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마골(買死馬骨)=죽은 말의 뼈를 거금을 주고 사들이다. 평범하게 행동하면 평범한 결과밖에 못 얻는다. 특별한 결과를 거두려면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 고수는 하수가 보기에 별난 일을 한다. 밑지는 장사를 하라.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 고수의 행보다.

 

약우(若愚)는 프로기사 2단의 별칭으로, 도가의 가르침인 ‘대현약우(大賢若愚)’에서 따온 말이다. 크게 현명한 자는 어리석은 듯이 보이고, 크게 곧은 것은 굽은 듯이 보이는 법이다. 바둑의 ‘약우’는 “어리석어 보여도 나름대로 꾀가 있다”는 뜻이지만 그 어리석음은 큰 지혜와 통한다.

 

<논어>에 보면 공자가 위나라의 대부 영무자(甯武子)에 대해 “그의 지혜는 누구나 따를 수 있지만, 그의 어리석음은 아무나 따를 수가 없다”고 평하는 대목이 나온다. 바둑의 ‘약우’도 마찬가지다. 어리석게 보이는 것은 아무나 쉽게 흉내 내지 못하는 경지다. 매사마골(買死馬骨)의 고사에서 약우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를 잠시 더듬어 보자.

 

여기 죽은 말의 뼈가 있다. 보통 말이 아니고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명마인 천리마의 뼈다. 돈을 주고 산다면 얼마를 줘야 할까? 아니, 죽은 말의 뼈다귀를 돈까지 줘가며 사야 할까?

셈이 어두운 사람이라도 죽은 말의 뼈 따위는 절대로 돈을 주고 사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쓸데없는 것을 황금 오백 냥이라는 큰돈을 들여 사들인 사람이 있다. 어찌 된 까닭일까.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에 그 사연이 나온다.

 

옛날에 말을 몹시 좋아하는 왕이 있었다. 그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명마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 말이 갖고 싶어 여기저기 수소문했다. 그러나 거금을 포상금으로 걸고 3년을 구했는데도 천리마를 얻지 못했다. 그때 어떤 신하 하나가 자신이 한번 구해보겠다며 나섰다. 왕은 반신반의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그에게 거금을 쥐어 보냈다.

그런데 몇 달 후 그 신하는 천리마를 구했다며 죽은 말의 뼈를 들고 나타났다. 왕은 기가 막혔지만 꾹 참고 물어보았다.

“그래, 그것을 구하는데 얼마나 들었는고?”

“황금 오백 냥을 주고 샀습니다.”

“죽은 말의 뼈가 그렇게 비싼가?”

“이것은 보통 말이 아니라 천리마의 뼈입니다. 어디에 있는지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네 이 놈! 내가 구하는 것은 살아있는 천리마다. 저 따위 죽은 말의 뼈다귀를 황금 오백 냥이나 주고 사오다니!”

왕이 노해서 소리치자 신하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오. 천리마는 귀한 말이라 다들 숨겨놓고 내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왕께서 죽은 천리마의 뼈도 오백 냥이나 주고 샀다고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죽은 말도 저런데 산 말은 얼마나 비쌀까 싶어 너도나도 천리마를 내놓지 않겠습니까.”

과연 신하의 말 대로였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왕은 구경조차 힘들었던 천리마를 세 마리나 구할 수 있었다.

 

죽은 말의 뼈를 거금을 들여 사들이는 것은 상식 밖의 짓이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헛돈을 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상식적인 결과밖에 얻지 못한다. 특별한 결과를 얻으려면 특별한 일을 저질러야 한다. 비범한 사람들은 보통사람이 보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거래도 마다 않는다. ‘약우’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그렇다.

 

‘약우’는 아무나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쓸모없어 보이는 것에 거금을 들이는 것은 상식에 반하고 본능에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게 지혜로운 것은 어리석어 보이고, 대단히 교묘한 것은 오히려 졸렬해 보이는 법이다. 한고조(漢高祖) 유방의 참모였던 진평(陳平)의 입신 과정에서도 세상의 상식에 반하는 ‘약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진평은 한나라의 천하통일에 일조한 공신으로, 여섯 번이나 기묘한 계책을 내놓아 유방을 위기에서 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꾀가 많아 귀신도 속아 넘어갈 정도의 귀재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나라 왕실의 주춧돌 역할을 한 진평이지만 그의 초년은 궁핍하기 짝이 없었다. 진평은 의지할 곳이 없어 형의 집에 얹혀살았는데, 가난한 가운데서도 책읽기를 좋아했고 키가 크고 늠름한 것이 풍채 또한 좋았다.

어느덧 진평이 장성해 장가들 나이가 됐는데, 짝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부잣집에서는 가난뱅이에게 딸을 주려하지 않고, 가난한 집 여자는 백수인 진평의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꾀 많은 진평이 호박이 저절로 굴러들어올 때까지 손 놓고 있을 리는 없었다. 같은 고을 부자 중에 장부라는 사람의 손녀가 다섯 번이나 시집을 갔는데 그때마다 남편이 죽어 혼자였다. 다들 장가들기 꺼렸지만 진평은 뜻밖에도 그녀를 아내로 점찍었다.

 

마침 마을의 어느 집에서 초상이 나자 진평은 준비된 행동에 들어갔다. 가난한 진평은 상가의 일을 도우며 돈 대신 몸으로 부조했다. 즉 가장 먼저 상가에 도착해 가장 늦게 돌아오며 이런저런 일들을 자기 일처럼 챙겨 주었다. 그런 성실함이 문상객으로 와 있던 장부의 눈에 띄었다. 진평은 장부의 시선을 뒤통수로 느끼고는 더욱 열심히 상주를 도와줬다. 마침내 장례가 끝나고 진평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의 짐작대로 장부의 발걸음도 멀찍이서 따라왔다. 도대체 어디 사는 젊은이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진평의 뒤를 밟아 보니 그의 집은 성곽을 등진 막다른 골목에 있었다. 문이라고 해야 낡은 가마니를 겨우 걸쳐놓은 허름한 집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문 앞에는 수레바퀴 자국이 많이 나 있었다. 당시 수레는 신분 높은 사람들이나 타고 다니는 것이었다. 진평이 비록 가난하나 그의 집에는 귀한 사람들이 들락거린다는 것이 바퀴자국에 씌어 있었다.

장부는 “내가 사람을 제대로 봤구나” 하고 내심 무릎을 쳤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그의 아들에게 말했다.

“자네 딸을 할아버지인 나는 진평에게 주려고 한다.”

아들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대꾸했다.

“진평은 가난뱅이에다 무위도식하는 한량입니다. 어째서 망신스럽게 제 딸을 그에게 주려고 하십니까?”

“그렇지 않아. 진평처럼 싹수 있는 남자는 언젠가는 인물값을 톡톡히 할 것일세.”

마침내 장부의 손녀는 진평에게 시집갔다. 진평은 부유한 처가의 재력을 힘입어 더 많은 사람들과 교제해 앞길을 열어갈 수 있었다.

 

부자가 가난뱅이에게 딸을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장부는 진평의 진가를 알아보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투자를 했다. 진평이 지금은 비록 죽은 말의 뼈다귀처럼 초라해 보이지만 장차 천리마가 될 것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장부의 예상대로 진평은 훗날 승상의 자리에까지 오름으로써 인물값을 톡톡히 해냈다.

별난 투자를 하기는 진평도 마찬가지다. 다섯 번이나 결혼해 남들이 꺼리는 여자를 선뜻 아내로 맞아들인 게 그것이다. 이 또한 어리석은 듯이 보이는 약우의 행보였다고 할 수 있다.

 

당나라 때의 고수 왕적신이 지은 위기십결(圍棋十訣) 중에는 사소취대(捨小取大)가 있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는 가르침이다. 바둑 문외한이 들으면 너무나 당연한 것을 비결로 든다고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른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큰 것을 놔두고 작은 것을 취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상식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큰 것을 팽개치고 작은 것을 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령지혼(利令智昏)이라는 말처럼 이익에 눈이 가려지면 지혜가 어두워져서 무엇이 진짜 큰 것인지를 잘 분별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수는 소탐대실하고, 고수는 사소취대한다는 바둑속담은 그래서 나왔다.

 

약우의 경지에 이르려면 무엇이 크고 작은 것인지를 제대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이를 역으로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고수는 작은 것을 탐내는 하수의 심리를 이용해 더 큰 것을 취한다. 이와 관련한 고사 중에는 이런 소극(笑劇)도 있다.

 

후한(後漢)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가 반란군에 의해 장안에 감금됐을 때의 일이다. 헌제는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서 낙양으로 도망쳤다. 이를 안 반란군의 군사들이 말을 타고 뒤쫓아 와 헌제의 수레를 덮치려고 했다. 잡히기 일보 직전에 헌제를 시종하던 신하 동승(董承)이 큰 소리로 외쳤다.

“폐하! 어서 갖고 있는 금은보화와 재물을 전부 밖으로 버리십시오!”

이에 헌제를 따르던 궁녀와 수행하던 장군들까지도 패물은 물론 금으로 만든 혁대까지 풀어서 길 위로 내던졌다. 황후도 보석으로 장식한 모자와 장신구를 벗어서 수레 밖으로 날려 보냈다.

잠시 뒤 맹렬히 추격해오던 반란군들 사이에서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길에 금은보화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자 급히 말을 멈추고 너도나도 그것을 줍기에 바빴다.

“이놈들아! 뭐하는 짓이냐. 어서 황제의 수레를 뒤쫓아 가거라!”

반란군 추격대장이 성이 나서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황금에 혹한 병졸들은 상관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눈앞의 횡재를 포기하라는 것은 병졸들에게 애당초 씨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반란군들이 한눈을 파는 틈을 타서 헌제 일행은 멀리 도망칠 수 있었다.

 

이런 것이 약우의 수법이다. 마지막으로 실제 생활에서 약우의 사례를 하나 소개하고 마치기로 하자.

 

어느 동네의 목사가 마트를 하고 있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찾아갔다.

“어이, 친구. 장사는 잘 되나?”

“그럭저럭. 근데 너희 교인들더러 도둑질 좀 하지 말라고 해.”

“엉? 우리 교인들이 이 가게에서 도둑질을 한다고?”

“자기들끼리 하는 소리를 들으니까 그 교회에 다니던데 뭘.”

“그런데 물건을 슬쩍 한다고?”

“허허, 장사하는 사람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 있어. 손님들이 저쪽 뒤에 가면 아무도 안 보는 줄 알고 가방에다 과자 같은 것을 얼른 숨기지. 한두 번 그러는 게 아냐.”

“저런 고약한…. 잡아다가 혼을 내주지. 시범 케이스라고 있잖아.”

“아니야. 내가 미쳤어? 잡아서 혼을 내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도둑 한번 잡으면 그 가게 절단 나. 장사는 그렇게 하면 안 돼. 도둑질 하다 걸린 사람들은 망신스러워서 그 가게 다신 안 와.”

“그러면 좋은 거 아닌가?”

“아냐, 안 그래. 그 사람은 자기만 안 오는 게 아니라, 틈만 나면 이 가게를 헐뜯어. 온갖 군데에다가 갖은 험담을 다 퍼뜨리지. 그러면 손님들 딱 끊겨. 도둑 한번 잡으면 3년 안에 장사 말아먹는다는 속설이 있다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손님이 물건을 슬쩍 하고 계산대에 오면 나는 모르는 체하고 빵이나 과자를 덤으로 얹어줘.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도둑에게 선물 하나 더 챙겨 주는 거야. 너무 똑똑하면 장사 못해. 일부러 바보처럼 구는 거지 뭐.”

“허, 그것 참. 그렇게까지….”

“그러면 그 사람은 반드시 다음에 다시 와 물건을 더 팔아 줘. 다른 손님들까지 몰고 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져갔던 물건도 어느 틈엔가 원위치 시켜놓지. 그게 장사 잘하는 요령이야.”

 

이제 약우의 수법이 눈에 보이는가?

 

<필자 소개>

김태관은 신문기자로 한 세월을 살았다. 지금은 책 읽고 글 쓰다가 가끔 산책을 하며 또 다른 세월을 보내고 있다. 편집부장과 문화부장, 논설위원, 스포츠지 편집국장 등이 그가 지나온 이정표들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들어 있지 않다고 그는 생각한다. 진짜 그가 어디에 있는지, 오늘의 그는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다. 고전의 숲을 헤매며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있는 것도 그런 작업 가운데 하나다. 그 과정에서 뒷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들을 펴내기도 했다. 인류의 스승 장자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찾아보는 <곁에 두고 읽는 장자>, 한비자를 통해 세상살이를 엿본 <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가>, 바둑으로 인간수업을 풀어본 <고수>, 그리스 신화를 쉽게 풀어 쓴 <곁에 두고 읽는 그리스 신화>, 한 시대를 풍미한 철학자들의 말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는 <늙은 철학자가 전하는 마지막 말>과 <늙은 철학자의 마지막 수업>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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