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욕포스트 홈페이지 갈무리>

[이코리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북미회담의 취소를 알리는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11월 중간선거와 재선을 앞두고 북미회담에 높은 기대를 걸고 있던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런 취소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에 많은 관심이 모이고 있다. 

◇ 백악관, 강경 일변도 북한 대응에 실망

이번 회담 취소의 표면적 이유는 최근 북한의 강경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공개한 서한에서 김 위원장에게 “당신이 최근 발언에서 보인 엄청난 분노와 적대감을 고려할 때, 현 시점에서 오랫동안 계획된 회담을 갖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한미 정상회담에 앞선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도 “김 위원장이 시 주석을 만난 뒤 태도가 변한 것 같다”며 실망감을 보인 바 있다.

북미회담에 대한 북한의 무성의한 태도도 취소 원인으로 지목됐다. CBS 보도에 따르면, 한 백악관 관계자는 이날 컨퍼런스콜로 진행한 비공개 브리핑에서 북미 정상회담 취소 이유에 대해 “약속 파기들이 이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9일 방북했을 때, 양측은 지난주에 싱가포르에서 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회담을 하기로 했었다”며 “그러나 북한은 아무 말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북한은 우리를 바람 맞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북한에 수많은 연락을 시도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며 “이 같은 대화 중단은 심각한 신뢰 부족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 북한 ‘벼랑끝전술’ 펴다 판 깨져

올해 들어 유화적 제스처를 보이며 대화 테이블로 나온 북한은 5월 들어 갑자기 태도를바꿔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북미회담 일정이 결정되기 전인 지난 6일에는 외무성 대변인 명의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으로 조선반도 정세가 평화와 화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때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자극하는 행위는 모처럼 마련된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정세를 원점으로 되돌려 세우려는 위험한 시도”라며 미국을 비난했다. 미국이 대북제재를 유지한 채 ‘완전한 비핵화’(CVID)를 주장하는 것에 대한 불만 표시였다.

지난 16일에는 당일 예정된 남북고위급회담을 새벽에 돌연 취소하고,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의 담화문을 통해 리비아식 모델을 주장한 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을 공개 비난하기도 했다. 당시 김 제1부상은 “핵개발의 초기단계에 있던 리비아를 핵보유국인 우리 국가와 대비하는 것 자체가 아둔하기 짝이 없다”며 볼턴 보좌관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결정타가 된 것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지난 24일 발언이다. 최 부상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국이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 여하에 달려 있다”며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수뇌회담을 재고려할지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 말했다. 최 부상은 특히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21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해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 “무지몽매”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 같은 북한의 발언은 이전에도 외교무대에서 자주 활용했던 ‘벼랑끝전술’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최악의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 비난을 피하고, 볼턴 보좌관, 펜스 부통령 등 주변인물들을 언급하며 아슬아슬한 선에서 줄타기 외교를 펼쳤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술도 만만찮았다. 북한이 풍계리 핵시설을 폐기하는 행사 당일 전격적으로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한 것.

◇ 회담 취소 배후는 존 볼턴?

한편 미국 내에서는 이번 회담 결렬의 배후로 존 볼턴 보좌관을 지목하는 시각도 있다. 23일 저녁 펜스 부통령,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켈리 비서실장, 볼턴 보좌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백악관에서 북미회담 취소에 관한 회의가 열렸으며, 이 자리에서 볼턴 보좌관이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는 것. NBC뉴스는 24일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회담 취소 결정을 이끈 사람은 볼턴”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움직이도록 볼턴이 설득했다”고 보도했다. NBC는 이어 “코리 가드너 상원의원(공화당, 콜로라도주)은 이날 백악관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온 뒤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에게 해당 서한을 받아 적도록 직접 지시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NBC는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 간에 심각한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몇몇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은 평양을 두 차례나 방문하며 북미회담의 실무를 담당해온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볼턴이 일을 모두 그르쳤다며 심하게 비난했다고 NBC를 통해 증언했다. 한 고위 관료도 북미회담이 처음 제안된 이후 볼턴 보좌관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사이에 상당한 불화가 있었다며 “마치 고양이떼 같았다”고 말했다.

볼턴 보좌관은 이전부터 리비아식 일괄타결 비핵화 모델을 주장하며 북한과 대립해온 트럼프 정부 내의 대표적 강경파다. 백악관은 리비아식 모델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볼턴 보좌관과 선을 긋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볼턴 보좌관이 내부 설득에 성공하면서 회담 취소가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NBC는 북한이 먼저 북미회담을 취소할 경우 입게 될 정치적 타격을 고려해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결단을 내렸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자신에게 일격을 가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해 먼저 (회담을) 취소하는 사람이 되길 원한 것”이라며, 이번 결정을 “고위험, 고수익”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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