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선. <사진 = 영화 애마부인3 스틸컷>

지난 지자체 선거전을 장식한 가장 큰 이슈는 드루킹, 김부선, 이부망천이었다. 이 암구호 같은 이슈가 지방선거전에서 핫이슈로 부상했고, 각 후보의 공약이나 인물 됨됨이나 공약보다 더 큰 관심을 끌었다.

여배우 김부선에 대한 세속적인 관심은 어쩌면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 <애마부인>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녀가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자와 잠자리를 했는지 안했는지가 이번 선거에서 뭐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을까? 그 이면에는 김부선이 에로영화 배우 출신이라는 세속적이고 원초적인 세인들의 관심과 가장 뜨거웠던 후보 중의 한 사람이었던 이재명 당선자의 스캔들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영화 <애마부인>은 80년대를 거친 이 땅의 사람들이라면 지겹도록 들은 영화 제목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애마부인> 시리즈는 전두환 정권의 3S(Sports, Screen, Sex)정책의 수혜자였다. 전두환 정권은 피로 물들였던 정권 찬탈과정을 지우기 위해 암암리에 3S정책을 펼쳤다. 프로야구 창단, 칼라TV 도입, 통행금지 해제, 교복 자율화, 선정적 영화에 대한 심의완화 등 일련의 조치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애마부인>은 원래 ‘애마(愛馬)’로 작명했지만 심의 과정에서 ‘애마(愛麻)’로 둔갑했다. ‘말을 사랑하는 부인’이 ‘대마초를 사랑하는 부인’이 된 것이다. 70년대 호스티스 영화와 달리 <애마부인>은 여성의 성욕을 정면에서 다뤘다. 호스티스 영화의 주인공들은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호스티스가 되어 수동적으로 남성들에 봉사하는 캐릭터였지만 애마부인에 이르러서는 본능에 충실한 여성이 적극적으로 성적 탐험에 나선다. <애마부인>의 흥행에는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 영화인 <엠마뉴엘 부인> 시리즈의 성공이 영향을 미쳤다.

<애마부인>은 1982년을 시작으로 총 13편의 시리즈가 감독과 제작사, 여주인공을 달리하면서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우리가 기억할만한 시리즈는 1편부터 5편 정도였다. 나머지 시리즈들은 존재감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많던 애마부인의 여주인공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사실 모두들 은막의 스타를 꿈꾸면서 충무로의 문을 두드린 여배우들은 대부분 <애마부인>의 이미지에 갇혀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여배우가 에로영화에도 출연할 수 있고, 로맨틱영화나 액션영화에도 출연할 수 있지만 <애마부인>으로 시작한 신인들은 운명처럼 에로배우라는 낙인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1982년 안소영을 주인공으로한 첫 편의 인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서울극장에서 개봉했을 때 극장 출입문 유리가 깨질 정도로 관객이 몰려들었다. 정인엽 감독이 만든 이 영화로 안소영은 그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몰려드는 세간의 관심은 오로지 섹시한 이미지에 대한 것이었다. 캐스팅 제안이 오는 영화들도 모두 노출이 심한 에로물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안소영은 그렇게 대중들로부터 잊혀져 갔다. 그러나 그 이름과 이미지만큼은 대중들에게 깊게 각인됐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안소영은 그당시 신인배우로서 사력을 다했지만 일상생활이나 영화계에서 애마부인의 이미지를 벗어날 수가 없어서 영화계를 떠났다고 말했다. 지금은 경기도 분당에서 아들과 함께 생활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애마부인 2>에서 2대 애마로 출연한 여배우는 오수비였다. 미스코리아 대회서 미스서울로 선발될 정도로 빼어난 외모를 가진 그녀가 큰 연기경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대 애마로 캐스팅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80년대를 휩쓴 에로영화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안소영과 오수비가 나란히 출연한 <여자, 여자>라는 영화도 나왔다. 오수비 역시 에로배우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일본으로 건너가서 MBA 과정을 다니는 등 새로운 삶을 모색했다. 최근 들어서 간간이 TV에 얼굴을 비추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애마부인 3>의 여주인공은 염해리였다. 제주도 출신의 패션모델이었던 염해리는 훤칠한 체격과 선 굵은 외모로 <애마부인 3>의 여주인공을 맡았다. 역대 <애마부인> 시리즈에 출연했던 여배우들과는 달리 영화와 방송에 끊이지 않고 얼굴을 보이면서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권상우 주연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면서 젊은층들에까지 이름을 알렸다. 염해리는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자 지금의 이름인 김부선으로 개명했다. 공교롭게도 <애마부인> 시리즈 배우들은 출연 순서대로 한 살 차이씩 난다. 안소영이 59년생, 오수비가 60년생, 김부선이 61년생이었다.

<애마부인>은 그 이후로도 주욱 계속된다. 주리혜, 소비아, 강승미, 루미나, 진주희, 오노아, 이다연 등이 모두 애마부인 시리즈의 주인공 역을 맡았던 배우들이었다. 그리고 그 즈음에 쏟아진 에로영화에서 이름을 날린 여배우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변강쇠> 시리즈로 유명한 하유미를 비롯해서 ‘산딸기’ 시리즈의 선우일란도 대표적인 배우였다. 그 뒤로도 비디오시대에 활동한 <젖소부인 바람났네>의 진도희 또한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사실 위에 열거한 배우들이 에로영화 범람시대를 피해서 데뷔했다면 지금쯤 굵직한 중견여배우로 이름을 날릴 수도 있었으리라. 어쩌면 급속한 산업화 과정과 민주화 과정에서 그녀들도 본능에 충실한 인간들의 과소비에 희생된 많은 이들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어두운 극장의 한 구석에서 침을 삼키면서 에로영화를 섭렵했던 한 사람으로서 배우로 족적을 남기고 싶어했던 그녀들에게 뒤늦게나마 박수를 보낸다.

 

<필자 소개>

오건은 대중문화 주변부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다. 신명 나게 사는 딴따라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만든 콘텐츠들을 좋아하고 지지한다.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그날까지 글을 통해 비판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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