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이란 “인터넷의 모든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는 차별없이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망중립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데이터는 이제 수도나 전기와 같은 공공재’이므로, ISP나 통신사들은 특정기업에게 접속속도나 이용료에서 혜택을 주거나 차별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망중립성은 동시에 고객이 방문하고 싶은 사이트를 자유롭게 방문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거 유럽에서는 운송하려는 재화의 가치에 따라서 선적 순서나 운송의 순서가 차별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내 많은 정부들이 국경통과나 화물선적 순서에서 재화의 이동을 동등하게 대우하도록 노력하였다. 이제 인터넷과 정보서비스는 무게가 나가는 덩치 큰 상품보다도 더 값어치 있는 것이 되었다. 세계 인터넷 시장을 선도하는 미국은 작년에 망중립성을 포기하였고, 이에 대해서는 미국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동시에 특정 사이트의 접속속도를 높이는 캐쉬서버의 이용과 특정 데이터 트래픽에 전용차선을 부여하는 제도, 특정 게임이나 동영상 시청에 대하여 모바일 데이터사용량을 차감하지 않는 것에 대한 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이글에서 제4차 산업헉명의 핵심요소인 빅데이터나 사물인터넷 관련 데이터가 이동하는 통로에 차별을 둠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홈페이지. FCC는 지난해 12월 망중립성을 폐지했다.

미국에서의 망중립성포기

미국에서 망중립성이란 용어는 2003년 컬럼비아 로스쿨 교수인 ‘팀 우’가 처음 사용했다. 망중립성에는 일련의 하부 원칙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 하나는 ‘단대단 원칙’이다. 이는 말 그대로 네트웍에서 망의 끝단에 있는 사용자들이 선택권을 가지며, 중간에 있는 사업자들이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인터넷의 세계에서 중계장치인 라우터가 패킷을 식별하는 것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도록 했고, 결국 인터넷은 대용량의 데이터를 교류하는데 가장 적합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

AT&T라는 공룡은 오래전부터 미국의 통신시장을 주도하였다. AT&T의 독점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이미 1913년에 독점에 관련된 청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AT&T에게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청구하지 못하는 것 등 다양한 조건으로 상당기간 우월적 권한을 유지해주었다. 또한,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오랜기간 동안 망중립성을 굳건히 지지하였다. 그런데 미국의 FCC는 작년 12월 11일 3:2의 투표로 망중립성을 포기했다. 이러한 결정에 대하여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들은 신규 수익원 발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반겼다. 또한 새로운 수익원은 네트웍산업 전체에 대한 투자의 선순환을 야기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있었다. 이러한 미국 정부 정책의 변경은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한 오프라인 네트웍사업을 활성화하여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트럼프 정권의 야심과 일치된 부분도 있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이제 망중립성의 문제는 시장경제의 원칙이 지배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단순히 물리적 네트웍 투자비용의 손쉬운 회수를 이유로 망중립성을 완화한 것이 결국 공정거래의 틀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캘리포니아주, 워싱톤주, 오리건주 등 IT산업을 선도하는 미국 서부해안의 주들이 망중립성의 포기에 대하여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망중립성 원칙의 포기는 일정 부분 신생 스타트업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고, 결국 공정한 경쟁과 혁신을 저해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다행히 미국이 망중립성을 포기했음에도 일부에서 우려하던 특정서비스의 차단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의 망중립성 문제는 필자가 거주하던 산타클라라 카운티 소방당국이 최근 멘도치노 산불진화작전 중 특정 통신사가 패킷을 제한한 것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면서 더욱 뜨겁게 논의되고 있다.

망중립성의 원칙이 폐기되면서 미국의 통신사들이 한국의 인터넷서비스 업체들에게 거액의 접속료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한편 유럽에서는 인터넷 접속시장의 경쟁으로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기업이 적어서 망중립성 이슈가 크게 문제되지는 않고 있다.

 

한국에서의 망중립성

그동안 한국에서 망중립성은 강력하게 보호되지는 않았다. 한국의 법원은 이동통신사가 휴대폰패킷을 이용하여 무료국제전화나 저렴한 시내전화를 서비스하는 업체를 차단한 것이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3월 최근 페이스북이 임의로 사용자들의 접속경로를 변경한 사건에 대하여 페이스북에게 과징금 3억9600만원을 부과했다.

한국의 네이버와 카카오는 그동안 빠른 접속 속도를 보장하기 위하여 KT나 SK브로드밴드 등에 캐쉬서버를 설치하여 운영하면서 별도의 망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었다. 네이버는 통신사들에 대략 연간 약 734억원의 망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페이스북 등도 한동안 통신사로부터 꾸준히 캐시서버를 임대하여 사용했다. 그런데, 페이스북이 갑자기 캐쉬서버 사용료의 인하를 주장하자 한국시장에서는 페이스북과 인터넷서비스 업체간의 갈등이 일시적으로 고조되었다. 페이스북은 2016년 12월 SK텔레콤 사용자들의 접속경로를 홍콩으로 우회하도록 변경했다. 또한 페이스북은 2017년 1월과 2월 LG유플러스 가입자들의 접속경로를 홍콩이나 미국으로 우회하도록 했다. 한편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KT사용자들만 원활한 페이스북 접속속도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페이스북은 그동안 “콘텐츠 제공자가 접속 품질에 관한 책임을 부담할 수 없고, 응답속도가 느려졌다고 해도, 이용자가 체감할 만한 수준은 아니며, 이용약관에 서비스 품질을 보장할 수 없다고 명시하였다며 전기통신사업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일단 페이스북은 방통위의 3억여원의 과징금 부과에 대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북의 행위에 대한 위법성은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판단될 것이다.

 

제로레이팅과 급행차선

제로레이팅은 '0원 요금제'란 의미로, 통신업체와 콘텐츠 업체가 제휴를 하고, 고객이 특정 콘텐츠 이용시 데이터 비용을 면제하는 것이다. SK텔레콤과 KT는 이미 일부 게임업체와 제휴해 관련 콘텐츠를 이용할 때는 데이터를 차감하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 영세 게임업체들은 벌써부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인터넷서비스기업이 특정 업체를 차별하면 신생 스타트업은 저품질 속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경쟁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제로레이팅과 동시에 최근 그 논의를 더해가는 것은 급행차선이다. 급행차선은 버스 전용차선과 유사한 개념이다. 특정 서비스를 위하여 급행차선비를 내면 통신사들이 이 데이터를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준다. 만약 자율주행차나 자율주행드론, 자율주행선박을 위하여 전용차선을 확보해주지 않는다면, 긴급성을 요구하는 데이터의 전송지연으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4G 휴대전화 네트웍에서 이동통신의 지연속도가 0.02초나 0.05초인데, 5G에서는 지연속도가 0.001초 정도이다. 즉 사용자가 4G 무선네트웍으로 자율주행차에 정지명령을 내렸다면 차량은 1미터를 주행한 후에 정지신호를 수령한다. 그러나, 사용자가 5G 네트웍을 이용한다면, 차량은 겨우 3센티를 이동한 후에 정지명령을 수신한다. 위와 같은 점을 살펴본다면, 원격으로 환자를 모니터링하거나 로봇을 이용하여 원격으로 수술을 한다고 가정할 때, 사용자의 폭증 등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데이터의 지연은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고속도로 101번은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가로지른다. 만약 누군가가 다른 승객을 태울 경우 카풀차선을 이용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옆자리에 탄 사람들은 대부분이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동승자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자카르타 당국이 차량에 3인 이상 태우는 카풀을 권장했지만 빈자리는 저임금을 받고 단순히 자리만 채우는 노동자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자카르타의 전체적인 통행속도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한국인은 지난 7월 기준 한달에 39만테라바이트를 주고 받았다. 한국에서도 망중립성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는데, 데이터가 이동하는 정보의 고속도로에 전용차선이나 카풀라인을 광범위하게 도입하기 전, 부작용은 없을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약력>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 안양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 (주)명정보기술 산호세법인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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