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안전한 세상, 함께 만들어요"

아동안전위원회 이제복 위원장.

[이코리아“저 좀 지켜주세요”

지난 5월 6일 강남역 근처를 지나다녔던 사람이라면 이런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던 여학생을 본 기억이 날 것이다. 아동성범죄의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이 직접 나서서 우리를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에 많은 어른들이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1인 시위 중인 아이 곁에서 함께 목소리를 낼 용기를 가진 어른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 보인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세상을 직접 바꿔보겠다며 발로 뛰고 있는 어른들도 있다. 얼마 전 아동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개정안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던 ‘아동안전위원회’가 바로 그런 어른들의 모임이다. 아동안전위원회는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입법 활동을 목적으로 시작된 단체다. 지난 아동성범죄 처벌 강화 청원의 경우 비록 20만 명이라는 숫자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무려 7만9200명의 동의를 얻으며 높은 관심을 끌어냈다.

아동안전위원회 이제복 위원장은 “가장 약한 존재인 아이들이 안전한 나라야말로 모두가 안전한 나라”라며 아동안전입법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이코리아>는 이 위원장을 만나 아동 안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 아동 안전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궁금하다. 아동지킴이로 나선 까닭은?

대학 시절 창업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업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동,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 누가 가장 도움이 필요할지 생각해봤다.

괴테가 한 말 중에 “희망만 있으면 행복의 싹은 그곳에서 움튼다”라는 말이 있다. 행복이 주관적이라지만 그래도 희망이 전제가 돼야 한다. 누가 희망조차 없는 삶을 살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그중에서도 학교에 가야 하는데 일을 해야 하는 아이들, 부모에게 학대받는 아이들, 돈이 없어 병원 치료를 못받는 아이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 아이들에게 행복은 내 마음에 달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대상이 당시 내게는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내 능력을 아이들을 위해 써보자고 생각해서 국제아동인권센터에 들어가게 됐다.

- 국제아동인권센터에서 옐로카펫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특별한 모티브가 있었나.

예전 강원도 정선의 한 작은 마을에 봉사활동을 갔는데, 서울과 달리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밖에서 뛰어놀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왜 그런지 살펴보니 마을 아이들이 노는 곳 근처에 항상 마을어른들이 계셨다. 그 마을 어른들은 모두 마을 아이들의 부모들이고, 누가 어느 집 아이인지 다 알고 계셨다.

그 마을처럼 부모가 자기 아이만 보호하는 것이 아닌 마을 사람들이 함께 우리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이들을 위해 가장 안전한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온 뒤 성북구 길음동의 마을공동체 길음밴드와 함께 ‘아동이 안전한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처음 두 달간 마을을 함께 돌아다니며 아이들 안전을 가장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해봤다. 학교폭력, 유흥업소 등 많은 요소들이 있었지만 가장 많았던 것은 교통사고였다. 그 중에서도 횡단보도가 가장 위험하다는 주민들의 의견이 많았다. 실제 통계상으로도 아동 사망원인 1위가 교통사고, 그 중에서도 횡단보도 사고가 가장 많은데 이는 주민들의 생각과 일치했다.

아동교통사고의 주원인은 아이들이 갑자기 뛰어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교통안전교육 때 아이들에게 손을 들고 좌우를 살피라고 가르친다. 물론 필요한 교육이지만 마치 사고의 원인이 아이들이라는 듯한 관점에 기초한 교육이다. 성범죄 피해 여성에게 노출이 많은 옷을 입어서 범죄를 유발한다는 주장이 잘못됐듯 아이들 교통사고 예방 교육도 마찬가지다. 횡단보도 교통사고가 많다면 아이들이 아니라 횡단보도가 안전하지 않은지 살펴보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횡단보도에 외부와 구분된 노란색 공간(옐로카펫)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면 아이들이 그 공간 안에 들어가 머무르려는 넛지 효과가 발생한다. 반대로 운전자들은 마치 아이들에게 핀 조명을 쏜 것처럼 느껴져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주목하게 된다. 옐로카펫은 안전사업 중 유일하게 주민들이 직접 장소부터 제작까지 모두 참여한 사업이다. 현재는 전국 1000여 곳 이상으로 확대됐다.

아동안전위원회가 손경이 강사를 초청해 개최한 아동성범죄 입법 관련 강연회 모습.

- 국제아동인권센터에서 나와 직접 아동안전위원회를 만든 배경은?

국제인권아동센터도 좋은 단체지만 주로 인권 교육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나는 아동 안전에 초점을 맞추고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견을 같이하는 팀원들과 아동안전위원회를 시작하게 됐다.

우리는 아동이 안전한 나라만을 목표로 하는 건 아니다. 아동의 안전을 위해 누군가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아동이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아동이 항상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장애인이 더 약자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장애인 중에서도 아동장애인은 더욱 약자다. 아동이 안전한 나라라면 모두가 안전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의 모토다.

- 아동안전위원회는 입법 제안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동입법’이라는 문제를 특별히 염두에 둔 이유는.

아동 분야에서 6년째 일을 하다 보니 비어있는 부분이 많이 보인다. 아동과 관련해 여러 사업을 하는 단체들이 있지만 입법 시민단체는 하나도 없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상시적으로 법과 정책을 연구·제안한다. 여성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회적 약자가 다 입법 단체를 가지고 있는데 아동만 없다. 그러다보니 아동 입법이 항상 다른 법안에 뒤처지게 된다. 아동문제로 누가 죽거나 다치면 그때서야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나선다. 그러다보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이 되고 근본적인 해결이 안되는 것이다.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는 입법청원 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다. 이 제도가 30년이 됐는데, 아동관련 청원은 겨우 45건 뿐이고, 그중 일부라도 통과된 것은 단 1건이다. 아동문제에 있어서 입법청원의 효과는 거의 없다. 그래서 아동 관련해 상시적으로 필요한 법안을 연구하고 입법 운동을 전개할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아직 국민발안제가 도입되지 않았다. 위원회 활동의 실효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텐데.

아직 도입되지 않았지만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12월 개헌논의를 지켜보면서 국민발안제가 포함된 것을 보고 위원회 설립에 대한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됐다. 우리가 이런 준비를 하지 않고 국민발안제가 도입되면 아동 입법은 더욱 후순위로 밀리게 될 것이다. 국민발안제가 도입되면 엄청난 입법발의가 나올 텐데, 아동 분야는 훈련된 인력이 부족하다. 아동안전위원회를 성장시켜서 아동관련 입법 활동을 해본 인력을 500명, 1000명 정도는 키워야 한다. 다른 사회적 약자를 위한 단체와 비슷한 수준까지는 돼야 할 것 아닌가. 다른 사회적 약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입법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가져야한다.

당장은 관심있는 국회의원을 통한 입법 발의를 추진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번에 국민청원을 제기한 아동성범죄 개정안의 경우 법안을 4개로 추렸다. 입법청원의 경우 의원이 4개를 분리해서 받을 수 없다. 1개만 이견이 있어도 아예 발의가 안 된다. 그래서 이 법안을 온전히 전달하려면 입법청원이 아니라 관심 있는 의원이 직접 발의하도록 제안하는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방향을 바꿨다. 우선 국민청원 제도를 통해 20만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고 여론이 형성된다면 입법 발의에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동안전위원회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아동성범죄 처벌강화 개정안.

- 조두순 출소반대, 주취감경 폐지 등 아동성범죄 청원은 이미 여러 번 있었지만, 청와대 답변은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주제로 국민청원을 제기한 이유가 있나.

우선 위원회 측에서 아동성범죄 이슈를 고른 것이 아니라 시민들께서 제안을 해준 것이다. 첫 활동을 시작하면서 3주간 홈페이지에서 시민들에게 입법 제안을 받았다. 아무 홍보도 없었는데 300명이나 되는 인원이 참여해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나는 교통안전 같은 문제가 가장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아동성범죄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다.

청와대는 조두순 출소는 현행법상 막을 수 없고, 주취감경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래도 또 다시 청원을 제기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법을 바꿔야 한다”고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한 섬에서 5세 여아가 성추행을 당해 수사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우리는 수사를 통해 범인이 잡히더라도 현행법상으로는 집행유예로 풀려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조두순 청원 이후에도 아동성범죄 청원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해달라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 현행법을 고려한 답변이 돌아올 뿐이다. 결국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분노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을 바꿔야 한다. 법을 안 바꾸면 어떤 청원도 효과가 없다.

- 아동지킴이로 활동해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가장 힘든 것은 사람들이 아동을 인권이나 판단의 주체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투표권을 만 18세까지 확대하는 청소년 인권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이들이 아직 투표하기에는 사회적 판단 능력이 떨어진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 여성투표권에 반대하는 남성들, 흑인투표권에 반대하던 백인들과 같은 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청소년 투표권 운동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대견하지만, 18세로 낮추자는 제안도 진부하다고 생각한다. 투표는 공동체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판단하는 것이다. 시민권이 있다면 모두 가져야 한다. 살인범도 출소하면 투표권이 회복된다. 나는 보통의 고등학교 1~2학년들이 살인범보다 공동체에 더 유해한 판단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어느 연령까지 낮출 것이냐는 공론화가 필요하겠지만, 단순히 아이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투표권에서 배제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노키즈존도 마찬가지다. 이건 예전에 미국에서 백인들이 탄 버스에서 흑인들의 탑승을 거부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마치 아이들보다 지적으로 우월하고 교양있으니, 그들과 섞이고 싶지 않다는 태도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이런 시선들이 가장 힘든 문제다.

- 아동 안전 활동이 다른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나.

아동에 대한 혐오는 다른 것에 비해 약하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회적문제보다는 아동문제에 참여하는데 거부감이 덜한 편이다. 예를 들어 성매매의 경우 아동이 자신의 성을 판매했을 때 이 아이를 가해자로 취급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성매매에 나서기까지는 여러 가지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적 요인이 있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성매매 아동을 피해자로 보고 보호한다. 하지만 국내법상 성매매 아동은 가해자로 분류돼 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아이들이 성구매자인 성인으로부터 폭력을 당해도 신고를 하지 못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매매 아동을 피해자로 봐야 한다며 공감을 해준다. 하지만 성매매 전체로 범위를 넓혀 성을 판 성인들도 피해자로 봐야 한다고 하면 엄청난 사회적 논쟁이 일어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아동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비판보다 공감하고 동참하려는 경향이 있다.

지난 1월 열린 아동안전위원회 발족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말씀한 대로만 진행되면 아동이 안전해지는 나라에 보다 근접할 듯하다. 마지막으로 아동안전위원회의 향후 계획과 목표를 말해달라.

현재 7월부터 시작할 2기 활동 멤버를 모집하고 있다. 아동성범죄를 다룬 1기 활동에 대한 반응이 좋아 부산·경남 쪽에서도 참여 문의가 많이 오고 있다. 2기는 서울과 부산 1팀씩 서로 다른 입법 주제로 진행할 계획이다. 서울은 아동학대, 부산은 교육환경 문제를 다루게 된다. 7~9월 동안 새로운 법안을 만들어 다시 입법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예전 옐로카펫 활동과 마찬가지로 아동 안전의 주체의식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옐로카펫의 경우 적게는 20명에서 많게는 300명까지 주민들이 의사결정 및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직접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 권한을 받은 적도 없고. 그런데 주민들이 직접 망치를 두드리며 옐로카펫을 만들면서 마을이 진짜 안전해졌다. 이것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다.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은 다음에도 마을살림에 문제가 있으면 직접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옐로카펫같은 성공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의 아동안전 주체의식이 높아지면, 진정한 의미에서 아이들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

아동안전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위원회가 생기면서 그동안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말할 곳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저 곳에 말하면 입법이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30년 동안 아동입법청원이 45건 뿐이었지만, 위원회 활동 3주 동안 300건의 제안이 들어왔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아동입법 아이디어가 많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런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이 위원회 설립의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하며 좋은 결실을 맺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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