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프리드 해커 스탠포드대 교수. <사진=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이코리아] 북미회담을 앞두고 양국이 막바지 조율에 들어간 가운데, 미국 내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CIA는 북한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경고한 반면, 북한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 스탠포드대 교수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 최근 북한의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NBC가 지난 29일(현지시간) 세 명의 정부 관료를 인용해, "CIA가 이달 초 미 행정부 내에 회람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한 정부 관료는 이 보고서를 읽은 뒤 NBC를 통해 “그들(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CIA 보고서에는 북한의 비핵화에 약 15년의 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본 스탠퍼드대 산하 국제안보협력센터(CISC) 시그프리드 헤커 교수의 의견도 인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내 대표적인 북한전문가인 헤커 교수는 지난 28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화에 미 핵전문가들이 참가할 경우 미 정보기관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비밀 핵시설이나 핵무기 저장고, 농축 핵물질 등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헤커 교수는 이어 일괄타결식 CVID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라며 핵프로그램 중단→점진적 철폐→최종 제거의 3단계 비핵화 로드맵을 제안했다.

NBC는 정부 관료를 인용해 “이 보고서가 제안하는 현실적인 당면 목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 하여금 최근의 핵무기 프로그램으로부터 물러나도록 설득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NBC 보도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NBC는 CIA 보고서의 구체적 내용을 전하기보다는, 보고서를 접한 익명의 관료들이 말을 전한데 불과하다. 따라서 CIA 보고서가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협상 중단을 조언한 것인지, 일괄타결 비핵화 모델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장기간의 단계적 비핵화 모델을 제안한 것인지 NBC보도만으로는 불분명하다.

또한 NBC는 해당 보도에서 “이 보고서는 북한과 관련된 다른 보고서들과 마찬가지로 중간, 또는 낮은 수준의 신뢰도(low or medium confidence)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자체가 워낙 베일에 가려진 국가이기 때문에 미국 내 정보기관도 명확한 자료를 가지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NBC 인터뷰에 응한 한 정부 관료는 해당 보고서에 대해 “이것(보고서)은 매우 현명한 분석가들이 제공하는 최선의 예측”이라고 설명했다.

NBC는 지난 30일(현지시간) 북한 비핵화 가능성에 대한 CIA 보고서에 대해 보도했다. <사진=NBC 홈페이지 갈무리>

한편 헤커 교수는 30일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김정은은 왜 핵실험장을 폭파했나”라는 제목의 논설을 통해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비핵화를 향해 가는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평가했다.

헤커 교수는 "트럼프 정부의 강력한 대북 압박과 방사능 오염 문제를 우려한 중국 측의 요구로 인해 북한이 핵실험장 폭파를 결정했다"라고 분석하면서, 지난 2008년 영변 냉각탑 폭파 행사와 같은 언론 쇼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헤커 박사는 이어 “북한에게 핵실험장은 냉각탑보다 훨씬 중요한 시설이며, 재건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며 “핵실험장 폐쇄로 평양은 핵실험 중단을 넘어서는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헤커 교수는 또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 이후 풍계리 핵실험장은 이미 사용가치가 사라졌다며 북한이 대단한 양보를 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헤커 교수는 6차 핵실험으로 풍계리 핵실험장의 터널 일부가 심한 손상을 입었지만, 핵실험이 가능한 동 규모의 터널 두 개가 남이있는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헤커 교수는 또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로 인해 최소한 북한의 추가 핵실험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헤커 교수는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핵실험장 폐쇄의 다음 단계는 플루토늄 생산용 원자로의 정지·폐기, 현재 건설 중인 경수로의 가동 금지, 우라늄 농축시설의 가동 중단 등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핵무기·기술·물질 등의 수출 금지 또한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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