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디언지 홈페이지 갈무리>

[이코리아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정상들에게 일침을 날렸다. NATO 회원국들이 미국의 안보능력에 무임승차 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러시아 의존도를 높여가고 있다는 것. 기존 관행에서 벗어난 트럼프식 외교를 비난해온 외신들도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는 일리가 있다며 공감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나토본부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의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4%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4년 나토 정상회의에서는 2024년까지 회원국들의 국방비를 GDP 2% 수준으로 증액할 것을 계획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요구는 그 두배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저녁 트위터를 통해 “29개 회원국 중 5개국만 (국방예산 2%) 약속을 지키고 있다”며 “미국은 유럽을 보호하기 위해 돈을 내고 있지만 무역에서 수십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토 회원국들이 안보부담을 미국에 떠넘기고 있다는 뜻이다.

외신들을 일부러 적을 만드는 듯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직설화법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여 왔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도 많은 유럽 정상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의외로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는 논조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의 러시아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을 지적했기 때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독일이 가스와 에너지를 위해 러시아에 수십억 달러를 지불한다면 나토에 좋은 점이 뭐겠냐”며 나토에서 영향력이 강한 독일을 직접적으로 비난했다.

현재 러시아 국영기업 가즈프롬(Gazprom)은 발틱해를 통과해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드스트림2’를 건설 중이다. 기존 '노드스트림1'으로는 향후 증대될 유럽의 천연가스 소비량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계산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로, 노드스트림2는 기존 가스관과 비슷한 연간 550억 큐빅미터의 천연가스를 유럽에 공급하게 될 예정이다. 

실제로 유럽의 천연가스 소비량은 증가추세다. 옥스퍼드 에너지연구소는 현재 연간 5000억 큐빅미터인 유럽의 천연가스 소비량은 2030년까지 약 5500억 큐빅미터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영국,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북·서유럽의 주요 천연가스 생산국들의 매장량은 향후 수십 년 안에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의 자체 천연가스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향후 안정적인 공급처 물색이 급해진 상황.

트럼프 대통령의 직접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도 독·러 가스관 건설은 필요하다. ‘원전 제로’를 외쳐온 메르켈 총리는 2020년까지 독일의 핵에너지 의존도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 수입은 이러한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라는 것.

하지만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유럽 국가들도 다수 있다. 영국매체 가디언의 11일 보도에 따르면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환경적 이유에서 노드스트림2 건설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덴마크 의회의 경우, 국가안보와 환경문제를 이유로 덴마크 정부에 가스관 건설에 대한 거부권을 부여했다. 북유럽 국가들 처럼 강경한 수준은 아니지만 영국 또한 독·러 가스관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유럽위원회 또한 노드스트림2 건설이 가스공급처를 단일화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노드스트림2의 가장 반대하는 국가는 우크라이나다. 가스프롬이 운영 중인 가스관 중 일부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진다. 우크라이나는 노드스트림2가 신설될 경우 우크라이나를 거쳐가는 가스관 일부의 작동이 폐쇄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미래의 수요를 위해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기존 천연가스 공급망도 유지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쉽게 믿지 못하는 눈치다. 우크라이나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은 “경제적 관점에서 이 프로젝트(노드스트림2 건설)는 의미가 없다. 순전히 정치적인 프로젝트다”라고 비난했다.

노드스트림2가 정말 시급한 프로젝트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독일의 연간 천연가스 소비량은 약 800억 큐빅미터. 노드스트림1·2의 총 연간 공급량은 약 1100억 큐빅미터로 독일의 소비량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유럽의 에너지전문가들은 효율성 측면에서 신규 가스관 건설이 결국 공급과잉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외신들은 노드스트림2가 안보·경제적 이유로 유럽 내에서도 논란이 되면서 독일이 비난받고 있는 상황을 트럼프 대통령이 잘 노렸다고 평가했다. 가장 큰 잠재적 안보위협인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면서 미국의 국방비 지출 증가요구에 반박하기는 어렵다는 것. 워싱턴포스트(WP)는 “독일 관료들은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낮은 국방비 지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에 대비해왔다”며 “하지만 수요일 아침 트럼프 대통령은 발틱해에 묻혀있는 800마일짜리 가스관이라는 전혀 다른 이유로 독일을 비판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대선 과정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둘러싸인 트럼프 대통령 개인으로서도 노드스트림2에 대한 공격은 의미가 있다. 가디언은 “가스관은 유럽에서 러시아에 대한 관점을 판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발언으로 반푸틴 입장에 서면서 기존 의혹에 거리를 뒀다고 설명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노림수라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에 대한 미국의 액화천연가스 수출량을 늘리기 위해 노드스트림2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같은 해석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 정상회의 발언은 의외의 공감을 얻고 있는 분위기다. 가디언은 "(노드스트림2 건설이) 유럽을 러시아에 의존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점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정치가들과 싱크탱크 및 에너지 전문가들에게 광범위한 공감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직설화법으로 다시 혼란에 빠진 나토 정상회의가 어떤 결론을 낼 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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