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이 되는 해 처음 말러를 만났다. 그의 교향곡 1번은 나의 심장을 쥐고 흔들어 댔다. 지휘봉에서 출발한 음표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척수에 박혔다. 쉼 없이 흐르는 곡조는 나에게 물었다. 어디까지 흔들릴 수 있냐고. 그 흔들림에서 새로운 길, 너만의 길을 찾을 수 있냐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겠냐고….

한밤중에 브루노 발터가 쓴 『구스타프 말러』를 펼쳤다.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중 하나인 발터는 말러의 오랜 친구이자 제자였다. 발터의 눈으로 본 말러가 궁금해졌다. 가까이서 만난 그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자기 자신과 작품, 폭풍이 휘몰아치는 자신의 내면적 삶에 지나칠 정도로 열중해 있었습니다. 타인이나 다른 사물들은 그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지요. (중략) 비유하자면 그의 삶은 고요하게 흐르는 강물이라기보다는 시끄럽게 부글거리며 흐르는 나일 강 중류와 아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의 성품을 묘사하려는 시도에는 ‘변덕스러운’이라는 단어가 다른 어떤 형용사보다 자주 등장합니다.”

말러의 초기 교향곡들이 초연될 때마다 청중들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기존의 질서를 파괴한 데 대한 분노였다. 다음날이면 비평가들의 조롱이 쏟아졌다. 신문에는 그를 비웃는 만평이 실리곤 했다. 작곡가 말러의 세계를 이해하는 동시대인은 극히 드물었다. 반면 지휘자 말러는 최고의 명성을 누렸는데, 그럼에도 연주자들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만의 편곡, 레퍼토리 선정, 완벽주의로 단원들과 갈등을 빚은 끝에 1901년 빈 필하모닉에서 쫓겨난다. 말러의 해임을 계기로 빈 필하모닉은 영원히 상임 지휘자를 두지 않기로 결정한다. 얼마나 넌더리가 났으면!

말러의 인생을 곱씹을 때면 ‘독보(獨步)’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홀로 독. 걸음 보. 홀로 걷는 이는 언제나 불안하다. 그러나 그는 그 불안을 불안해하지 않았다.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고 정면을 응시할 뿐. 그에게 어제란 없고, 내일도 없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한 걸음 한 걸음을 꿋꿋이 걸었다. 자신만의 물음을 가지고 자신만의 답을 찾으려 몸부림쳤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독보적인 경지에 이르렀다.

1907년, 말러는 심장병 진단을 받는다. 장녀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말러는 그 어느 때보다 죽음을 깊이 인식했다. 사실 우리 삶 속에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죽어가는 과정만 실재할 뿐. 모든 인간은 매일 조금씩 죽어간다. 금방 죽는 인생에 타협이란 존재할 수 없다. 말러는 생과 사의 경계로 끊임없이 자신을 밀어붙였다.

그 예민함과 절박함에서 교향곡 9번이 탄생했다. 1악장에서 그는 낯설고도 장엄한 풍경으로 서서히 발걸음을 내딛는다. 비틀어진 왈츠풍의 2악장을 지나 등장하는 3악장은 말러의 자화상처럼 느껴진다. 그는 세상이 바라보는 자신을 묘사하며 자신을 비웃는 세상을 비웃는다. 고요한 멜로디로 내면을 노래하는 것 같다가도 다시금 토네이도처럼 휘몰아친다. 변덕과 왜곡을 일삼으며 시종일관 자기파괴를 감행한다. 고통을 자초한다. 그러나 4악장에 이르러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그는 어느새 초월을 노래한다. 그는 세상을 초월하고, 자신을 초월한다. 이 숭고함의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는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걸음을 디딜 수 없을 무렵. 숨이 다하는 순간에야 그는 자신이 써 내려온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말러는 자신의 교향곡 9번이 연주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말러의 죽음으로부터 한 달이 지난 1912년 6월 발터가 이 곡을 처음 무대에 올린다.

생의 끄트머리에 발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러는 말한다.

“이상하지. 내가 음악을 들을 때, 아니 나 자신이 지휘하고 있을 때에도 나는 모든 물음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들으며, 완전히 명료해지고 확신을 가지게 되네. 아니, 실제로는 그런 것들이 애당초 물음이 아니었음을 똑똑하게 느끼는 것 같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말러의 전설적인 지휘를 볼 수 없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발터가 1961년 콜롬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9번에 귀를 기울인다. 말러가 묻는다.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왜 죽어야 하는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필자 약력>

1998년 끝자락에 태어났다.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대신 홈스쿨링으로 공부했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철학에 관심이 많다. <소년여행자>,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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