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한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당시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재판을 흥정한 정황이 담긴 문건을 공개했다. 

당시 법원 행정처는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 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 추진 전략'이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BH는 청와대를 뜻한다. 문건에는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에서 청와대와 사전 교감을 통해,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 수행" 이라고 적혀 있다. 이는 특정 사건 재판 때 창와대와 사전에 조율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돼 논란이 일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정권 코드에 맞춰 사법권을 남용한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났다. 일례로 ▲과거사 정립 ▲자유민주주의 수호 등의 항목이 그것으로, 과거사 사건에 국가 배상을 제한한 것. 실제로 박정희정권 당시 긴급조치 사건 소송에 “고도의 정치행위이므로 국가가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행정처는 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에 단호히 대처했다”며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선동 사건, 전교조 교사 빨치산 추모제 참석 사건 유죄 판결을 거론했다. 이밖에 KTX 여승무원들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통상임금 사건과 관련해 “단순히 법리적 검토뿐만 아니라 국가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고려했다”라는 의견도 강조했다. 또 원세훈 전 국장원장 사건에 담당 재판부의 의중을 파악해 청와대에 전달한 정황도 발견됐다.

특별조사단은 해당 문건들이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직접 작성하고 지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문건을 살펴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재임시 사법권을 남용하고 사법부 독립을 훼손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 퇴임사에서 "정치적 세력 등의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을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루어 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사법부 내에서는 “스스로 사법부 독립을 무너뜨리고 청와대의 하청 기구로 전락시킨 장본인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특조단의 조사를 두 번씩이나 거부하고 출국했다. 특조단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형사 고발보다 내부 징계가 적정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사법부 내에서 나왔다.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인 차성안 판사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특조단도, 대법원장도 형사고발 의견을 못 내신다면 내가 고발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고발을 해도 검찰이 실제로 수사에 착수할지는 미지수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에 대한 시민단체의 고발장을 수차례 접수했지만 “사법부 자체 조사 결과를 먼저 지켜보겠다”며 관망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에 따라 사법 개혁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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