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진보당 조준호,심상정,유시민 공동대표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론관에서 대표직 사퇴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친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유시민 공동대표는 퇴임의 변에서 "진보정치 5개월이라는 시간의 길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감당하기 어려운 많은 일들이 있었다"며, "여전히 통합진보당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려운 위기 가운데에 있다"고 말했다. 뉴스1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 파문은 당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지만 비당권파측 세 공동대표(유시민 심상정 조준호)에게는 '재평가'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정희 공동대표에 이은 '2인자'로 인식되며 대중들의 관심 순위에서도 다소 밀렸던 이들이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강단 있는 리더십과 뚝심으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유시민 대표는 당권파가 속한 민주노동당계에 이어 통합진보당 내에서 가장 지분율이 높은 국민참여당계를 이끌며 당권 경쟁으로 확전된 이번 사태 수습 과정에서 가장 빛나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 표는 한때 '비호감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가는 당마다 깨진다'는 꼬리표와 비난을 달고 다녔다. 2002년 '백년 가는 정당'이라며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했으나 고작 1년 뒤인 2003년 민주당으로부터 분당을 이끌며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지난해 1월에도 친노진영의 분열이라는 우려 속에 국민참여당을 창당한 뒤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에 나섰다.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그의 이름 앞에는 '비당권파'라는 계파적 수식어가 늘 따라붙었지만 종파 이익에 치중한 당권파에 비해 유 대표는 민주주의의 원칙과 절차, 화합을 강조하며 국민적 신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주력했다. 이 때문에 비당권파는 '계파적 이익에 함몰되지 않았다'는 평가 속에 당권파측 세력을 흡수하며 당 세력을 재편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유 대표가 당권파측의 '당권, 대권 거래 제안'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도 그의 '비호감' 이미지를 반전시키는데 한 몫을 했다.

그는 14일 라디오인터뷰에서 "당의 권력을 쥐고 하던 분들(당권파)이 저에 대해서는 '대선 후보로 나가든 당 대표를 하든 뭘 하고 싶다고 하면 같이 해주겠다' 이런 의사를 여러 차례 전해왔다"며 "정중히 거절했다"고 밝혔다.

사태 초기 당권파의 당 장악력이 굳건했던 시기에도 정치적 셈법을 최소화하고 원칙을 강조하는 목소리를 높이며 당권파를 거세게 밀어붙인 모습이 당 쇄신을 위한 하나의 기대 요소로 작용했다.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팽팽하게 대립했던 지난 10일 전국운영위 도중 유 대표가 "더 이상 말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오늘 말한다"며 "우리 당 행사에서 애국가를 거부하는 것이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이냐. 왜 이런 것이 금기시 돼 있냐"고 뼈 있는 지적을 던진 것이 한 예다.

지난 12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중앙위에서는 '자기만 생각하는 줄 알았던' 유 대표의 또 다른 모습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 줬다. 그는 당권파측의 회의 진행 방해가 대표단을 겨냥한 폭력사태로까지 번진 상황에서 여성인 심상정 공동대표를 감싸 안으며 보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사태로 그는 지난해 12월 통합 후 5개월여 만에 공동대표직에서 물러났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당내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은 더욱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진보신당 탈당파인 새진보통합연대계를 이끌고 있는 심상정 공동대표도 '3대 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는 평가다.

민주노동당 시절 NL(민중해방)과 PD(민중민주)계의 분열로 이미 한 차례 당권파와 맞서본 경험이 있는 심 대표는 유 대표와 함께 당권파측 모순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전선을 구축했다.

특히 '최후의 결전'이었던 중앙위를 의장으로서 이끌며 당권파의 극렬한 저항 속에서도 나름대로 깔끔하게 매듭을 지은 점에서 좋은 평가가 나온다. 폭력을 동원한 당권파에 맞대응을 자제하며 명분을 쌓은 뒤 전자투표를 통한 안건 처리에 나선 전략이 당권파측의 문제 제기를 잠재우는데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다부진 표정으로 회의를 진행하는 심 대표의 모습은 당찬 여성지도자로서 손색이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19대 총선에서 전국 최소 득표차로 경기 고양 덕양갑에 당선된 심 대표는 이번 사태의 수습 국면 전환과 맞물려 앞으로도 당내 위상을 더욱 굳건하게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당내 공식 지분이 없는 조준호 공동대표도 구색을 맞추기 위한 무색무취한 공동대표라는 혹평에서 벗어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게 됐다.

당초 이정희 공동대표로부터 영입돼 '당권파에 가깝지 않냐'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아 자체 진상조사를 이끌며 오히려 당권파를 가감없이 비판하는 강단을 보이며 당권파의 공적으로 떠올랐다.

쉬쉬하던 당내 부정경선 논란을 거의 대부분 사실로 인정하며 이번 사태 초기 가장 뜨거운 '이슈메이커'로 올라선 조 대표는 일부 당원들로부터 '판관 조준호'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다.

당권파측의 조사결과 반박과 재조사 요구 등으로 뒤로 갈수록 처음의 기세가 조금씩 잦아들긴 했지만, 당원에게 폭행을 당해 부상을 입으면서도 조사 결과에 대한 확신을 끝까지 이어가면서 비당권파측 논리를 든든히 뒷받침했다.

이들 세 대표는 14일 혁신 비대위 출범을 마지막으로 공동대표단에서 사임하고 평당원의 지위로 돌아갔지만 향후 당내 역할에 대한 기대치는 더욱 높아지게 됐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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