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문재인 대통령의 광복 73주년 경축사를 두고 또다시 ‘건국절’ 논란이 일어났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진행된 광복절 73주년 경축식에 참석해 “오늘은 광복 73주년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70주년을 맞는 매우 뜻깊고 기쁜 날”이라며 “정부수립 70주년을 맞는 오늘,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보수언론 및 야권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역사인식이 잘못됐다고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사실(史實)마저 부정하는 문재인 정부의 역사 인식과 의도가 무엇인가”라며 “한반도 유일한 합법정부인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정부 스스로가 부정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보수언론, 문 대통령 경축사 맹비난

이날 조선일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년 기적의 역사’ 누가 지우려 하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문 대통령의 경축사를 강도높게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기적’이라고 평가하며 “이 기적의 출발이 70년 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선택한 대한민국 정부 출범”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근래 들어 70년 전에 자유민주와 시장경제, 한·미 동맹 아닌 다른 길을 택해야 했다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대한민국의 성취를 인위적으로 지우려 하고 있다”며 “이 정권은 편협한 민중사관에 빠져 1948년 정부 수립은 국민의 기억에서 억지로 지우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문 대통령의 “정부수립 70주년” 발언이 건국절 논란을 피해가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앙일보는 15일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논쟁을 불러왔던 건국 표현을 ‘정부수립 70주년’으로 못박았다”며 “건국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라는 중립적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런 논란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중앙일보는 16일에도 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1948년 건국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50년사는 우리에게 영광과 오욕이 함께 했던 파란의 시기”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또한 200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58년 전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해방되었다. 빼앗겼던 나라와 자유를 되찾았다. 그로부터 3년 후에는 민주공화국을 세웠다”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두 대통령의 발언을 강조하며 “8·15 경축사만 보자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공히 '1948년=건국'으로 인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주장했다.

◇ 진보언론, “DJ 발언, 보수언론이 왜곡”

반면 진보언론에서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1948년 건국절 주장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오마이뉴스, 한겨레 등은 중앙일보 보도에 대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곡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두 대통령은 일관되게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시기로 보는 입장이었으며, 중앙일보의 해석은 발언의 취지와 맥락을 배제한 왜곡이라는 것.

김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철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지난 2016년 CBS 라디어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1948년 건국설은) 2006년 우익학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며 “(건국절이라는 말은)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정부수립을 건국이라고 표현한 것 뿐,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고 1948년 건국설을 지지한 것은 아니라는 것. 실제로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0년 3·1절 기념사에서 헌법 전문을 인용해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계승한 사실을 강조하며 “(국민의 정부는) 3·1운동 정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 받들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 또한 2003년 임시정부 수립 84주년 기념식에서 “오늘의 참여정부는 바로 임시정부의 자랑스러운 법통 위에 서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퇴임 후인 지난 2008년에는 봉하마을에서 시민들과 만나 “건국은 광복에 따라오는 것”이라며 “둘 중 하나만 쓰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침략당하기도 하고 우여곡절이 있지만, 국가는 영속적으로 존재해 온 것”이라며 “정부수립한 날을 왜 건국이라고 하느냐는 문제제기를 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한창 논쟁 중이었던 1948년 건국설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 건국절 논쟁, 한국당만 고립?

한국당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건국절 논쟁에 다시 불씨를 지피고 있지만, 논란이 확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보수정당인 바른미래당마저 “진보든 보수든 건국절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집어치워라”라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해 한국당이 고립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기 때문. 김근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광복절은 우리 국가의 ‘기旣 존재’를 전제하는 말이다. 반면, ‘건국’은 ‘없던 나라를 비로소 세우는 것’을 뜻한다”라며 건국절 제정 주장은 광복절의 의미와 충돌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개천절과 광복절이 있는 만큼, 건국기념일을 추가로 제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

문 대통령의 입장 또한 비교적 확고해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건국 100주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바른미래당으로부터 “백해무익한 건국절 논쟁에 휩싸이게 됐다”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예 “건국”이라는 표현 자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건국절 논란을 피하려 했다기보다는, 오히려 1948년 건국설 주장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건국 68주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요즘 대한민국이 1948년 8월15일 건립됐으므로 그날을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역사를 왜곡하고 헌법을 부정하는 반역사적, 반헌법적 주장이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얼빠진 주장”이라고 강도높게 비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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