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강약수(欲彊弱守)=강해지려면 약함으로써 자신을 지켜라. 자신을 보존하는 길은 강함뿐이 아니라 약함에도 있다. 군대가 강하면 멸망하고, 나무가 강하면 쉽게 부러진다. 강해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약함을 내세워 자신을 지킬 줄 아는 것이 고수로 가는 첫걸음이다.

 

수졸(守拙)은 바둑에서 프로초단의 별칭으로 ‘졸렬하나마 지킬 줄 안다’라는 뜻이다. 이제부터는 수졸에서 입신으로 가는 위기구품(圍棋九品)의 각 단계를 하나씩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전쟁의 승리는 먼저 자신을 지킬 줄 아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싸움은 이길 수 있을 때만 하고, 상대보다 약하면 일단 지키고 보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다. ‘수졸’ 즉 근근이 지키는 것은 약해 보이고, 어딘지 비겁한 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승리의 길은 강함에만 있는 게 아니라 약함에도 있으며, 약함을 내세워 승리를 일구는 것은 진짜 고수만이 할 수 있는 역발상이기도 하다.

 

<명심보감>에 보면 “총명함은 어리석음으로 지키고, 뛰어난 공적은 사양함으로 지키고, 용맹은 겁냄으로 지키고, 부유함은 겸손으로 지키라”고 했다. 자신을 지키는 길은 드러내어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데 있다. 강함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약함을 내세우는 것이 몸을 보전하는 지혜다.

聰明思睿 守之以愚 功被天下 守之以讓 勇力振世 守之以怯 富有四海 守之以謙

 

중국 서진(西晉)의 명장인 두예(杜預)의 처신이 이를 보여준다. 두예는 ‘파죽지세(破竹之勢)’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이자, 재주와 학식이 뛰어난 학자였다. 문무를 겸비한 그는 오나라를 정벌하는데 큰 공을 세워 무제(武帝)의 깊은 신임을 받았다.

두예가 오나라를 정벌할 때의 일이다. 그의 군대가 막강한 기세로 연전연승하며 오나라의 수도 건업(建鄴)에 입성을 앞두고 있을 때, 때마침 우기가 닥쳐 곤란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이때 대부분의 장수들이 건의했다.

“이렇게 폭우가 계속되다 보면 금세 강물이 범람할 테고, 그러면 전염병이 번질 게 뻔합니다. 그러니 일단 철수했다가 겨울철에 다시 공격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나 두예는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 아군의 사기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와 같다. 대나무는 처음 몇 마디만 쪼개면 다음부터는 칼날이 닿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데 어찌 이런 기회를 버린단 말인가?”

과연 진나라 군대는 파죽지세로 밀고나가 오나라의 수도를 함락시킬 수 있었다.

이런 공적으로 두예는 무제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더욱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변함없이 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명절 때마다 두예는 예전과 다름없이 무제의 측근들에게 친필 편지를 동봉해 선물을 보내곤 했다. 편지의 내용을 보면 아부에 가까운 말들이 많아 낯이 간지러울 정도였다. 두예의 집안사람들이 이를 의아하게 여겨 물었다.

“어르신께서는 권력과 지위가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예전처럼 그들에게 선물을 갖다 바칩니까? 이제는 되레 선물을 받아도 괜찮은 입장이지 않습니까?”

두예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내가 약한 모습을 보여야 그들이 나를 헐뜯지 않는다. 그들은 벼슬이 나보다 높지는 않을지 몰라도 황제의 총애를 받는 측근들이다. 혹시라도 나에 대해 나쁜 말을 하면 폐하께서는 그대로 믿을 것이다. 자리가 높아지면 남들의 질투를 사게 마련이다. 자세를 낮춰야 남에게 시기와 모함을 받을 위험이 줄어든다. 약한 자로 처신하는 게 나를 지키는 길이다.”

 

과연 두예는 무제가 만년에 향락에 빠져 공신들을 배척할 때에도 화를 당하지 않았다. 강함이 아니라 약함을 내세워 자신의 몸을 보존한 것이다. 노자는 “군대가 강하면 멸망하고(兵强則滅), 나무가 강하면 부러진다(木强則折)”고 말했다. 칼로 선 자는 칼로 망하는 법이다. 강함을 자랑하는 자는 그 강함으로 인해 부러지기 쉽다. 그러나 약한 자는 풀과 같아서 휘어져도 부러지지는 않는다.

 

약함은 자신을 지키는 데 있어서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되기도 한다. 성을 빼앗는 데는 힘이 필요하지만, 지키는 데는 지혜가 필요하다. 강함보다 약함을 내세울 줄 아는 것은 자신을 지키는 지혜다. ‘졸렬하나마 지킬 줄 아는 단계’인 수졸은 입신의 경지로 가는 중요한 첫 관문이다. ‘약함의 지혜’에 눈을 떠야 어디서 칼이 날아올지 모르는 도산검림(刀山劍林)의 세계에서 자신을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漢)나라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 경신(敬愼)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노자가 병석에 누운 스승 상종을 찾아뵌 뒤 물었다.

“선생님, 제자들에게 남기실 가르침은 없는지요.”

상종이 말했다.

“고향을 지나갈 때에는 수레에서 내리도록 하여라!”

노자는 그 뜻을 알아듣고 답했다.

“고향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군요.”

“큰 나무를 보면 종종걸음으로 다가 가거라!”

“어른을 공경하라는 말씀이군요.”

상종은 자기 입을 벌린 뒤 노자에게 보여 주며 물었다.

“내 혀가 아직 남아 있느냐?”

“예, 남아 있습니다.”

“내 이가 아직 남아 있느냐?”

“다 빠지고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알겠느냐?”

“혀가 남아 있는 것은 부드럽기 때문입니다. 이가 빠지고 없는 것은 강하기 때문입니다.”

“천하의 일을 다 말했느니라.”

상종은 입을 닫고는 돌아누웠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여린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긴다(弱之勝强 柔之勝剛). 그러므로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는 것이 노자의 가르침이다. <설원> 경신편에서는 그 이치를 이렇게 설명한다.

“하늘의 섭리는 미약한 것이 이기게 돼 있다. 천도(天道)는 가득한 것을 덜어서 부족한 쪽에 보태주고, 지도(地道)는 꽉 찬 것을 변화시켜 낮은 쪽으로 흐르게 하며, 귀신은 가진 사람을 해쳐서 없는 이에게 복을 주며, 인도(人道)는 오만한 이를 꺼리고 겸손한 이를 좋아한다. 무릇 겸허함을 품고 있으면 네 개의 도가 그를 도와준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이, 모든 것은 가득한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흐르게 돼 있다. 차면 넘치고 비우면 채워지는 것이 하늘의 도리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면 모든 것을 갖출 수가 있다는 것이다. “큰 나라는 강의 하류와 같다(大國者下流)”는 노자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만드는 구절이다. 바다처럼 낮은 곳에 처하는 자는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다.

 

<설원> 경신편은 겸손의 덕으로 여섯 가지를 일러준다.

 

첫째, 덕이 있어도 남을 공경함으로 이를 지키는 자는 영화를 얻는다.

둘째, 땅이 넓어도 검소함으로 이를 지키는 자는 안녕을 얻는다.

셋째, 지위가 높아도 겸손함으로 이를 지키는 자는 귀함을 얻는다.

넷째, 병력이 많아도 두려움으로 이를 지키는 자는 승리를 얻는다.

다섯째, 총명해도 어리석어 보임으로써 이를 지키는 자는 이익을 얻는다.

여섯째, 듣고 아는 게 많아도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이를 지키는 자는 사람을 얻는다.

 

이 여섯 가지 덕은 한 마디로 ‘약함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지키려면 낮고 약한 자리에 서야 한다. 작위가 높은 사람은 다른 이들이 시기하고, 벼슬이 큰 사람은 임금이 미워하고, 녹봉이 많은 사람은 백성이 원망한다는 말이 있다. 공격을 당하지 않으려면 표적이 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강점을 감추고 약한 모습을 내세우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길이 된다.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명장 왕전(王翦)의 고사에서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왕전은 진시황제의 천하통일을 도운 일등공신이다. 진나라가 초나라를 정벌할 때 왕전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출전했는데, 당시 60만 군사는 진나라의 전 병력이라 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였다. 이런 대군을 이끈다는 것은 임금의 두터운 신임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왕전이 출전하는 날 진시황은 친히 교외까지 따라나서며 배웅했는데, 이때 왕전은 느닷없이 엉뚱한 말을 꺼냈다.

“페하. 이번 출병의 대가로 좋은 논밭과 집 그리고 정원을 받고 싶습니다.”

진시황은 별 시시한 얘기도 다한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걱정 마시오, 장군.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그까짓 것들이 대수겠소?”

하지만 왕전은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아닙니다. 소신은 이 기회에 폐하의 은총을 입어 자손들 몫까지 재산을 챙겨놓고 싶습니다.”

진시황은 왕전이 늙어서 그런가 보다 하며 껄껄 웃어 넘겼다. 그는 왕전이 왜 뚱딴지같은 말을 꺼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 후로도 왕전은 전쟁터로 향하면서 다섯 번이나 진시황에게 사자를 보내 좋은 논밭을 달라고 청했다. 이를 보다 못한 어떤 사람이 왕전을 꼬집었다.

“장군의 요청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그제야 왕전은 자신의 속마음을 밝혔다.

“그렇지 않소. 진시황은 냉혹한 분이라 다른 사람을 잘 믿지 않소. 지금 진나라의 전 병력이 내 손안에 있는데 안심하고 계실 리 없소. 이렇게 재산이나 탐내는 노인네인 것처럼 굴어야 혹시 반역하지는 않나 하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오.”

왕전은 일부러 어리숙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진시황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병력이 많은 것은 두려움으로 지키고, 총명은 어리석음으로 지키라는 <설원> 경신편의 가르침 그대로였다.

 

자신을 낮추는 자는 어리석고 약해 보여도 몸을 보전할 수 있다. 승리의 길은 강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약함에도 있다. 약함은 사람들이 잘 주목하지 않는 또 하나의 힘이다. 하수는 강함을 좇지만 고수는 약함을 취할 줄도 안다. 강함이 아니라 약함을 내세워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고수라 할 수 있다.

 

졸렬하지만 물처럼 약하게 보일 줄 아는 것도 실력이다. 물은 칼보다 강하다. 물은 바위도 뚫지만 칼은 물을 베지 못한다. 칼을 피하고 싶은가. 물이 되어라. 아무도 그대를 베지 못할 것이다.

 

<필자 소개>

김태관은 신문기자로 한 세월을 살았다. 지금은 책 읽고 글 쓰다가 가끔 산책을 하며 또 다른 세월을 보내고 있다. 편집부장과 문화부장, 논설위원, 스포츠지 편집국장 등이 그가 지나온 이정표들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들어 있지 않다고 그는 생각한다. 진짜 그가 어디에 있는지, 오늘의 그는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다. 고전의 숲을 헤매며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있는 것도 그런 작업 가운데 하나다. 그 과정에서 뒷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들을 펴내기도 했다. 인류의 스승 장자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찾아보는 <곁에 두고 읽는 장자>, 한비자를 통해 세상살이를 엿본 <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가>, 바둑으로 인간수업을 풀어본 <고수>, 그리스 신화를 쉽게 풀어 쓴 <곁에 두고 읽는 그리스 신화>, 한 시대를 풍미한 철학자들의 말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는 <늙은 철학자가 전하는 마지막 말>과 <늙은 철학자의 마지막 수업>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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