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청원글이 18만명의 동의를 얻었음에도 삭제돼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난민수용에 반대하는 또 다른 청원글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시된 모습.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이코리아] 제주도에 체류 중인 예멘인들의 난민 인정을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삭제돼 논란이 되고 있다. 난민수용에 반대하는 누리꾼들은 구체적인 삭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청와대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청원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제주도 난민수용 거부해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와 18만명이 넘는 참여를 끌어냈다. 참여인원이 늘어나는 속도를 고려할 때 청와대 답변 요건인 20만명을 채우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이 청원은 올라온 지 나흘만인 지난 16일 갑자기 삭제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은 일단 게시하고 나면 본인이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해당 청원이 삭제되자 난민수용에 반대하는 누리꾼들이 일제히 청와대를 비난하고 나섰다. 누리꾼들은 국민청원 게시판을 비롯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18만명이나 서명한 청원을 무단으로 삭제한 것은 말이 안된다”, “내용에 법적 문제가 없다면 어떤 청원이든 삭제하지 말고 국민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삭제할 내용이었으면 청와대가 나서서 이유를 밝히는 것이 맞지 않나” 등의 의견을 남기고 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청와대의 해명을 요구하는 청원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한 청원인은 “난민이 계속 들어온다면 유럽의 자폭테러가 우리 눈앞에서 벌어질 수 있다”며 “제주도 난민글 삭제 해명을 부탁드린다”는 제목의 청원을 올렸다. 또 다른 청원인은 “문재인 정부는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을 것인가”라며 “18만명 청원글을 삭제한 관리자를 문책하고 사임시키라”고 주장했다.

반면 일부 누리꾼들은 해당 청원의 표현이 지나쳐 청와대도 삭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실제로 해당 청원에는 특정 인종과 종교, 국가에 대한 과도한 혐오 발언이 포함돼 있어, 난민수용에 반대하는 누리꾼 중에서도 “표현이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해당 청원에는 “이슬람 사람들은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애낳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성범죄는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사건사고 뉴스를 접하다보면 종종 일어나는 범죄들 중에 중국인들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도 많고, 지금 중국인들이 들어와서 설치는 꼴 좀 보세요” 등 이슬람교,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문구가 들어있다.

한 누리꾼은 “이슬람교에 대한 혐오 발언이 고스란히 나와 있는 청원에 청와대가 답변하면 무슬림 국가들과의 외교 문제로 번질 수 있다”며 “20만이 넘기 전에 청원글을 삭제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규정에 따르면 욕설·비속어, 폭력·선정적 내용,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 동일 이용자에 의한 동일 내용 중복 청원, 허위 사실 및 명예훼손 등의 내용이 담긴 청원은 게시판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청원 삭제 건에 대해 “규정 상 일부 표현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난민 이슈라는 점과는 무관한 판다”이라며 “조기에 문제를 발견했어야 하는데 (대응이 늦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과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청원이 삭제당한 경우는 종종 발생했다. 지난 2월에는 “딴지일보 김어준씨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청원이 올라와 약 2800명의 동의를 얻었으나, 작성자가 곧 “장난으로 썼다”며 사과의 글을 게시판에 올려 사흘 만에 삭제당하기도 했다.

지난 5월 제기된 성추행 무고죄 특별법 제정 청원의 경우, 삭제는 되지 않았으나 제목이 수정됐다. 누드촬영 사진 유포 피해를 호소한 유튜버의 이름을 인용해 “무고죄 특별법(양예원법)의 제정을 촉구한다”는 제목을 사용했기 때문. 현재 23만명의 동의를 얻은 이 청원 제목에는 해당 인물의 이름이 삭제돼있다. 해당 사건에 대한 법원의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인물이 무고죄를 저지른 것처럼 단정하는 제목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한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삭제된 청원을 제외하고도 제주 예멘 난민문제와 관련된 청원이 다수 올라와 있다. 이중 지난 13일 올라온 “제주도 불법 난민 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허가 폐지/개헌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은 18일 현재 21만8566명의 동의를 얻어 청와대 답변 요건을 충족했다. 이 청원인은 “현재는 불법체류자와 다른 문화마찰로 인한 사회문제도 여전히 존재한다”며 “구태여 난민신청을 받아서 그들의 생계를 지원해주는것이 자국민의 안전과 제주도의 경제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지 심히 우려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해당 청원이 이미 20만명을 넘겨 청와대도 난민문제에 대한 답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무슬림계 난민에 대한 반발 여론과 인도적 난민수용을 요구하는 목소리 사이에서 청와대가 어떤 해답을 제시할 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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