는 판문점 선언보다 진일보한 구체적 조치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9일 평양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며 처음으로 직접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김 위원장은 이를 위해 ▲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동창리 엔진시험장 및 미사일 발사대를 영구 폐기하고 ▲ 미국의 상응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추진하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을 제시했다.

◇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은 어떤 곳?

평안북도 철산군에 위치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은 지난 2000년 초 건설되기 시작해 2009년 완공된 북한 최대 규모의 미사일 발사장이다. 동창리 발사장은 완공 이후 위성 발사용 은하 3호 로켓을 비롯해 각종 장거리탄도미사일에 장착되는 액체연료 추진 엔진의 성능 실험을 위해 사용돼왔다. 안보전문가들은 미국 타격 능력이 의심되는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도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개발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핵탄두보다도 핵을 미국까지 실어나를 수 있는 장거리탄도미사일의 존재가 더욱 위협적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이 미사일 기술개발의 핵심인 동창리 발사장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비핵화를 향한 확고한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로 미 국무부 북한 자문관으로 일했던 밥 칼린은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 이후 김 위원장이 동창리 시설 폐기를 약속하자, CBS 인터뷰를 통해 “이 시설은 북한의 최대 미사일 발사 시험장 가운데 하나이다. 북한이 이 시설을 폐기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긍정 평가한 바 있다.

◇ 북한 ICBM 기술 이미 보유, 동창리 시설 폐기는 무의미?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동창리 실험장 폐기에 실질적인 의미는 없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 보수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19일(현지시간) 미국공영방송 PBS와의 인터뷰에서 “남북관계와 군사적 갈등 위험 감소라는 측면에서는 적어도 전략적인 수준에서 성공적이었다고 본다”면서 “미국이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비핵화 측면에서는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이어 “싱가포르 합의와 마찬가지로 이번 합의도 뼈대에 살을 더 붙여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또한 논평을 통해 평양공동선언의 비핵화조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정 본부장은 “결국 북한이 확실하게 약속한 것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의 영구 폐기분이고 영변 핵시설의 폐기는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할 때 이루어질 전망”이라며 “이같은 합의는 물론 북한 비핵화에 일정 부분 기여하기는 하겠지만,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을 얼마나 만족시킬지는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이 동창리 발사장 폐기 약속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은 북한이 이미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을 갖췄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이미 ICBM 개발 능력을 갖췄고, 이동식 발사대를 이용해 미사일을 쏠 수 있다”며 “동창리 발사장 폐기는 그저 고정식 발사대를 없앤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핵물질 생산능력을 갖춘 영변 핵시설 폐기안의 경우 “미국의 상응조치에 따라서”라는 조건이 붙은 것도 전문가들의 우려를 사는 부분이다. 북한이 핵물질을 계속해서 생산하고 있다는 의혹은 미국 내 대북강경파를 자극하는 이슈 중 하나다. 미국 내 대북전담팀이 의회와 내각 구성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영변 핵시설에 대한 검증과 폐기 약속이 더 확실한 카드이지만, 북한이 미국의 후속대응이라는 조건을 걸면서 효과가 반감되게 됐다.

◇ 문정인, ‘평양공동선언’은 다음 단계 위한 초석

반면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평양공동선언의 비핵화 합의에 대해 “어떻게 보면 미흡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면서도 “다음 단계의 핵 협상을 위한 아주 탄탄한 기반을 닦았다”고 평가했다. 문 특보는 이번 공동선언에서 미국이 원하는 북한 핵전력에 대한 신고사찰 등의 내용이 담기지 못한 것에 대해 “미국과 북한 간의 협상의 문제”라며 “우리 정부가 선뜻 나서서 정상 선언에 담기는 어떻게 보면 부적절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보유 중인 핵무기 목록을 제출하고 폐기 수순에 들어가는 것은 남북 정상회담이 아니라 차후 북미협상에서 다뤄질 내용인 만큼, 이번 공동선언은 북미협상을 위한 다리를 놓는 작업이었다는 것.

문 특보는 이어 북한은 미래의 핵 위협을 제거하면서 미국에 상응하는 보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현재의 핵전력을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있어 양국 간에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 특보는 유관국 감찰 하에 동창리 시설을 폐기하겠다는 북한의 약속은 이러한 괴리를 메우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또한 영변 핵시설 폐기의 경우 조건부 약속이지만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 특보는 “현재 북한 핵의 기본이 되는 플루토늄 생산시설과, 고농축 생산시설을 영구 폐기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라며 “이것을 아마 북이 얘기한 것은 최초일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우리 대통령께서 받아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 특보는 이어 영변 핵시설과 관련된 조건을 단 만큼 “분명히 선언문에 담지 못한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뉴욕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직접 전달할 것이고, 그 결과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빠른 시간 내에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이 이뤄질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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