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서 여야 5당 원내대표와 오찬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여야 5당 원내대표와의 오찬 회동에서 선거제도 개편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모두 발언에서 “저는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 일찍 주장을 해왔다”며 “비례성과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서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말했다.

◇ 문 대통령, 소수정당 유리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제안

선거제도 개편은 인력과 자금이 충분한 거대 정당 위주의 선거 구도를 개혁하기 위한 핵심 과제다. 특히 문 대통령이 이날 언급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경우 소수 정당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논의돼왔다. 정당 투표에 따라 비례의석을 배분하는 기존 선거제도와 달리,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투표에 따라 총 의석을 할당한 뒤 여기서 지역구 의석을 뺀 나머지를 비례의석으로 할당하는 방식이다.

지난 20대 총선의 경우 정의당은 정당 투표에서 7.23%의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지역구 2석과 비례 4석 포함 6개의 의석만을 차지했다. 만약 전국 단위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될 경우 정의당은 22개의 의석이 보장된다. 지역구 2석을 제외한 19석을 비례 대표로 채울 수 있는 것. 정당 투표로 할당된 의석의 절반만 보장하는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해도 최소 11석으로 현재의 두배에 달하는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거대정당의 경우 선거제도 개편이 이뤄지면 오히려 손해다. 20대 총선에서 123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득표율은 25.54%.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따르면 확보할 수 있는 의석은 77석 뿐이다. 지역구에서 110명의 당선자를 냈으니 이미 비례 의석을 초과한 셈. 이 경우 민주당은 초과의석을 예외로 인정받아 총 110개의 의석을 확보하게 된다. 122석을 확보한 새누리당 또한 지역구 105석에 만족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계산할 경우 20대 국회 구도는 민주당 110석, 새누리당 105석, 국민의당 80석, 정의당 22석으로 현재의 2강 구도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취하게 된다. 심지어 한기총 등 기독교 단체들이 참여한 기독자유당조차 8석을 확보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럴 경우 총 의원 수가 정원인 300명을 넘어서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독일 연방의회의 경우 초과의석이 발생한 만큼 다른 정당에 보상의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초과의석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독일 연방의회 정원은 598명이지만 이때문에 현재는 총 709명의 의원이 활동하고 있다. 또는 선거구 당 2명 이상의 후보를 뽑는 중선거구제 등의 도입을 통해 초과의석을 일부 억제하는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 소선거구 3~5개를 2~4명을 뽑는 중선거구로 통합할 경우 정원을 늘리지 않고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할 수 있다.

◇ 선거제도 개편, 민주당·한국당 나설까?

문 대통령의 제안에 야권은 일단 환영 의사를 표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은 비례성이 강화된 선거제도 도입 시 의석 확대를 노릴 수 있다.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도 선거제도 개편은 국면 전환을 위해 고려해볼만한 카드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선거제도 개편에 소극적인 입장이지만, 과거 야당 시절부터 주장해온 사안인 만큼 문 대통령의 제안을 반대할 명분이 없다. 실제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우리 당에서 주장해왔기 때문에 당론처럼 돼 있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세부적인 사안에서는 정당 별 의견 차이가 있어 실제 선거제도 개편까지는 상당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유한국당의 경우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와 결합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 인구가 많은 도시 선거구의 경우 중선거구제를 적용하고, 농촌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자는 것. 반면 민주당은 이에 대해 반대 입장이 명확하다.

게다가 정원 유지를 위해 중선거구제를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반발이 많다. 윤종빈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해 한국일보에 게재한 칼럼에서 “중선거구제의 문제점은 정상적 정당정치를 저해하고 파벌정치를 초래하는 것”이라며 “중선거구제가 다당제를 촉진한다는 주장은 허구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도농복합 선거구제에 대해서도 선거구간 인구편차가 2대1을 넘지 못하도록 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계속해서 소극적인 입장을 보일 가능성도 높다. 민주당은 선거제도 개편 시 가장 큰 손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며, 한국당은 이미 선거제도 개편안이 포함된 대통령 개헌안 처리에 반대한 바 있다. 국회의 의사결정권을 양분하고 있는 두 정당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경우 선거제도 개편은 결국 구상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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