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 법원행정처가 공개한 양승태 사법부 당시 미공개 문건들 중 '상고법원 전방위 로비 정황' 문건들 .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법원행정처가 7월 31일 공개한 196개 문건이 큰 파문을 낳고 있다.   해당 문건에는 일선 판사들의 판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위안부 피해자 소송 등에 개입하는 등 사법권 남용을 의심케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해당 문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법원행정처의 상고법원 추진 전략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청와대, 국회, 언론 등을 설득하고, 주요 반대세력을 지목해 고립시키려한 정황이 문건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 청와대 설득 시도 구체적 정황 드러나

이번에 공개된 문건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과 관련해 청와대를 설득하려 시도한 다양한 정황들이 곳곳에 드러나있다. 지난 2015년 4월5일 작성된 ‘BH로부터의 상고법원 입법 추진동력 확보방안’에는 “BH(청와대)가 주도하여 정권의 성과·업적으로 포장할 수 있는 사법제도 개선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 상고법원안을 포함시켜 함께 추진”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박근혜 전 정부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법제도 개선하겠다고 제시해, 청와대로부터 상고법원 추진력을 얻으려 한 것.

실제로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통령의 면담을 일주일 앞둔 2015년 7월31일 작성된 ‘상고법원 설명자료(BH)’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청와대 요청에 따라 특정 사건을 대법원 심판사건으로 추가할 수 있도록 해 정부가 판결에 실질적인 영향력를 행사할 수 있는 길을 터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또한 상고법원 판사 후보자 추천 과정에서 대통령이 지명한 심사위원을 상당수 포함시켜 상고법원 자체가 청와대 의중에 따라 구성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 상고법원 반대 국회의원 상대 ‘강온양면’ 전술

국회도 법원행정처의 설득 대상이었다.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국회의원을 고립시키는 한편, 압박전략이 통하지 않을 경우 지역구 현안에 협조하는 회유책을 제시하는 등 ‘강온양면' 전술을 구상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추가 공개 문건 중 ‘거부권 행사 정국의 입법 환경 전망 및 대응방안 검토’ 문건에는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서기호 당시 정의당 의원을 국회에서 고립시키는 한편, 서 의원이 제기한 소송을 변론 종결해 심리적 압박을 주는 방안을 검토한 정황이 담겼다. 실제로 서 의원은 판사 재임용에 탈락한데 대해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낸 결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문건에 나온 대로 재판 일정이 변경돼 2015년 7월2일 변론종결된 뒤 패소했다.

또한 이 문건에는 상고법원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친박계로 분류되는 정갑윤 의원을 활용하는 방안도 적혀 있다. 문건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당시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유승민 의원으로부터 “김 의원이 친박 정권 실세 내지 법무부 장관의 영향권에 있다”는 의견을 듣고, 같은 친박계인 정 의원을 통해 김 의원에게 접촉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국회의원들과 친분이 있는 대법관 및 현직 판사를 동원해 설득작업을 펼치는 한편, 지역구 핵심 현안에 협조하는 등 ‘당근'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5년 작성된 '상고법원안 법사위 통과 전략 검토', '법사위원 대응전략' 등의 문건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포항을 지역구로 둔 이병석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주장한 노후 대구법원 청사이전을 추진하는 계획을 세웠다.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에게는 폐기물매립지 건립 관련 주민 반발 현안을,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대상으로는 신안산선 조기 착공 및 노선 연장 현안 등을 활용해야 한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2014년 9월 작성된 '법무비서관실과의 회식 관련' 문건에는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의 지역구에 상고법원 지부를 두는 방안까지 검토된 것으로 밝혀졌다.

◇ 보수언론 통한 상고법원 홍보 전략

언론을 통해 상고법원 지지여론 형성을 추진했던 정황도 밝혀졌다. 2015년 4월25일 작성된 ‘조선일보를 통한 상고법원 홍보전략’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조선일보에 상고법원과 관련된 설문조사 실시 및 좌담회 개최, 기고문 게재 등을 제안했다. 해당 문건에는 “조선일보를 주체로 실시하는 방안이 설문조사의 성공 가능성을 확보하고 조사 결과의 효과적인 홍보에 보다 유리하다”며 “조선일보에 상고법원 관련 광고 등을 게재하면서 광고비에 설문조사 실시대금을 포함해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법원행정처는 “일반재판운영지원 일반 수용비 중 사법부 공보홍보 활동 지원 세목으로 9억9900만원이 편성돼 있다”며 구체적인 지출 세목도 지적했다. 이 밖에도 이번에 공개된 문건에서 조선일보와 연관된 것은 ‘상고법원 기고문 조선일보 버전’(2015년 1월28일), ‘조선일보 첩보 보고’(2015년 3월31일), ‘조선일보 기사 일정 및 콘텐츠 검토’(2015년 5월6일) 등 9건이다.

조선일보는 법원행정처 관련 의혹에 대해 “행정처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본지와는 무관한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반면 한겨레는 “조선일보가 상고법원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한 적은 없다”면서도 “행정처가 그해 4월 말과 5월 초 조선일보 활용 전략을 구체화한 문건들을 작성한 직후인 5월19일부터 6월 초까지 조선일보 지면에는 상고법원 관련 기사와 칼럼, 기획보도가 이어졌다”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한겨레는 “상고법원 보도와 관련해 협찬금·광고비 등이 대법원에서 조선일보로 넘어갔는지는 향후 검찰이 확인해야 할 부분”이라며 해당 의혹이 사실일 경우 국고횡령 예비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양승태 ‘상고법원’ 통해 권한 강화 노려

그렇다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입법화를 위해 청와대·국회·언론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로비를 시도한 이유는 무엇일까? 상고법원을 설치해 일부 중요사건을 제외한 사건들에 대한 최종심을 맡기는 방안은 폭증하는 대법원의 업무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대안으로 논의돼왔다. 실제로 대법관 한명이 한해 담당하는 사건은 약 3000건 가량으로 업무 강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고법원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해당 제도가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더욱 강화하고 사법부의 수직계층화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대법원 업무부담을 경감하려면 50~100명 가량의 상고법원 판사가 필요한데, 이에 대한 임명권은 대법원장에게 주어지기 때문. 고위 법관 자리가 늘어나고 그에 대한 인사권을 대법원장이 쥐게 될 경우,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 대법원의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확산될 것은 자명하다.

또한 상고법원에 일반 사건을 넘긴 채 대법관들이 주요 사건만 맡게 되면, 전원합의체로 대법원이 운영되면서 대법관에 대한 대법원장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될 우려가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상고법원 설치 대신 대법관의 수를 늘리는 방안이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돼왔지만,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는 대법관의 수를 늘리는 것을 양 전 대법원장이 긍정적으로 검토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양 전 대법원장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2014년 8월29일 작성된 법원행정처 문건에는 “일반 국민들은 대법관이 높은 보수와 사회적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만큼 그 정도 업무는 과한 것이 아니며, 특히 ‘내 사건’은 대법원에서 재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들이다”라고 적혀있다. 상고법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의 원인을 국민들의 ‘이기심’으로 돌린 것. 다른 문건에는 국민들이 “'전문 지식이 부족해 논리보다 감정적 이해를 선호한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결국 이번 문건 공개를 통해 앞에서는 국민을 위하는 척 하면서 뒤로는 국민을 어리석고 이기적인 존재로 폄훼한 양 전 대법원장의 이중적인 태도가 드러나게 됐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1일 YTN 인터뷰에서 “국민 개돼지 발언 이후에 가장 충격적인 발언”이라며 “국민을 폄하하고 자신들의 직업 윤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이다. 혹시 그런 판사들의 특권주의 내지는 법관들의 조직 이기주의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스스로 성찰하는 그런 계기로 삼아야 되지 않을까”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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