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유배길

1457년 6월 22일, 단종은 살곶이다리를 건너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머나먼 유배길에 오른다. 남한강 물길을 거슬러 배가 닿은 곳은 이포나루. 여주의 어수정에서 잠시 목을 축인 단종은 여기서부터 뭍길로 영월 땅을 향한다. 원주 싸리치를 거쳐 영월 청령포에 이르는 길은 고개마다 단종의 피눈물이 스민다. 노산군으로 강등당한 단종이 올랐다 하여 군등치(君登峙), 슬픔으로 서산에 지는 해를 향해 절을 한 배일치(拜日峙)며, 마침내 참았던 눈물처럼 소나기가 흩뿌리는 소나기재를 넘는다.

소나기재 마루에서 바위가 갈라진 선돌 사이로 바라보는 서강 물은 참으로 무심하다. 그 물은 청령포의 발치를 적신 후 이내 동강 물과 만나 남한강이 되어 흐른다. 남한강 물은 다시 북한강 물과 만나 한강이 되어 한양으로 흐르거늘. 하지만 시간은 물길처럼 되돌릴 길이 없어 끝내 유배의 포구에 다다르고야 만다.

소나기재 마루의 선돌. 그때 단종도 이곳에 올라 벼랑 밑으로 아득하게 흐르는 서강을 바라보며 시름에 젖었을까. 생육신의 한 사람인 원호는 서강 가에 관란정이란 정자를 짓고 살며 청령포에 계신 임을 그리는 시를 지어 표주박에 띄워 보냈다. ⓒ유성문

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이고 남은 한 면마저 험한 절벽으로 막힌 청령포는 오롯이 유배를 위해서 태어난 땅이다. 나어린 단종은 이곳에서 한때를 보내며 그 소명을 완성한다. 해질 무렵이면 서쪽 낭떠러지에 올라 아득한 한양 땅을 그리워했다는 것이니, 이른바 ‘노산대’다. 솔숲 사이에 우뚝한 ‘관음송(觀音松)’은 또 어떤가. 이 땅에서 가장 키가 크다는 이 소나무는 단종의 슬픈 사연을 보고 들었으니 관음송이다.

그러나 단종은 청령포에서마저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해 여름 홍수가 나자 읍내 동헌인 관풍헌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겨울을 나기로 했으나 금성대군에 의한 복위사건으로 다시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었으며, 끊임없이 자살을 강요당하다 그해 10월 24일, 마침내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야 만다. 그때 그의 나이 열일곱이었다.

1457년 6월 22일 돈화문을 출발한 단종의 유배행렬은 천리길을 걸어 꼬박 일주일 후인 6월 28일 마침내 청령포에 이르렀다. 이곳은 송림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서쪽은 육육봉이 우뚝 솟아 있으며 삼면이 깊은 강물에 둘러싸여 한눈에 보기에는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절해고도(絶海孤島)와도 같은 곳이었다. ⓒ유성문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을 떠난 뒤로/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 푸른 산속을 헤맨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 못 이루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두견 소리 끊어진 새벽 멧부리에 지새는 달빛만 희고/ 피를 뿌린 듯 봄 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애달픈 하소연 듣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수심 많은 내 귀만 홀로 밝은고

단종이 관풍헌에 머무는 동안 지었다는 ‘자규시(子規詩)’는 그토록 절절하지만, 그 마음을 받아 이름 붙여진 자규루는 공연히 소슬하다. 단종은 관풍헌에서 죽임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졌다. 뒤이어 그를 모시던 시녀들이 강물로 뛰어드니 동강 물은 잠시잠깐 낙화유수가 된다. 그때의 일을 <연려실기술>은 이렇게 전한다.

옥체가 둥둥 떠서 빙빙 돌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오곤 하는데, 옥 같은 열 손가락이 수면 위에 떠 있었다.

370년 묵었다는 느릅나무 아래서 바라본 장릉. 구릉 위의 능은 정자각과는 방향을 달리하여 한양 쪽을 바라보고 있고, 정자각에 이르는 참도는 특이하게도 ‘ㄱ’자로 꺾여 있다. 묘를 둘러싼 소나무들은 묘를 향해 절을 하듯 묘하게 틀어져 있어 애틋하기만 하다. ⓒ유성문

세조의 명을 받아 단종에게 먹일 사약을 가지고 왔던 금부도사 왕방연은 어명을 받들어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물가에 앉아 긴 울음을 운다.

천만 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그렇게 왕이되 왕이 아닌 단종은 죽음의 길을 갔고, 왕이 아니되 왕인 방연은 삶의 길로 돌아왔다. 후환을 두려워한 탓에 거두는 이 없이 떠돌던 단종의 주검은 한밤중 영월 호장 엄홍도에 의해 몰래 옮겨져 산기슭에 묻혔다. 그 무덤이 바로 장릉이다. 그리고 또 한밤중에 망주석을 빠져나온 단종의 혼은 동강 어라연으로 가 신선이 되려다, 그곳 물고기들의 만류로 태백산으로 가 산신령이 되었다. 아니, 되었다고 전한다. 그 전설은 이제껏 이곳 사람들의 가슴에 어떤 염원으로 남아 있다. 아무래도 사람은 산 자보다 죽은 자의 영을 더 믿는 모양이다.

청령포가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한 왕방연 시조비. ‘고운 님’ 여의고 울음과 시만을 남기고간 이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유성문

 

<필자 약력>

-여행작가

-편집회사 투레 대표

-한국기록문화연구협동조합 이사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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