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차량 화재 관련 결함 리콜이 시작된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의 한 BMW 서비스 센터에 수리를 기다리는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BMW의 안전진단을 마친 차량에서 연달아 화재사고가 발생하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BMW가 주장한 EGR(배기가스 재순환장치) 문제가 화재사고의 핵심 원인이 아닐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BMW코리아는 최근 3주간의 긴급안전진단을 마친 뒤 지난 20일부터 전국 61개 서비스센터에서 42개 차종 약 10만6000대에 대한 리콜에 돌입했다. 사측 발표에 따르면 21일 자정 기준 리콜 대상 전체 차량 중 10만2000대가 안전진단을 완료했으며, 약 2800대가 예약대기 중이다. 리콜 대상 중 약 99%가 안정권에 든 셈이다.

하지만 실제 소비자들의 체감은 전혀 다르다. 안전진단을 받은 차량에서도 연이어 화재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 리콜 첫날인 지난 20일 오후 4시50분경 경북 문경의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는 운행 중인 BMW520d에서 화재가 발생해 전소됐다. 해당 차량은 사고 사흘 전 BMW서비스센터에서 안전진단 결과 ‘정상’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진단 이후 화재사고는 이달 들어 벌써 세 번째다. 지난 4일에는 전남 목포에서 BMW520d가 주행 중 화염에 휩싸였고, 16일에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진 2014년식 BMW GT 차량 엔진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두 차량 모두 사고 전 안전진단 결과 정상 판정을 받았다.

BMW 측은 안전진단을 받은 차량에서 화재사고가 연이어 발생한 것에 대해 “진단 조치를 담당한 직원의 단순 실수”라며 안전진단을 더욱 꼼꼼히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연이은 사고의 책임을 직원 실수로 해명하기는 어렵다. 

지난 7일 요한 에벤비클러 품질관리 부문 수석부사장은 냉각수 누수, 긴 주행거리와 주행시간, 바이패스(우회로) 밸브 열림 등 네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화재가 발생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현재 안전진단 후 화재가 발생한 차량은 이러한 조건을 전부 충족시키는 사례는 아니다. 특히 16일 사고의 경우 주차 중인 차량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어서, 소비자들은 더욱 BMW 설명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EGR 문제를 핵심원인으로 제시한 BMW 측의 설명과 달리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22일 SBS라디오 ‘김성준의 시사전망대’에 출연해 EGR 부품의 기계적 결함이 아닌 소프트웨어 결함 가능성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질소산화물 저감장치인 EGR을 무리하게 작동시키다 보니 과열됐다는 것이 여러 가지 코드가 맞아가는 부분이 있다”며 “정부에서 조사할 때 하드웨어적인 부품뿐만 아니라 이것을 움직여주는 알고리즘에 관한 것들도 같이 조사해야만 명백하게 원인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BMW의 설명에 대해 “장거리 주행과 고속 운행이 화재 조건이라는 것은 엔지니어링 측면에서 말하는 게 아닌 궁상맞은 설명”이라며 “지금 상태로 계속 진행하면 재리콜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고 덧붙였다.

차량 설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냉각기→EGR→흡기다기관 순서로 배치된 일반 디젤 차량과 달리, 문제가 된 BMW 차종의 경우 EGR→냉각기→흡기다기관의 순서로 설계됐다. 이 경우 고온의 배기가스가 냉각기가 아닌 EGR로 먼저 주입되면서 부품이 녹아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동차 명장 박병일씨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엔진이)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로 돼있다”며 “EGR의 밸브는 150도를 넘으면 작동할 수 없는 조건을 갖고 있는데, 그걸 800도(의 배기가스)와 만나도록 설계를 했다”고 지적했다.

만약 화재 원인이 단순 EGR 부품 문제가 아닌 소프트웨어 및 설계 결함으로 판명이 날 경우 기존 안전진단에서 ‘정상’ 판정을 받은 차주도 안심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은 21일 국회에 출석해 재진단에 관한 BMW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는다면 안전진단을 수차례 반복한다 해도 화재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

결국 BMW가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원인 분석을 위한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BMW 측은 안전진단 결과를 신뢰해달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소비자 불만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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