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장 만들기에서 마을교육공동체로

남기문 다사리협동조합 이사장.

[이코리아] 서울 해방촌 골목에 들어서면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풍겨오는 식당 ‘마음한잎꿈한그루’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의 최고 인기메뉴는 ‘다사리된장찌개와 제육정식’. ‘다사리협동조합’이 친환경재료와 전통기법으로 만든 된장을 푸짐하게 넣은 찌개와 고추장양념을 버무린 제육볶음은 손님들의 입맛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지난 2014년 서울 해방촌성당 이영우 당시 주임신부의 제안으로 시작된 다사리협동조합은 장 담그기를 통해 마을공동체를 다시 일궈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마을공동체의 선한 영향력을 사회를 위해 활용할 방법을 고민해온 다사리협동조합은 지금은 ‘꿈나무연극학교’를 통해 타인과 건강한 관계 맺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얼핏 연극학교과 전통장 담그기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지만, 교육사업은 다사리협동조합이 창립 때부터 품어왔던 꿈이다. 창립 첫해부터 전통장 체험학습을 통해 아이들에게 건강한 식단을 보급하는데 힘써온 다사리협동조합이 좀 더 교육에 특화된 새로운 아이템으로 연극학교를 떠올리게 된 것. 다사리협동조합은 마을공동체의 힘으로 황폐화된 해방촌 교육생태계를 울창하게 가꾸고픈 소망을 안고 아이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코리아>는 23일 다사리협동조합 남기문 이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지역 주민들이 함께 음식을 만드는 사례는 많이 있지만 협동조합을 꾸려나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를 취하게 된 이유는?

당시 서울 해방촌성당 주임신부였던 이영우 신부님이 처음 생활공동체를 만들자고 제안하셨을 때, 그 취지에는 공감했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운영해가려면 구성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동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동기가 부족하면 모임이 1~2년 만에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장 만들기에 기반을 둔 생활공동체에 ‘사회적 경제’의 개념을 넣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사회적 경제를 꾸려가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을 구성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제안을 드렸는데 구성원들의 반응이 좋았다.

- ‘사회적 경제’가 다사리협동조합의 활동 동기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성당 신자들을 대상으로 장을 나누는 것은 사회적 경제라고 보기 어렵다. 사회적 경제라는 의미를 담으려면 구체적인 사회적 가치와 그것을 전할 대상이 필요하다. 우리가 전통장으로 생활공동체를 시작하면서 계속 고민했던 것이 그 두 가지를 찾는 것이었다. 다행히 창립총회 전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통장 보급활동을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찾았다.

현재 식생활 문화는 가정식보다 급식, 외식 등의 비중이 더 커지고 있다. 우리 교육시스템에서는 학교 급식에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도록 돼있지만, 재료를 가공·조리할 때 사용되는 조미료들은 친환경적이지 않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전통장을 보급하면서 식생활을 개선하는 활동을 생각하게 됐다. 이것을 다사리협동조합의 일차적 목표로 삼는다면, 아이들을 대상으로 건강한 식단을 보급한다는 사회적 가치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 다사리협동조합은 지역 학교를 대상으로 전통장 만들기 체험학습을 진행 중인데 어떻게 시작됐나.

그 아이템이 서울시 측에서도 굉장히 좋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다사리협동조합이 지난 2014년 2월 23일에 창립됐는데, 그 해 10월 31일에 서울시와 당시 안전행정부에서 마을기업으로 승인을 받았다. 마을기업 인증서가 나오자마자 서울시에 공문을 보내 전통장 체험학습 안내문을 보낼 테니 학교에 공문을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그 때 유현초등학교, 보성여중, 신광여고 등 세 학교가 신청해 전통장 체험학습을 시범적으로 진행했다. 지금은 신광여고, 성심여고, 보성여고 등 용산구 내 세 여고에서 참여 중이다. 앞으로 참여 학교 수는 점차 확대해나갈 생각이다.

신광여고 학생들이 다사리협동조합원들과 함께 전통장 만들기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사진=다사리협동조합>

- 학교에서 장 담그기 교육은 누가 담당하고 있나.

조합 어르신들은 한 번 장을 담그고 나면 며칠씩 앓아누우신다. 너무 죄송해서 어르신들께는 부탁을 못 드리고, 주로 40대 조합원들 중 일정 되는 사람들이 학교에 나가서 전통 장 만들기를 가르친다. 힘쓰는 일들은 청년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다. 주로 성당 청년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

학교에서는 주로 음식과 관련된 전공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장이라는 게 음식을 만드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재료이다 보니 음식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 모이고 있다.

- 협동조합 활동이 4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안정적으로 조합 활동을 해나가는 비결은 무엇인가?

처음 장 만들기에 참여했던 어르신들은 조합 활동으로 돈을 벌려고 하기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재밌어서 오신 분들이다. 함께 장을 담그고, 그걸로 된장찌개를 끓이고 삼겹살을 구워서 나눠먹으면 그게 즐거우신 거다. 이게 다사리협동조합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마을협동조합들은 보통 배당 문제로 고민이 많다. 우리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구성원들과 합의를 거쳤다. 출자금 한 구좌를 20만원으로 하고, 수익이 발생해도 한 구좌 당 배당이 10%를 넘지 못하도록 했다. 많이 가져가야 2만원인데 여기에 목숨을 걸 사람은 없지 않겠나. 게다가 처음 출자할 때 항아리, 재료값 등으로 부채가 쌓여서 그걸 먼저 상환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딱히 배당할 돈이 없어, 총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에게 대신 장을 나눠드리고 있는데 그게 2만원 이상의 값어치는 하는 것 같다. 장맛이 좋아서인지 총회 날만 기다리는 분들도 많다.

- 조합이 해방촌에 ‘마음한잎꿈한그루’라는 식당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식당 운영은 어떻게 계획하게 됐나.

개인적으로 2003년부터 해방촌에서 식당 운영을 해오다 잠시 쉬고 있었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직접 김치나 장을 담그는 시스템을 갖추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조합이 생기면서 전통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그래서 지난해 7월부터 조합 이름으로 식당 활동을 재개하게 됐다.

전통장을 활용한 메뉴를 새로 추가했는데, 된장찌개만 해도 일반 식당에서 파는 것과 맛이 전혀 다르다. 예전에는 돈까스 같은 것이 주력 메뉴였는데, 요새는 ‘된장찌개+제육정식’ 매출이 훨씬 높아졌다. 전통장 메뉴를 먹고 반한 손님들이 직접 장을 구매해가는 경우도 늘었다.

식당 문을 다시 열면서 조합원들이 모이는 공간 역할도 하게 됐다. 지금 조합원이 27명인데 이중 9명 정도는 성당 신자들이 데려온 동네 친구들이다. 자주 식당에 모여서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눈다.

- 8월부터 꿈나무연극학교를 시작했다. 전통장 만들기와 연극학교는 얼핏 매칭이 되지 않는데, 어떤 동기에서 계획됐나.

다사리협동조합은 전통장으로 출발했지만, 그것을 터전 삼아 해방촌에 울창한 교육생태계를 구축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전통장 만들기 체험학습도 그런 고민에서 나온 기획이었다. 지금 해방촌에는 교육인프라가 매우 취약하다. 해방촌의 아동인구 비중은 한국 평균보다 꽤 낮은 편인데, 아이들 키울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보습학원도 하나뿐이고, 구릉이 많아서 유모차도 제대로 끌고 다니기 어렵다.

지금 해방촌에 도시재생사업이 진행 중인데 올해 말 주민공동이용시설이 설립될 예정이다. 완공되면 사회적 경제를 실천하는 법인에게 입주 신청을 받게 되는데, 해방촌에는 다사리협동조합 뿐이라 아마 입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입주하게 되면 좋은 교육아이템을 활용해 공공시설을 부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꿈나무연극학교 수강생들이 연극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 <사진=다사리협동조합>

- 꿈나무연극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아이들이 5~6세쯤 되면 타인을 인식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때부터 영어·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굉장히 기형적인 교육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으로 성장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사회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관계 맺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 그리고 내가 이해받고 배려받는 경험을 쌓는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타인과의 신뢰관계가 확장되면 그것이 곧 공동체가 된다. 그런데 이해와 배려를 나누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자기표현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보니 연극이라는 아이템에 도달했다. 연극에서 활용되는 다양한 표현법을 놀이로 만들어서 아이들과 함께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 연극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들이 필요할 텐데.

동국대 연극영화과 교수 한 분을 소개받아서 꿈나무연극학교 취지를 말씀드리고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우리 취지에 동참하는 학부·대학원생들과 현직 연극배우, 극작가, 음악프로듀서 등이 모이게 됐다. 생각보다 강사진 풀이 굉장히 좋아졌다.

하지만 좋은 취지로 참가했다고 해서 무작정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업을 하려면 확신할 수 있는 좋은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꿈나무연극학교는 강사로 참여할 의사를 밝힌 지원자들에게 자신이 가장 잘 가르칠 수 있고 아이들에게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커리큘럼을 직접 준비하게 하고, 그걸 기반으로 조합원들이 함께 논의를 진행한다. 지금 진행 중인 커리큘럼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꾸준히 준비해서 완성시킨 것이다.

현재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한 강사는 처음에 마치 대학생 상대의 사진 강의처럼 커리큘럼을 짰다가 다섯 번이나 수정을 거쳐야 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직접 빛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반응이 너무 좋다. 빛으로 나와 친구, 반 전체의 모습을 표현하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관계를 다지고, 이후에 차차 연극수업을 진행하려고 준비 중이다.

-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이들보다 오히려 강사들이 더 성장하는 학교가 될 것 같다.

참여자들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런 수업을 들어본 적도 해본적도 없는데, 직접 커리큘럼을 짜서 가르쳐야 하니 그런 것 같다. 그만큼 수업준비에 들어가는 노력도 크다. 게다가 하루 두 번 두 시간씩 아이들과 어울려 수업을 진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데 대우는 제대로 해줘야 한다. 지금은 강사들에게 시급 2만5천원을 지급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도 한 달 일하면 200만원 정도다. 예술에 매진하는 젊은 친구들이 충분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다. 이들이 노동의 대가를 충분히 받고 만족감을 느껴야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꿈나무연극학교 사진 수업에서 아이들이 빛으로 다양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다사리협동조합>

- 아직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꿈나무연극학교를 운영해본 소감은 어떤가?

꿈나무연극학교를 시작하기 전에는 굉장히 긴장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3주차가 지나고부터 부모님들로부터 고맙다는 문자메시지를 자주 받고 있다. 아이들이 연극학교에 다니면서 너무 즐거워한다는 반응이 많다. 그런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내가 길을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 주부터는 동자동에 위치한 ‘빛나라공부방’에서 방문 교육을 할 예정이다.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강사들이 직접 찾아가서 연극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이건 용산구 혁신교육사업으로 선정돼서 지원금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지금 계산으로는 이런 지원 사업을 1년에 2억원 규모는 따내야 강사들에게 제대로 임금도 지불하면서 프로그램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자신감도 붙었으니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할 생각이다.

- 전통장 만들기에서 교육생태계 구축으로 확장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사리협동조합의 향후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다사리협동조합의 지향점은 우리 마을의 생활공동체와 교육생태계를 꾸려나가는 것이다. 생활·교육인프라가 무성해야 마을이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으니 잘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생활·교육생태계 구축에 일조하려고 한다. 우선 전통장 만들기를 터전으로 삼아 연극수업과 같은 교육프로그램을 확충해나가려고 한다. 연극 말고도 다양한 예술분야가 있는 만큼 새로운 지원자들을 모아 그들의 재능에 기반을 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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