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로서의 길을 단념한 체르니는 이내 전업 작곡가의 삶까지도 단념하였는데, 이는 그것들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단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일찌기부터 가난을 체험한 체르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15세부터 피아노 교습에 나서야 했고, 덕분에 그는 결국 '작곡과 연구를 병행하는 피아노 교육자'로 평생의 음악적 방향을 정하게 됩니다. 결과론적으로 이는 그의 음악적 업적을 더 높고 뚜렷하게 만들어주었는데, 그의 이름이 클래식 피아노의 가장 위대한 교육자 중 한 명으로 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난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체르니는 자신처럼 가난했던 제자 리스트의 레슨비를 거의 받지 않으며 그를 가르쳤고, 심지어 생활비까지 지원해주었다고 합니다. 훗날 리스트는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초절 기교 연습곡' 등 자신의 특별한 몇 작품을 체르니에 헌정하고, 음악적인 성공을 거둔 후에도 스승에 대한 예우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뛰어난 작곡가였던 리스트는 곧 체르니의 가장 중요한 음악적 유산이 되어 새 역사와 계보를 이어가게 됩니다.

20세기 초 한 피아노 전문지는 그를 '피아노 기법의 조상'이라 소개하며 피아니스트들의 계보를 게재했는데, 그를 중심에 두고 그의 제자들과 또 그 제자들이 길러낸 37명의 피아니스트들을 정리한 계보였습니다. 체르니 본인은 베토벤의 수제자이자 리스트를 길러낸 스승이었고,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들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과 클라우디오 아라우, 조르주 치프라, 그리고 소련의 대표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는 그의 제자의 제자의 제자, 즉 3대 제자였습니다. 하프시코드의 부흥을 선도한 완다 란도프스카 역시 3대 제자에 속하며,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인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은 그의 4대 제자가 됩니다.

체르니 최고의 유산이라 할 수 있을 피아노 연습곡집의 대부분은 그의 제자들, 특히 프란츠 리스트의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때문에 극한의 난도를 보이며, 만일 원본에 명시한 빠르기와 악상기호를 모두 지켜 연주한다면 사실상 전문 피아니스트들조차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는 난곡들입니다. 체르니의 교본들은 19세기 일본에서 클래식 중흥기에 널리 보급되었고, 이후 일본 문물의 일환으로 우리나라에 건너와 '피아노 음악의 정석'인 양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지나친 획일적 교재 사용이 병폐로 지적되기 시작했고, 21세기에 이르러서야 상황과 성향에 맞는 다양한 교재 사용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체르니의 교본이 피아노의 기교를 연마하는 데 탁월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현대 피아노의 기법은 체르니 시대에 비해 크게 확장되었고, 더 쉽고 효율적인 교재들이 연구, 개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체르니의 교본들은 같은 19세기 교육자들인 바이엘, 하농, 브루크뮐러의 교본과 함께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고, 앞으로도 그 가치는 상당 시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체르니는 사실 작곡가로서도 엄청난 다작을 해낸 천재 작곡가였습니다. 소나타를 위시한 피아노 소품들과 교향곡, 피아노 협주곡과 서곡, 실내악곡과 오르간 음악, 수많은 교회 음악에까지 그 폭도 방대하고, 음악성 또한 지나치게 과소평가 된 측면이 있습니다. 작품 번호가 861에 달하며 출판되지 않은 작품도 상당하지만, 그 모든 작품 중 연습곡집 및 바흐의 평균율 연구집 외에는 모두 묻혀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마지막 체르니 3부에서는 묻힌 진주 같은 그의 작품들에 대해 다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피아니스트 김별

- 개인 소극장콘서트 <마음 연주회> 205회 (2018.03.17)

- 건국대병원 <정오의 음악회> 고정 연주 (201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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