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80년, 여름이 저물어가던 9월의 어느 날. 에게 해 남단의 어느 조그만 섬 앞바다에서 인류 역사를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극적인 결과. 아테네를 필두로 한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크세르크세스의 페르시아 대군에 맞서 승리한 전투. 바로 살라미스 해전 이야기다.

십 년 전으로 시계추를 되돌려보자. 기원전 490년, 크세르크세스의 아버지 다리우스 대왕이 2만여 명의 대군을 이끌고 아테네를 침공했다. 다급한 아테네인들은 이웃국가 스파르타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뜨뜻미지근한 반응 뿐. 결국 2배에 이르는 수적 열세를 안고 전투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패배가 눈앞에 닥친 듯했지만, 아테네는 새로운 전략(Phalanx)과 드높은 결기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다. 이것이 그 유명한 마라톤 전투다.

마라톤 전투에서 빼어난 활약을 벌인 장군들 가운데 테미스토클레스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페르시아 군이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을 예견하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보병만을 고집하는 아테네인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해 ‘삼단노선’이라는 배 100척을 건조한다. 아니나 다를까 몇 년 뒤 왕위를 물려받은 크세르크세스가 1,300여척에 이르는 함선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했다. (이에 맞서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함선은 모두 합쳐봐야 300척에 불과했다.)

첫 번째 전투는 아르테미시움이라는 도시에서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은 작전실패와 천재지변으로 600여 척의 함선을 잃는다. 그러나 같은 시간 페르시아 육군이 테르모필라이에서 승전보를 전해온다.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300명의 정예부대를 필두로 한 8,000명의 보병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좁은 협곡을 뚫어낸 것이다. 페르시아 군은 진격에 진격을 거듭하고, 그리스 연합군은 후퇴를 거듭하여 아테네마저 버리고 살라미스라는 조그만 섬에 이른다.

살라미스 섬에 모인 31개의 그리스 연합국 지휘관들 사이에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다수는 살라미스 섬을 버리고 코린트 해협에서 전투를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함대가 살라미스를 떠나게 되면 각기 이익을 따라 본국으로 흩어지고, 전선이 흐지부지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어떻게 해서든 살라미스 해협에서 결판을 봐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어길 시에는 아테네인들과 함께 이탈리아로 철수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수없는 회의 끝에 연합군은 살라미스 섬에 잔류하기로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페르시아 군을 살라미스 해협으로 끌어들이는 것. 테미스토클레스는 야밤에 자신의 시종 시킨토스를 페르시아 군 진지로 파견한다. 시킨토스는 크세르크세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거짓 정보를 전한다. 바로 그리스 군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곧 살라미스 섬을 떠나 뿔뿔이 도주할 것이라고. 지금 당장 그리스 군을 공격한다면 테미스토클레스가 페르시아 군에 합류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다음날 새벽, 페르시아 군은 살라미스 해협으로 진격한다. 기습을 받은 적군이 혼비백산하여 도망할 것을 기대하며. 그러나 결과는 대실패였다. 테미스토클레스에게 속아도 제대로 속은 것이다. 그리스 연합군은 전열을 갖추고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페르시아 군은 당황했지만 이내 최선을 다해 전투에 임했다. 그러나 총사령관 아리아비그네스가 사망하자 전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페니키아, 이집트, 카리아, 라키아 등등 다민족으로 구성된 페르시아 군은 분열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탓을 돌리며 제각기 살길을 찾아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길목을 지키고 있던 그리스 군에게 또 한 번 일격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페르시아 군의 사상자는 무려 2만여 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페르시아인들』에 등장하는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단언컨대 하루 동안 그렇게 많은 병사가 죽은 예는 없었습니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크세르크세스는 이후 다시는 함대를 재건하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만약 그리스 연합군이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을까? 민주주의도, 서양 문명도 존재할 수 없었을까? 저자는 그런 섣부른 단정은 경솔하다고 말한다. 테미스토클레스와 그리스인들이 남이탈리아로 도주해 힘을 키운 다음 다시 그리스로 돌아왔을 것이라고. 아니면 남이탈리아에 그대로 머물며 새로운 문명을 건설했을 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테미스토클레스 개인에게는 차라리 그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살라미스 해전이라는 거대한 드라마의 주연배우였지만 아테네에서 쫓겨나 크세르크세스의 아들인 아르타크세르크세에게 몸을 의탁하는 망명객 신세로 생을 마무리하고 만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살려냈지만, 민주주의는 그처럼 독보적인 영웅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후 페리클레스라는 인물이 등장해 민주제를 꽃피웠지만, 그 제국주의적 속성으로 인해 헤로도토스와 소포클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비판자들이 생겨났다. 이후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오점에 대해 수백 년간 토론이 지속되는 가운데 사상이 진보하고 걸출한 철학자들이 등장했다.

위대한 개인이 국가를 만드는가, 아니면 위대한 국가가 위대한 개인을 만드는가. 마치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처럼 분리될 수 없는 질문이다. 결국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고, 또 위대한 국가가 위대한 개인을 탄생시키는 것이 아닐까. 테미스토클레스와 살라미스 해전을 되짚으며 생각해본다.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위대한 개인이 존재하는가. 위대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필자 소개>

1998년 끝자락에 태어났다.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대신 홈스쿨링으로 공부했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철학에 관심이 많다. <소년여행자>,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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