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승인자 필선자승(欲勝人者 必先自勝)=남을 이기려면 먼저 나를 이겨야 한다. <여씨춘추> 계춘기의 선기(先己)에 나오는 말이다. 나부터 이겨야 한다. 나를 이긴 사람은 남도 이기게 되어 있다. 많은 적을 무찌르는 게 능사가 아니다. 거울 앞에 서면 보이는 그 사람, 딱 한 사람만 이기면 된다.

 

미스코리아와 권투선수, 누가 더 거울을 많이 볼까? 영화 <챔피언>(2002년 작・곽경택 감독)에 따르면 권투선수가 더 많이 거울을 본다. <챔피언>은 링 위에서 사망한 비운의 복서 김득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젊은 날의 방황으로 술 취해 행패를 부리다가 유치장에 들어간 김득구(유오성 분)을 데려나오며 김현치 관장이 이렇게 타이른다.

 

“거울 앞에 서 봐. 복싱선수는 미스코리아보다 거울을 보는 시간이 많다. 왜냐면 네가 싸워야 할 상대가 바로 거울 안에 있기 때문이야. 앞으로 네 눈앞에 서 있는 그 사람하고 싸우는 거야. 딱 한 사람만 이기면 된다고!”

 

남에게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지 말라. 싸워야 할 상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너 자신이다. 거울 앞에 서서 너 자신에게 주먹을 날려라. 거울에 비친 그 한 사람만 이기면 세계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타이름이다.

 

거울을 자주 봐야 할 사람은 권투선수 뿐만이 아니다. 승리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은 미스코리아보다 더 거울을 보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거울 속에는 내가 평생 싸워야 할 나의 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나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를 이겨야 남을 이길 수 있다. 나를 이기는 것이 먼저다. 그래서 <여씨춘추> 계춘기에서는 ‘선기(先己)’를 이야기한다.

“남을 이기려면 먼저 자기를 이겨야 하고, 남을 논하려면 먼저 자기를 논해야 하며, 남을 알려면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나를 이기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싸움이다. 난센스 퀴즈에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눈꺼풀이라고 한다. 천하장사라 해도 졸음에 겨운 제 눈꺼풀은 어찌하지 못한다. 천근짜리 물건은 들 수 있어도 자기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또한 나를 아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비자> 관행(觀行)편에서는 이런 예를 들고 있다.

 

“힘이 세기로 소문난 진(秦)나라 오획(烏獲)과 같은 장사는 천 근 나가는 물건은 가볍게 들었지만 자기 몸은 들어 올릴 수 없었다. 또 눈이 밝기로 유명한 이주(離朱)는 백 보 밖의 것은 쉽게 보면서 자기 눈썹은 볼 수 없었다.”

 

태산을 뽑을 만한 힘을 가져도 자기 자신을 들어 올릴 수는 없다. 천리 밖을 내다보는 사람이라도 정작 자기 눈썹은 보지 못한다. 그러기에 <한비자>는 자신을 비춰볼 거울이 필요하다고 일깨운다.

 

“옛사람들은 자기 눈으로는 스스로를 볼 수가 없으므로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았다. 자기 지혜로는 자신을 알 수가 없으므로 도로써 자신을 바로잡았다. 눈이 있어도 거울이 없으면 수염과 눈썹을 가다듬을 수 없으며, 몸이 있어도 도가 없으면 미혹됨을 알 수 없다.”

 

<한비자>는 이어서 위(魏)나라 서문표와 진(晋)나라 동안우를 예로 든다.

“서문표는 성미가 너무 급해 부드러운 가죽을 늘 허리에 두르고 다니며 그것을 봄으로써 조급한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또 동안우는 지나치게 느긋하여 결단성이 없었기에 늘 활을 차고 다니며 자신을 긴장시켰다.”

 

거울은 유리로 된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서문표와 동안우에게서 보듯이 경우에 따라서는 가죽이나 활이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인생의 승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런 거울에 늘 자신을 비춰봐야 한다.

 

옛말에도 거울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구리거울, 역사, 사람이라는 삼경(三鏡)이 그것이다. 당나라 태종의 치세술을 다룬 <정관정요>에 따르면 구리거울에 비추면 옷매무새를 바르게 잡을 수 있고, 역사라는 거울에 비추면 나라의 흥망성쇠를 알 수가 있으며, 사람이라는 거울에 비추면 자신의 잘잘못을 깨달을 수가 있다.

당태종은 충신 위징(魏徵)이 죽었을 때 이 세 가지 거울을 언급하며 “아아, 나의 잘못을 바로잡을 사람거울을 잃었구나” 하고 애통해 했다. 당 태종이 정관의 치(貞觀之治)를 이룬 현군으로 평가받는 것은 위징과 같은 ‘사람거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위징은 당 태종에게 가장 간언을 많이 한 신하로, 황제가 성을 내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꼿꼿이 곧은 말을 했다.

 

정관(태종의 연호) 2년에 태종이 위징에게 물었다.

“사람은 언제 현명해지고 언제 우둔해지는가?”

“골고루 들으면 현명해지고, 한 쪽 말만 들으면 우매해집니다. 옛날 군자들은 치우쳐 듣지 않고 폭넓게 들었습니다.”

위징의 말을 거울삼아 태종은 한 쪽 말만 듣지 않고 널리 충언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정관 초기에 오랜 전란으로 국토는 황폐해졌고 민심은 각박하기만 했다. 당 태종이 말했다.

“이제 백성을 교화해야 하는데, 오랫동안 난을 겪은 뒤라 서두르면 안 될 듯싶소.”

그러자 위징이 태종의 말을 반박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장기간 안정을 누린 백성은 배가 부르고 안일해서 교화가 어렵습니다. 동란을 겪어 배고픈 백성은 되레 교화가 쉽습니다. 이는 굶은 자가 음식을 쉬이 받는 것과 같습니다. 위급하면 죽기를 두려워하는데 그 때가 교화하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당 태종은 위징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전쟁을 피하고 백성의 교화에 힘을 기울였다. 그 보람으로 몇 년이 지나자 유랑하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사회는 점차 안정됐다.

 

정관 6년부터 몇 년 동안 계속 풍년이 들어 백성들의 생활이 윤택해졌다. 황제의 공덕에 대한 칭송이 자자해지자 신하들이 태산에서 봉선전례(封禪典禮)를 거행하자고 부추겼다. 당 태종은 귀가 솔깃했으나 위징은 반대했다.

“지금 나라 형편은 오랜 병에 시달린 사람이 기력을 차린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전례를 거행하는 것은 회복도 덜 된 사람에게 쌀 한 섬을 짐 지우고 백리 길을 가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더구나 주변 나라들이 사신을 보내오면 그들에게 우리 약점을 고스란히 노출시키는 일만 됩니다.”

위징의 바른 소리에 태종은 전례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위징은 황제의 체면은 안중에 없이 직간을 해서 태종을 난처하게 만들곤 했다. 그래서 태종은 무엇을 할 때마다 쓴 소리를 들을까 싶어 위징의 눈치를 보았다. 한번은 태종이 남산으로 사냥을 가려고 하는데 위징이 고향에 성묘 갔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태종은 어가를 멈추게 한 뒤 사냥을 취소했다. 이를 본 위징이 그 까닭을 묻자 태종이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대가 또 무슨 비난을 할 지 몰라 안 가기로 했다네.”

 

하지만 당 태종은 위징의 충언을 귀하게 여겨 그를 중용했다. 위징이 병들어 현직에서 물러나려고 하자 태종은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금은 광석으로 있을 때는 귀중하지 않지만 좋은 장인이 가공하면 보배가 된다오. 나는 금광석이고 그대는 좋은 장인이라오. 그대가 비록 병이 들었다고 해도 아직 노쇠하지 않았는데 어찌 이렇게 사직한단 말이오?”

당태종은 위징의 직언을 원석을 쪼아 보배로 만들어가는 장인의 끌과 망치로 여겼던 것이다. 나중에 위징이 병으로 세상을 뜨자 태종은 눈물을 흘리며 비문을 직접 짓기도 했다. 태종은 신하들에게 이렇게 애석해 했다.

“과거 위징은 항상 나의 잘못을 지적했다. 가슴 아프게도 나는 옳고 그름을 가려 주는 사람거울을 잃었다. 위징이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 누가 나의 잘못을 지적해 주겠는가.”

 

당 태종은 위징이라는 사람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며 꾸준히 잘못을 고쳐나갔다. ‘이인위경(以人爲鏡)’ 즉 타인을 거울로 삼았기에 태종은 자신을 바로잡고 성당(盛唐)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거울인 위징을 잃자 당 태종의 운명은 곧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위징이 죽은 지 2년 만에 당 태종은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원정에 나섰다.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참담한 실패였다. 당나라 군대는 막대한 병력과 물자를 잃고 빈손으로 퇴각해야만 했다. 돌아오면서 당 태종은 탄식하며 말했다.

“만일 위징이 살아있었더라면 그는 어떻게든지 나를 말렸으리라. 그가 있었더라면 내가 이렇게 어리석은 일을 했겠는가!”

하지만 이는 때늦은 후회였다. 전쟁의 후유증 속에 당 태종은 얼마 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람거울에 자신을 비춰보지 못한 것이 참담한 결과를 부른 셈이다.

 

“나의 최대 적은 나 자신이었다. 나의 몰락은 누구의 탓도 아니고 오직 나 때문이다.”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된 나폴레옹의 자책이다. 이는 당 태종의 탄식이기도 하다. 싸워야 할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그러므로 권투선수가 섀도복싱을 하듯이 늘 거울을 보며 자신을 향해 주먹을 날려야 한다. 인생의 모든 승부는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다. 거울 속에 비친 그 한 사람, ‘나’를 이기면 세상을 이길 수 있다.

 

인생에는 세 가지 싸움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자연과 인간의 싸움이고, 둘째는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다. 그리고 셋째는 자기와 자기의 싸움이다. 나의 내면에서는 늘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싸움이 늘 벌어지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싸움터는 나의 마음이다.

 

달마대사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달마대사가 수업 시절에 어느 절의 승방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두 노승을 만났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흑이 유리하면 흑노인의 자태가 뚜렷해지고, 백이 유리하면 백노인의 자태가 뚜렷해지는 것이었다. 얼마 뒤 바둑이 끝나자 두 노인은 합쳐져서 하나가 되었다. 그러고는 그 노승은 이렇게 말했다.

“청춘의 어느 날 보리심을 일으켜 이 절에 들어온 지 어언 40년이 흘렀다. 나는 인간의 불성(佛性)을 흰 돌에, 마성(魔性)을 검은 돌에 걸어 오랜 세월 다투었다. 흑이 이길 때도 있었고, 백이 이길 때도 있었으나 이제 기어이 흑백의 승패를 초월한 바둑을 둘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보니 그 노인은 달마대사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불성과 마성이 서로 다투는 바둑판은 곧 인간의 마음이기도 하다.

 

마음에서 벌어지는 자기와의 싸움이 인생의 승부를 좌우한다. 성경의 잠언에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철인(哲人) 플라톤은 인간 최대의 승리는 내가 나를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남을 이긴 사람은 힘이 센 것에 불과하고, 나를 이긴 사람이 진정한 강자다(자승자강・自勝者强). 이는 노자의 말이다. 불교 <법구경>에서도 “전쟁에서 혼자 수천 명을 이긴 자보다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긴 사람이 최고의 용사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인생의 승자가 되고 싶은가. 거울 앞에 서 보라. 그대 속에 있는 그대의 진짜 적이 보이는가. 수천 명의 적을 이기는 자보다 그 한 사람을 이기는 자가 진정한 강자다.

 

<필자 소개>

김태관은 신문기자로 한 세월을 살았다. 지금은 책 읽고 글 쓰다가 가끔 산책을 하며 또 다른 세월을 보내고 있다. 편집부장과 문화부장, 논설위원, 스포츠지 편집국장 등이 그가 지나온 이정표들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들어 있지 않다고 그는 생각한다. 진짜 그가 어디에 있는지, 오늘의 그는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다. 고전의 숲을 헤매며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있는 것도 그런 작업 가운데 하나다. 그 과정에서 뒷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들을 펴내기도 했다. 인류의 스승 장자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찾아보는 <곁에 두고 읽는 장자>, 한비자를 통해 세상살이를 엿본 <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가>, 바둑으로 인간수업을 풀어본 <고수>, 그리스 신화를 쉽게 풀어 쓴 <곁에 두고 읽는 그리스 신화>, 한 시대를 풍미한 철학자들의 말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는 <늙은 철학자가 전하는 마지막 말>과 <늙은 철학자의 마지막 수업>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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