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6일(현지시간) 정상회담을 마치고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마이니치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이코리아북미회담 취소를 발표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북미회담을 위한 고위급 실무회담이 열리고 있음을 밝히면서, 동북아 정세가 다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일본과 중국은 비핵화 논의에 다시 참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반면, 러시아는 주변국의 참견을 자제해야 한다며 관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일본, 방미 일정 잡으며 분주

교도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북미회담 재개에 대한 미국 측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6월 초 미국을 방문하는 계획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다음달 8~9일 캐나다에서 열리는 G7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계획이었으나,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면서 일정을 앞당기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일본은 한국·미국·북한이 중심이 된 비핵화 논의과정에서 소외되면서, 북미 협상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경계해왔다. 집권 자민당이 각종 스캔들로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북미회담이 '재팬 패싱'을 고조시켜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베 총리는 “회담을 위한 회담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 25일 북미회담 취소 소식에 대해서도 주변국들이 “안타깝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반면 “유감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을 존중하고 지지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북미회담 논의가 재개되면서 일본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결국 아베 총리는 2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이 실현되기를 강력하게 기대한다”며 취소 결정을 지지한다던 입장을 바꿨다. 아베 총리는 이어 “핵·미사일·납치 문제 해결에 이바지하는 북미회담이 되도록 미일이 긴밀히 연대할 것”이라며 “가능한 조기에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 중국, 중재자 역할 고심

북미회담 재개로 고심에 빠진 것은 일본 뿐만은 아니다. 그동안 북한 비핵화 협상의 당사국임을 자처하며 중재자 역할을 주장해왔던 중국도 미국과의 줄다리기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됐다. 중국은 북미 협상 과정에서 북한이 중국의 개입 없이 미국과 직접 대화를 추진하는 것을 경계해왔다. 북한의 미국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 가장 원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 이 때문에 중국은 김 위원장의 두 차례 방중에서 중재자 역할을 강조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이후 태도가 바뀌었다며 실망감을 표현한 바 있으며, 이 발언 다음날 북미회담을 취소시켰다. 중국에게는 북미 사이의 중재자로 나서면서 미국과의 무역협상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한국이 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중재자로 나서고 북한도 회담재개 의사를 밝히며 갈등이 빠르게 봉합되자 중국의 입장도 애매해졌다.

한편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7일 “남북 정상이 두번째 회담을 갖고 화해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을 환영하고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루캉 대변인은 이어 “가까운 이웃으로서 중국은 시종일관 한반도 비핵화 목표와 한반도 평화 및 안정 유지,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 계속해서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할 것”이라며 중국 역할론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 러시아, 회담 어찌 되든 이득

한편 러시아는 북미회담의 진행상황을 차분하게 관망하는 모양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서로의 이해를 확인했다”며 “관계국들은 새로운 대립이 발생하지 않고 상황이 정치·외교의 장에 머무르도록 자제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북미회담 취소가 결정된 이후 북한의 체제보장이 우선이라며 회담 재개를 촉구한 바 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5일 언론사 편집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비핵화 협상에 앞서 주권과 불가침에 대한 보장이 있어야 한다”며 “(북미) 회담 없이는 복잡하게 얽힌 한반도 비핵화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CNN은 27일 “(북미회담이) 어찌 되든 러시아의 승리다”라며 러시아가 북미회담 성사 여부에 침착한 이유를 설명했다. CNN은 “만약 (북한) 비핵화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신뢰도 하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며, 러시아가 북미회담실패 시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하락이라는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CNN은 북미회담이 성공해 평화분위기가 정착돼도, 미군의 추가파병이나 북한 정권교체 등의 위험이 줄어드는 만큼 러시아로서는 이득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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