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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모시에 숨은 통기성의 비밀
  •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 승인 2018.05.2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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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은 인터넷 과학신문 <The Science Time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문 보기)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었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한여름 무더위를 이겨냈을까. 더구나 의관을 중시했던 우리 민족은 한여름에도 속옷에다 바지, 저고리, 조끼, 두루마기까지 갖추어 입어야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것으로 여겼다. 선조들이 체통도 지키고 무더위도 쫓을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가 바로 여름의 대표 옷감인 한산 모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모시는 쐐기풀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이 모시풀의 줄기 중 가장 바깥층을 벗겨낸 후 속껍질을 가늘게 쪼개서 만든 실로 짠 베를 모시라고 한다. 모양이나 크기가 깻잎과 비슷한 모싯잎은 식품의 재료로 쓰인다.

모싯잎을 삶은 다음 쌀과 함께 곱게 갈아서 반죽하고 그 안에 콩을 넣어 빚은 모싯잎송편이 바로 그것. 또 뿌리는 이뇨제나 통경제 등 약용으로 사용하는 등 모시는 한마디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풀인 셈이다.

모시는 습도에 매우 민감해 통풍이 되지 않는 움집에서 짜야 했다. ⓒ 문화재청

모시는 생육 조건이 꽤 까다롭다. 여름철 기온이 평균 20~24℃로 높고, 연평균 강수량이 1000㎜ 이상이면서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속성이 있는데, 서해안을 끼고 있는 충남 서천군 한산 지역 일대가 이런 조건의 최적지다.

또한 모시는 짜는 과정에서 습도에 매우 민감하다. 모시짜기는 여름철 통풍이 되지 않는 움집에서 짜는데, 이는 습도가 낮으면 끊어지기 쉬운 모시의 속성 때문이다. 겨울엔 낮은 온도와 습도를 견디지 못해 모시의 섬유 마디가 부러지므로 모시는 옷감을 짤 때부터 옷을 만들거나 착용하는 일이 오로지 여름에 한정된다.

모시는 삼베와 마찬가지로 식물의 줄기로 만든 인피 섬유이므로 질감이 깔깔하고 차가우며 통풍이 잘 된다. 그런데 모시가 삼베보다 더 비싼 이유는 바로 그 까다로운 생육 조건 때문이다. 삼베는 한반도의 기후 및 토양 등 생육 조건에 적합해 전국적으로 재배됨으로써 서민용 옷감으로 발전된 데 비해 모시는 생육조건이 까다로워 충청도 연안과 전라도 남부 지역 지역에서만 재배되어 주로 상류층에서 사용되었던 것.

모시는 실의 재료를 1년에 보통 세 번 정도 수확한다. 수확 시기는 5월~6월초, 8월초~8월 하순, 10월초~10월 하순인데, 두 번째 수확한 모시의 품질이 가장 좋다. 수확 시기가 이르면 섬유가 약하고, 늦으면 올이 굵고 거칠기 때문이다.

금수현이 작곡한 가곡 ‘그네’에서 나오는 세모시는 올이 매우 가는 고운 모시를 일컫는다. 모시의 가늘고 굵은 정도는 ‘새’라는 단위로 정해지는데, 1새는 30㎝ 포폭에 80올의 날실로 짠 것을 말한다. 모시는 보통 7새 15새까지 제작되며, 10새 이상을 세모시라고 한다. 그중에서 한산의 모시는 ‘밥그릇 하나에 모시 한 필이 다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만큼 가늘고 곱기로 유명하다.

삼국시대에 처음 외국으로 수출된 모시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주요 수출품이었다. 우리나라 모시가 이처럼 인기가 있었던 데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한국직물연구원에서 한산 모시와 중국산 모시를 주사현미경으로 비교한 실험자료가 바로 그것이다.

그에 따르면 한산 모시는 중공(속이나 가운데에 있는 구멍)이 거의 없는데 비해 중국 모시는 중공이 보였다. 이 같은 차이로 인해 한산 모시는 세탁 후 잔털이 생기지 않는 반면 중국산은 잔털이 많이 생긴다. 또 한산 모시는 올이 가늘고 매끄러우며 섬세한데 비해 중국산은 올이 굵고 이음새가 많으며 인장강도 역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모시 같은 천연섬유는 통기성이 좋아 체온을 떨어뜨리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남성의 경우 이 같은 통기성은 정자의 질에 큰 차이를 만든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지난해 발표된 미국 스탠포드대학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낮에는 헐렁한 사각팬티를 입게 하고 밤에 잘 때는 속옷을 입지 않게 한 그룹은 꽉 끼는 속옷을 입은 그룹보다 정자의 DNA 손상이 25%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 것. 이 연구결과는 모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통기성이 좋은 속옷일수록 핵심 생식세포를 보전하는 데 도움된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1960년대 말 이후 섬유산업의 발달로 모시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기 시작했고, 한산 모시의 생산량도 급격히 감소했다. 이처럼 기계화와 산업화가 모시짜기 산업에 영향을 미쳤으나, 한산 모시 종사자들은 한국적 정신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 전통적 생산 방식을 고수해오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모시짜기 기술의 전승을 위해 1967년에 한산 모시 짜기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현재 한산 모시 짜기의 전승은 명인과 전수조교 간의 견습제와 모시짜기를 하는 일반 가정에서 어머니가 딸에게 전수하는 식으로 지속되고 있다. 또한 한산 모시 생산을 위한 공동작업체인 모시 두레가 주로 친지나 이웃으로 조직되어 가족과 이웃이 집단 안에서 결속돼 조화로운 분위기에서 모시와 관련된 활동을 함께 해왔다.

이는 모시짜기가 단지 모시를 짜는 기술만을 의미하지 않고, 보호해야 할 공동체 문화라는 점을 의미한다. 2011년 11월 인도네이사 발리에서 개최된 제6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한산 모시 짜기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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